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92

개항장의 숨은보석 제물포구락부


12월,위드코로나로 잠시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루어지는 듯하더니 어느덧 그 이름도 해괴한 "오미크론"이 우리의 앞길을 또 가로막고 있습니다. 

 정답보다는 오답이 더 넘쳐나는듯한 팬데믹 상황에 제물포구락부에서 보내드리는 한 통의 편지가 오늘도 시민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시민 여러분.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라디오에서 찾은 시대의 흔적들 <라디오 탐심> (김형호, 틈새책방)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래전인 어린 시절의 비교적 선명하게 생각나는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퇴근하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느날 저녁 졸린 눈을 비비며 라디오를 듣던 일입니다. 
그때 흘러나오던 사뭇 애조를 띤 멜로디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막연한 감정과 함께 각인되어 언제 들어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을 인식하는 순간 유년기의 어떤 기억을 떠올립니다. 마들렌이 특정한 물성을 지닌 단순한 사물로서가 아니라 주인공의 의지 외부에 있었던(혹은 잊고 있었던) 일들을 회상시켜 주기 위한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그날 들었던 음악이 바로 프루스트의 마들렌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그날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게 해 준 그 음악이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J. Massenet - Meditation from Thais)’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 말입니다. 지금도 그곡을 듣고 있노라면 방 한 쪽에서 포대기에 눕혀져 있던 갓난아기 막내 여동생의 얼굴까지 그려지니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거짓말 같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방의 구조, 냄새, 음악이 흘러나오던 라디오의 형태까지 선명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억은 단지 기억일 뿐 지금 현실에서 현현되고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날에 관련된 물건 하나를 오래전부터 찾고 있고 있습니다. 바로 타이스의 명상곡이 흘러나오던 라디오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아버지께서 큰 맘을 먹으시고 장만하신 ‘제니스’라는 메이커의 미제 라디오입니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형태 말고는 정확한 모델명을 모르는 탓에 엔틱 라디오 거래 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봐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렸을 적 사진 역시 아무리 뒤적여 봐도 라디오가 찍힌 사진은 없습니다. 

그러니 어쩔때는 내 머리속에 임의로 만들어 놓은 기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할 때도 있습니다. 여튼 영원히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습니다.

기억 속의 라디오를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진 저와는 달리 자신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라디오와 같은 모델의 ‘대우전자’ 라디오를 용케 얻은 수집가가 있습니다. <라디오 탐심> (틈새책방)을 쓴 김형호 작가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오래된 라디오를 구한 것에 그치지 않고 1,000대 이상의 오래된 라디오를 수집하여 30평 공간에 안식처까지 마련한 진정한 라디오 수집가입니다. 김형호 작가의 <라디오 탐심>은 1901년 세계 최초로 라디오 전파에 사람의 목소리를 실어 전달한 이래 1920년 세계 최초의 상업적 라디오 방송 송출부터 그 지위가 현저히 추락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놀라운 책입니다. 라디오라는 물건이 탄생할 당시의 경이로움과 보급화 과정, 성장기,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겪었던 일들과 미래 유산으로서의 라디오를 27개의 에피소드로 묶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앤틱 수집기(記)가 아닌 라디오를 통한 인간의 체취와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라디오는 고유한 물성을 지닌 물건의 형태로가 아니라 단순히 컨텐츠로서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라디오를 듣는 행위조차 다이얼로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화된 스마트폰의 앱을 통하여 별 수고 없이 들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딘가의 수많은 라디오 방송들이 저마다의 내용과 사연을 전파에 실어 보이지 않는 청취자들을 위해 공중으로 날리고 있습니다. 라디오는 TV 때문에 곧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현재까지도 살아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아무리 비주얼 중심의 콘텐츠가 난무한다 해도 라디오야말로 유일하게 ‘사유’의 기회를 갖게 해준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디오 탐심>은 단순한 공산품이 아닌 다음 세대까지 전해져야 할 인류의 유산으로서의 라디오를 얘기하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 리컬렉션 - 하버파크 호텔
리컬렉션이라함은 흩어져 있는 것들을 다시 모으는 것 그리고 돌이키고 되돌리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하여 본래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재생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제물포구락부의 리컬렉션 프로그램은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사회가 요청할때 성심성의껏 대응해드리기 위해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한 칼라풀한 1919년의 조선을 기록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100여년전 그녀의 화폭에 특별한 시각으로 기록된 조선을 만나실 수 있는 "제물포구락부 리컬렉션 - 엘리자베스 키스전"이 지금 인천 중구 하버파크 호텔 로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하버파크 호텔 찾아가시는 길

재즈브루잉

폴란드 출신의 Marcin Wasilewski Trio의 2021년 새 앨범입니다. 10대 때 이미 트리오를 결성하여 1995년에 심플 어쿠스틱 트리오(Simple Acoustic Trio)라는 이름으로 첫 트리오 앨범인 <Komeda>를 선보였습니다. 

이어 폴란드 재즈의 대부 토마스 스탄코에 의해 주목받은 후 그의 밴드에 합류하였고 2002년 발표된 토마스 스탄코의 앨범 <Soul Of Things> (ECM)과 2004년 Suspended Night (ECM)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앨범들로 마르신 바실레프스키(Marcin Wasilewski), 스와보미르 쿠르키에비치(Slawomir Kurkiewicz), 미할 미스키에비치(Michal Miskiewicz) 세 사람의 이름은 재즈씬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후 이들은 심플 어쿠스틱 트리오에서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로 이름을 바꾸었고 드디어 2005년 ECM 에서 첫 앨범 Trio를 발표합니다. 

ECM의 창업자이자 프로튜서 만프레드 아이허가 직접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2005년 '독일 음반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하며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Marcin Wasilewski Trio 사진 : scadoganhall.com
앨범 <En Attendant> (Marcin Wasilewski Trio, ECM)는 2005년에 ECM의 첫 앨범 Trio 이후 발표된 일곱 번째 작품으로 트리오 멤버가 공동으로 작곡한 세 곡과 마르신 바실레프스키가 작곡한 1곡, 칼라 블레이와 도어스의 각 1곡씩,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1곡으로 총 7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En Attendant>라는 앨범 타이틀이 인상깊습니다. 알다시피 ‘En Attendant’는 ‘기다리면서’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입니다. 모국어인 폴란드어나 레이블 ECM이 있는 독일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한 것은 혹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제목 ‘En Attendant Godot’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들의 첫 앨범 타이틀이 1960년대 폴란드의 전설적인 재즈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코메다를 기리는 <Komeda>입니다. 그만큼 앨범 타이틀 자체에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 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기다린다는 뜻일까요? 트랙의 전개는 1, 4, 7번 트랙의 ‘In Motion’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나머지 곡들이 각각 바흐, 바실레프스키, 칼라 블레이, 도어스의 곡인데 반해 Pt. 1,2,3으로 제목이 붙여진 세 곡은 트리오 멤버가 공동으로 작곡한 오리지널 곡입니다. 첫 트랙 In Motion, Pt. 1은 피아노 트리오답게 피아노뿐 아니라 베이스와 드럼의 적당한 텐션이 돋보이면서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정체성을 완벽히 드러냅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트랙 바흐의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 25는 In Motion, Pt. 1과 일종의 대척점을 이루는데 바흐의 정형성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클래식 본연의 깊이를 표현해 냅니다. 2020년 조 로바노와의 협연 앨범 <Arctic Riff>에서 두 개의 버전으로 등장했던 칼라 블레이의 원작 Vashkar는 이제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주요 레파토리로 자리잡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익숙합니다. 이어 피어노뿐 아니라 인트로부터 드러밍과 베이스가 인상적인 In Motion, Pt. 2, 서정미 넘치는 바실레프스키 작곡의 Glimmer Of Hope, 완벽하게 그들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도어스의 Riders on the Storm을 들으면 어느덧 마지막 트랙인 In Motion, Pt. 3 입니다. 

그럼에도 타이틀 En Attendant의 의미 곧 기다리던 그 무엇에 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사실 사무엘 베케트의 ‘En Attendant Godot’(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기다리는 ‘고도’는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도가 그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다만 기다릴 뿐입니다. 역설적인 건 그 많은 대사를 쏟아내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보다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고도'가 훨씬 더 깊이 내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은 수많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설령 끝내 그것이 오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 앨범 <En Attendant> 역시 그렇습니다. 마지막 트랙 In Motion, Pt. 3까지 다 들은 후 남는 건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모호한 여운입니다. 마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고도’에 대한 기다림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그들의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 밖에 없나 봅니다. 아마도 올해 구입하는 마지막 앨범인 <En Attendant>으로 다행히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트리오가 왜 ECM을 대표하는 피아노 트리오인지 그 가치를 직접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In Motion, Pt. 1 · Marcin Wasilewski Trio In Motion, Pt. 1 ℗ 2021 ECM Records GmbH, under exclusive license to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Released on: 2021-08-06 
Producer: Manfred Eicher Studio Personnel, Recording Engineer, Mixer: Gérard De Haro Associated Performer, Piano: Marcin Wasilewski Associated Performer, 
Double Bass: Slawomir Kurkiewicz Associated Performer, Drums: Michal Miskiewicz Studio Personnel, Mastering Engineer: Nicolas Baillard Composer: Marcin Wasilewski 
Composer: Slawomir Kurkiewicz Composer: Michal Miskiewicz Auto-generated by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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