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24

모비딕
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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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한 근대문화유산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애국지사 헐버트 박사는 1949년 7월 2일 자 '스프링필드 유니언'지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라며 다섯 가지를 근거로 제시했다. 
첫번째, 1주일이면 터득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문자' 한글 발명  
두번째,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의 일본 격파  
세번째, 임금이 국사를 편견 없이 기록해 3년마다 기록을 정리하여, 3부씩 보관하게 한 '역사 기록 문화'  
네번째, 기원전 1122년 한족 5000명을 이끌고 넘어온 기자를 한민족으로 만든 '이민족 흡수 문화' 
다섯번째, 1919년 3·1 운동 때 보여 준 한민족의 애국심. 
-글, 편집부 그림, 조관제 화백

아이비리그 다트머스 대학 설립자의 후손이며 뛰어난 언어학자이기도 한 헐버트 박사는 한글 띄어쓰기와 마침표,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개발하고 출간한 한글학자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대한제국 말기 일본이 가장 두려워한 외국인중 한 사람이었으며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와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여한 숨은 조력자였다.  

제물포를 사랑한 헐버트 박사 
1901년 6월 22일 제물포구락부의 개소식을 취재한 인물이 바로 헐버트 박사였으며, 그는 제물포구락부의 회원으로서 경성-제물포 테니스 토너먼트의 주요 출전 선수이기도 했다. 
그가 1906년에 남긴 기사에는 이런 글도 있다. 

"제물포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입항지이다. 이 항구는 근접성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러한 장점을 갖게 되었다. 서양인이나 일본인 거주구역의 부동산은 평방미터 당 20엔에서 30엔으로 거래되어 이곳의 실제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다. 일본인 인구도 만 명을 넘었으며 한국 주민의 숫자도 3만 명을 넘었다. 
외국인 거주지역에는 눈에 띄는 공공건물은 아직 거의 없지만 주거지는 비교적 잘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 주택들이 모여있는 가파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경치는 이곳에 살고 싶은 매혹을 느끼게 한다. 1마일에 걸쳐 있는 부두에는 항구의 교역물자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대량의 화물들이 부두에 이적되어 있어 방수포로 덮을 수 없는 경우 비바람에 노출되고 있다. 교역은 물품을 다루고 저장하는 시설에 항상 앞서서 이루어진다는 사실만큼 이 항구에서의 삶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 1906년. Korea Review 헐버트 

1907년 일본에 의해 추방된 후 1949년 7월 29일 86세의 나이에 그토록 사랑했었던 한국에 다시 돌아왔지만 그는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두었고 지금은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유아기에 사망한 첫째 아들 쉘던의 옆에 함께 영면했다.

재즈는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이도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재즈로 인식하게 된다. 대체 어떤 음악적인 특성이 있길래 그런 걸까. 재즈에는 스윙이라는 리듬, 당김음이라 일컫는 싱코페이션, 즉흥연주 등 재즈가 재즈로 들려지게 만들어주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즉흥연주다. 즉흥연주를 통해서 연주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감상자들 역시 자기만의 감정으로 해석하고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즉흥 연주만의 매력이다. 규정되어 있지 않은 자유로움, 번뜩이는 영감으로 인해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고 본질을 뛰어넘는 확장성이 있다. 마치 만화의 말풍선을 비워 놓았을 때 아이들이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빈 말풍선을 채우는 것과 같다. 
만화의 작법 또한 일반 회화 예술보다 번뜩이는 순간적 영감이 더 중요할 것이다. 재즈와 만화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곤 했다. 1928년에 탄생한 최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증기선 윌리’가 좋은 사례다. 
월트 디즈니의 작품 증기선 윌리는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에서 주인공 미키마우스가 벌이는 에피소드들을 그렸다.

미국인 사진여행가 엘리아스 버튼 홈즈(Elias Burton Holmes)의 《여행강의》 (1901)에 수록된 '프렌치 호텔'의 전경이다. 버튼 홈즈의 표현에 따르면, "새 프렌치 호텔은 최근 막 개장하였다"고 하였으므로, 1901년 무렵에 개업하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프랑스 호텔은 한때 센트럴 호텔로도 불렸다가, 다시 1908년 5월 이후 '패리스 호텔'로 개칭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 호텔은 그후 1912년에 이르러 일제에 의해 태평로가 확장될 때 철거되어 사라진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 근대호텔의 첫 등장은 인천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일찍이 인천에서는 1880년대 이래 일본인 호리큐타로(堀久太郞)가 운영한 대불호텔, 중국인 이태(怡泰)가 운영한 스튜어드호텔(Steward Hotel), 그리고 오스트리아계 헝가리인 스타인벡(Joseph Steinbech)이 주인이었던 꼬레호텔(Hetel de Coree) 등이 생겨나 성업중이었다. 그러니까 서울은 인천에 비하자면, 서양식 호텔이 등장한 것이 늦어도 한참이 늦다.


자기 존재와 세계의 부조리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도저히 메울 수 없었던 주인공 로캉탱. 그럴 때마다 찾아오는 구토는 재즈를 들을때 비로소 멈춥니다. 
그가 그토록 재즈를 듣는 이유죠. 소설속 로캉텡이 반복해서 듣는 곡.
Some of these days.
<구토> (사르트르, 동서문화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었던 우리
구한말 조선을 다녀간 수많은 외국인들. 그들이 남겼던 글과 말과 그림속에서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했었던 진정한 우리를 이제야 제대로 만났습니다.

새비지 랜도어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제2장은 제물포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제물포구락부 인스타그램
언더우드가 찍은 제물포구락부.1904년
제물포구락부 앞 가로등,8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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