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29

모비딕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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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적 개항의 상징적 서사자원



한국 최초의 양의사가 여성이었다는 것과 그녀를 의사로 키운 사람 역시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 출신 로제타 셔우드 홀 (Rosetta Sherwood Hall)은 1890년 의료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온 후 의료 사업을 펼칠 당시 통역이었던 이화학당 교사 로드 와일러가 독감에 걸리자 이화학당의 소녀들 중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아이였던 ‘박에스더’에게 통역을 맡긴다. 박에스더의 재능을 알아 본 로제타 셔우드 홀은 미국 유학을 보내는 등의 후원으로 박에스더를 한국 최초의 양의사로 성장하게 만든다.

로제타 셔우드 홀이 한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진료를 했던 곳은 1887년에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이다. 보구여관은 당시 병원에 자유로이 내원할 수 없었던 시대상을 반영하여 여성만을 위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이다.  ‘보구여관’의 뜻은 ‘’보호하고 구하는 여성들의 집’이라는 뜻이다. 1887년 메타 하워드라는 여의사에 의해 개원하였으나 병환으로 귀국하게 되어 로제타가 후임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림.조관제 화백 /  글.편집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음악을 재즈로 연주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아니, 그런 앨범이 있을까? 하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이탈리아의 트럼페터 엔리코 라바(Enrico Rava)의 'Rava On the Dance Floor' 가 바로 그런 앨범이다. 말 그대로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면서 재즈로 들려지는 앨범이다. 마이클 잭슨이라면 익히 알려진 대로 그야말로 팝의 전성시대였던 80년대와 90년대를 휘어잡은 스타다. 또 그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아울러 비극적인 사망 이후에도 대중음악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팝의 황제' 아니던가. 그러니 마이클 잭슨과 재즈를 연관시키는 일은 뜬금없는 연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다.

굳이 재즈와의 연관성을 말하자면, 오랫동안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관여해온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 우리에겐 Ai No Corrida로 알려진)가 실은 팝 명반들을 프로듀싱하기 훨씬 이전부터 프랭크 시나트라, 엘라 피츠제럴드 등 재즈 연주자들의 음악을 편곡 또는 프로듀싱 한 재즈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음악 역시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한 R&B, 소울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음악사의 측면에서는 재즈와 마이클 잭슨의 음악 모두 같은 뿌리에서 연유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재즈는 서로 뚝 떼어놓고 얘기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팝과 재즈는 워낙 걸어온 길이 상이했던 터라 서로의 동질감은 배제되었고 이질감만이 특화된 채로 살아남았으니 지금은 전혀 동떨어진 장르처럼 느껴질 뿐이다. 아마도 Enrico Rava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법하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알렉세이 유르착, 문학과지성사) 언제까지나 영원할 듯 공고했던 ‘소비에트’의 붕괴를 통해 현 시스템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이 아닌 몇가지 흥미로운 역설에 의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붕괴가 시작된 후에 논리적으로 완벽히 설명되던 어떤 ‘전조’들이 발생전에는 누구도 체감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도 필요없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현재 시스템 역시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과 대답을 던지며 읽어야 할 만큼 진지한 책이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흥미로운 단락들이 많아 손에서 놓지 못한다. 특히 소비에트 체제에서의 카페(커피)와 재즈의 역할에 신선한 사유을 제공한다. 소비에트 세계에서 카페가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재즈는 서구 부르조아 문화가 스며들게 만든 매개였을 거라는 예상을 보기좋게 허무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다.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에 처음 생겼다. 바로 경인선이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철로였다. 인천에는 제물포역이, 서울에는 서대문역이 마지막 역이었다. 이듬해 7월에는 한강철교가 개통했다. 이어 경인선 마지막 구간인 노량진~남대문역(현재 이화여고 자리)도 완공했다. 남대문역은 아래 논 한복판에 10평 남짓한 2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시작한 1919년 8월, 남대문역의 이름을 경성역으로 바꿨다. 이후 경성역을 1922년 6월부터 1925년 9월까지 3개월여에 걸쳐 새로 지었다.

경성역은 당시 대륙역・통과역 역할로 일본-조선-만주-유럽으로 이어지는 국제철도시대의 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동양 제1번은 도쿄역이고, 제2번은 경성역이다’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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