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67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내가 우 선생과 서로 알게 된 것은 벌써 17년 전 다 같이 역려(逆旅)에 시달린 이국의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때 분명히 목을 축이기 위하여 과일즙을 구하러 나온 길에서 해후했다. 
우 선생은 23세의 약관으로 큰 눈이 바위 밑의 등불처럼 광채가 번뜩이는 재기 예발(銳發)해 보이는 미남이었고, 그때에도 틈만 있으면 사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꽃을 많이 사생하였다. (중략) 술은 매양 호음(豪飮)하는 편이어서 음중선(飮中仙)에 가깝다. 취하기 전에도 별로 말이 없거니와 취한 뒤에도 역시 말이 적다. 
그러나 호방한 기개는 어디서나 좌중을 휩쓸곤 한다. 이취(泥醉)할 지경에 이르면 어디선지 평소에 찾아볼 수 없는 황소고집이 나온다. 또 용맹도 나온다. 이럴 때에는 서로 붙들고 밤새도록 거리를 헤맨 적도 있다. 
애음(愛飮)하는 탓으로 지교들 사이에 그저 막걸리처럼 텁텁하기만 할 것으로 아는 이가 있을지 모르나 칭찬과 예의에 대한 깊은 교양을 갖고 있다.”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선생이 고여(古如) 우문국(禹文國, 1917~ 1998) 선생의 인품에 대하여 쓴 평이다. 문장 몇 개로 어찌 한 사람을 다 알 수 있을까만은 유희강 선생의 글로 만나는 우문국 선생은 그야말로 기품과 호방을 모두 갖춘 예인(藝人)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림:조관제 화백]

고여 우문국(古如 禹文國, 1917~1998) 
인천시립박물관 제3대 관장을 역임했던 우문국 선생은 1917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21세가 되던 1937년 미술가로서의 꿈을 안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그림 유학을 하던 중 평생 친구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검여 유희강 선생을 만난다. 고여(古如)라는 호 역시 유희강 선생의 호 검여(劍如)와 짝을 이루어 지은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은 서로의 삶과 예술에 서로의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해방이 된 이듬해 1946년 두사람은 함께 귀국했지만 이북이 고향인 우문국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인천의 유희강 자택에 한동안 머물게 된다.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가문비나무의 노래> (마틴 슐레스케 지음, 도나타 벤더스 사진, 니케북스) 

고지대에서 빼곡히 자라는 나무들은 바이올린 제작자에게 가히 은총입니다. 이런 곳에 곧추선 가문비나무는 아주 위쪽에만 가지가 나 있습니다. 밑동에서부터 40~50 미터까지는 가지 하나 없이 줄기만 쭉 뻗었지요.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 사용하기에 이보다 좋은 나무는 없습니다. 
저지대에서 몇 년 만에 서둘러 자란 나무는 2~3백 년 넘는 세월 동안 서서히 자란 가문비나무와 견줄 것이 못 됩니다. 저지대의 온화한 기후 속에서 빨리 큰 나무는 세포벽이 그리 단단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무는 나이테의 폭이 넓고, 늦가을까지 계속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냅니다. 늦여름과 가을에 만들어지는 부분을 '추재(late wood)'라고 하는데, 추재 비율이 높은 나무는 세포벽이 두껍고 섬유가 짧습니다. 
또 줄기 아랫부분까지 가지가 무성하지요. 이런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면 매력적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울림의 진수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의 거장들은 다릅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들은 천천히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굽니다.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위로 뻗어 오르고,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들은 떨어져 나가지요. 바이올린을 만들기에 딱 좋은 '가지 없는 목재'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수못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가 생존하는 데는고난이지만, 울림에는 축복입니다.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를 통해 나무들이아주 단단해지니까요. 바로 이런 목재가 울림의 소명을 받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 p 13)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같은 현악기는 거의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악기들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가 제작한 악기들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년 이상이나 된 그 당시 제작된 악기들입니다. 
현대의 최신 공법으로 제작한 악기의 음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악기 제작에 사용했던 나무가 바로 가문비나무입니다. 가문비나무는 주로 북부 이탈리아 북쪽,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재미있는 건 17세기 즈음 유럽대륙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가 사용했던 가문비나무는 매우 천천히 성장하여 나이테가 촘촘하다고 합니다. 
이번에 <제물포구락부의 서재>에서 소개하는 책 <가문비나무의 노래>의 저자 역시 이 점을 당연히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바이올린 제작 마스터 마틴 슐레스케가 가문비나무로 바이올린을 제작하며 들려주는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7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독일 국립 바이올린 제작 학교를 졸업한 바이올린 제작자입니다. 
고지대에서 추위와 삭풍을 견디어 바이올린 명기(名器)가 되는 가문비나무를 통해 순간 순간을 충실한 자세로 사는 삶의 당위성을 통찰하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마틴 슐레스케의 명상적인 글에 더해 사진작가 도나타 벤더스가 찍은 아름다운 흑백사진들 역시 이 책을 손에 들게 만드는 매력입니다.


송학동 역사산책길 투어


오늘의 역사


재즈 브루잉

형용모순이겠지만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1982년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클래식 SF 누아르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개봉 당시의 가혹한 평가와는 달리 현재는 명품 SF 영화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필립 K. 딕의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블레이드 러너는 미래에 대해 지독히도 우울하게 묘사되어 한편의 SF 누아르라 부를만 합니다. 
이후에 발표된 수많은 SF 영화의 전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설령 ‘저주’는 받았을지언정 확실히 ‘걸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1982년에 개봉했지만 배경은 2019년입니다. 영화는 온통 불안과 음울함 투성이 입니다. 스모그와 산성비로 가득차 있는 화면은 현란한 네온사인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기대감보다는 특정할 수 없는 불안감이 감돕니다. 
2019년 인간들은 인위적으로 주입된 기억과 단 4년의 수명만을 가진 '리플리컨트'라는 인조인간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단의 리플리컨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투입된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가 리플리컨트 ‘레이첼’을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영화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OST는 정작 영화가 발표된지 12년이 지난 1994년이 되어서야 나왔습니다. 음악을 담당한 반젤리스(Vangelis)와 제작사 사이의 불화때문이었습니다.

말로 만든 나무

말의 힘은 참으로 큽니다. 
이리 오라는 한마디에 한 인생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 했을까요? 말이 곧 사회고 우주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말은 관계를 맺어주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서로를 찌르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이든 말은 너에게로 나를 보내고 다시 뭔가가 되어 돌아옵니다. 근데 세상에는 듣기만 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나무입니다. 
염려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지요. 

그래서, 제물포구락부 120주년•인천시민愛집 개관기념 특별전 "나무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에서는 말로 만든 나무 섹션을 별도로 마련해보았습니다. 
우리를 위로했었던 명문장과 詩들이 타이포그라피를 통해 나무로 잎으로 각인되었습니다. 
1953년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 이경성 선생의 유지를 받든 제물포구락부 1층 석남 이경성 극장에서, 6월22일 다시한번 시민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안아 드리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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