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72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나무는 인간이 탄생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땅에 존재했습니다. 
나무를 빼놓고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신성한 나무 이야기가 깊이 자리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인천은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으로 각광받았던 유구한 역사의 땅입니다. 그만큼 제자리에서 묵묵히 시간을 담아내며 생존하고 번영하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포탄을 이겨낸 강화도 초지진 소나무, 개항기 역사를 오롯이 지켜 본 자유공원 플라타너스, 인천상륙작전 당시 함포의 집중포화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여덟그루의 월미도 나무, 800여년 동안 우람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장수동 은행나무 등이 바로 그런 나무들입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는 나무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무가 지켜 보았을 인천의 역사와 자연과 인간의 공생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더불어 인천의 역사와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도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일정:2021년 6월22일부터 2021년 8월31일까지 
관람시간:오전 9시30분에서 오후 5시30분까지 
장소:제물포구락부 


1.남이섬으로 간 솔안말 소나무
지금의 미추홀구 주안동은 과거 솔안말로 불릴 정도로 소나무로 우거진 숲이어서 지역 주민들에게는 마치 떼어낼 수 없는 유년의 배경지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나무 숲은 7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2018년 옛 주안초등학교(개교 1934년)의 철거로 교정에 있던 높이 14미터,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 세 그루가 춘천 남이섬에 이식되면서 그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남이섬으로 이식된 세 그루의 소나무 중 두 그루는 안타깝게도 폐사했고 현재 한 그루만이 남아 섬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2.인천의 봄을 알리는 자유공원 왕벚나무
제물포구락부와 자유공원 주변의 왕벚나무는 흔히 알려졌듯이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에 심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75년부터 3년에 걸쳐 식재한 것이다. 
원산지 또한 흔히 일본으로 알려져 있으나 1898년부터 50여 년간 한국에서 지냈던 프랑스 신부 에밀 조제프 타케 (Émile Joseph Taquet)에 의해 제주도의 자생지가 발견된 후 한국 제주도로 밝혀졌다.


3.월미도 나무 여덟그루
월미도는 1904년 러일전쟁의 발단이 된 격전지이자 한국전쟁 당시 한미 해병대의 상륙지점이었으며 이후 50여 년간 군부대가 주둔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섬이다. 
특히 섬에 조성된 월미공원에서는 1950년 인천상륙작전 당시 함포의 집중포화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나무 여덟그루를 선정해 월미나무 8경이라 이름지었다. 
치유의 나무,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평화의 어머니 나무 등 각 나무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포탄에 맞아 밑둥과 몸통이 잘리거나 쪼개진 채 살아남아 전쟁의 상처를 견뎌낸 아픈 역사의 상징이 되었다.


4.자유공원 플라타너스

자유공원 중턱 제물포구락부 바로 맞은편에 우람하게 서 있는 나무는 1884년 대한제국 시절 응봉산 각국공원(현 자유공원)이 조성될 당시 식재된 우리나라 최초의 플라타너스다. 
수관폭 34m, 높이 30.5m에 달하는 거대한 풍체를 자랑한다. 현재 인천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개항기 인천의 역사를 함께 한 나무인 만큼 인천시 등록문화재 등록을 앞두고 있다.

5.장수동 은행나무

2021년 2월에 천연기념물 제562호로 지정된 추정 수령 약 800년을 자랑하는 은행나무다. 나무의 높이는 28.2m, 줄기둘레는 9.1m이고 가지와 잎이 무성한 부분의 폭이 동서 27.1m, 남북 31.2m에 이른다. 뿌리 부분에서 다섯 갈래의 가지가 갈라져 나와 대단히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고 있다. 

예로부터 집안에 액운이 생기거나 마을에 돌림병이 돌면 이 나무에 제물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또한 철마다 노거수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풍년과 평온을 기원했던 전통이 현재에도 주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도당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재즈브루잉

“It's not relaxing. It's not, it's not. Sidney Bechet shot somebody because they told him he played a wrong note. That's hardly relaxing. 

재즈는 편안하지 않아. 그럼, 아니고 말고. 시드니 베셋은 자신이 음을 잘못 연주했다고 비난한 사람을 총으로 쐈어. 재즈는 결코 편안하지 않아." 영화 '라라랜드'에 나오는 이 대사는 주인공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이 재즈가 별로라고 하는 배우 지망생인 여자친구 미아에게 한 말이다. 

세바스찬이 말한 일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1929년 파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음악 프로듀서가 시드니 베셋의 연주를 듣다가 음이 잘못됐다고 말했고 이를 들은 베셋이 그자리에서 “나는 절대로 잘못된 음을 연주하지 않는다"라며 총으로 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베쳇은 11개월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미국으로 추방됐다.

재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연인의 러브스토리인 이 영화에는 루이 암스트롱, 셀로니어스 몽크, 호기 카마이클,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 등 숱한 재즈 거장들의 이름과 일화들이 언급된다. 시드니 베셋의 이 일화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많은 유명곡들을 만들고 연주했던 시드니 베셋이었지만 사실 그는 음표를 제대로 읽을 줄 몰랐다고 한다. 오로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재즈 레전드가 된 케이스다. 
시드니 베셋(Sidney Bechet)은 1897년 5월 뉴올리언스의 중산층 크레올 가정에서 태어났다. 덕분에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신동이라 불리며 어린 나이 때부터 여러 밴드에서 클라리넷과 색소폰 주자로 이름을 알렸다.


재물포구락부의 서재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 (에두아르트 뫼리케, 민음사)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는 최근 발간된 W. G. 제발트의 <전원에 머문 날들>에서 건져 올린 에두아르트 뫼리케(Eduard Friedrich Mörike ,1804-1875)의 대표적 산문 두 편을 모은 작품입니다.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에두아르트 뫼리케는 1804년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수도원에 맡겨졌으나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었습니다. 

1833년 약혼자와 파혼하는 등의 연애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고 1834년 뷔르템베르크 근교 클레버줄츠바흐 지방의 목사로 취임하지만 1843년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합니다. 1851년 슈투트가르트에서 문학 교사 자리를 얻어 1866년 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다 1875년 6월 4일에 사망합니다.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중간에서 연애시와 전원시, 산문시 등 다양한 종류의 시 뿐만 아니라 <화가 놀텐>(1832)과 소개하는 책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등 소설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는 표제작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와 <아름다운 라우 이야기> 등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특히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는 뫼리케가 1856년 ‘모차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쓴 ‘노벨레’입니다. 천재로서 빛을 발하다 결국 쇠퇴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1787년 9월 14일 부인과 함께 그의 걸작 오페라 <돈 조반니>를 초연하기 위해 프라하로 여행을 합니다. 

이 여행에서 모차르트 부부가 겪은 하루 동안의 일을 소설로 그린 작품이 바로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로 “19세기에 발표된 가장 위대한 예술가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족 하나를 붙이자면 이 책은 민음사 ‘쏜살 문고’로 소개되고 있는데 알다시피 ‘쏜살 문고’는 손에 쏙 들어오는 얇고 앙증맞은 판형으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 역시 말 그대로 ‘쏜살’같이 읽어낼 수 있는 얇은 분량인데다 작품속에서 사건의 주요 모티브를 제공하는 ‘광귤나무’의 이파리와 열매를 그린 듯한 표지가 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더운 여름에 손에 들고 다니기 안성맞춤입니다.

플라이 투 제물포 에피소드2
계단의 절대적인 기능은 수직이동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30여년전 인천 개항장에서의 계단은 조계지의 국가별 경계를 규정짓는 일종의 작은 국경선 역할을 담당했다. 그중 하나가 인천광역시 중구 관동1가 24에 위치한 청일조계지 경계계단이다. 

역관 이응준이 도안한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가 저 계단 상층부에서 펄럭였고 미국의 초기 국가처럼 불렸었던 양키두들이 미군군악대에 의해 울려퍼졌다. 

바로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체결 당일의 모습이 그러했다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포함해서 인천 개항장 현재의 도시구조가 일본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확장되었다고 생각한다. 

 각성하자. 비록 왕조는 무너졌으나 최소한 1883년 인천으로부터 스스로 외교적 빗장을 걷어내기 시작하고 제물포라는 국제도시를 설계한 주체는 바로 우리, 바로 우리나라였다. 
플라이 투 제물포 그 두번째 에피소드에 그때의 희망을 담아 날려봤습니다~ 


인문학 아카데미
강판권 교수의 나무인문학 Chapter #1
커피로 읽는 인문학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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