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22

모비딕
2020-08-04
조회수 366
미래세대를 위한 근대문화유산




우리는
사라져가는 이나라를 향해
애써 '대한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그래, 한 국가로서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기만 하다.

- 1911년,제물포앞바다,조선민중을 사랑한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님의 글중에서  

그로부터 14년 후 베버 신부는 다시 조선을 찾아 15,000m 분량의 35mm 필름에 방대한 영상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혔다가 1970년대 말 독일 남부 뮌헨 근처의 한 수도원에서 지하실 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짐꾸러미에서 함께 발견된 놀라운 작품. 바로 그가 일본인 골동품 상인에게서 애써 지켜낸 겸재 정선의 화첩.

2005년 오틸리엔 수도원은 베버 신부의 유지를 받들어 겸재 정선의 화첩을 그가 그토록 사랑했었던 한국의 민중을 위해 왜관수도원에 영구 기탁하였다.

일찍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게 된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은 그들이 처했던 혹독한 노동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선창과 후창, 합창으로 이루어진 블루스 형식의 노동요를 자연스럽게 불러왔다. 19세기 후반부터 이 노동요에 래그타임, 클래식, 블랙 가스펠 등과 같은 타 음악적 요소들과 결합하면서 20세기 초반 드디어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재즈'라는 장르로 탄생된다.

이후 뉴올리언스에서 벗어나 대도시 시카고와 뉴욕 등지에서 만개한 재즈는 대공황 때 잠시 주춤했으나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경제 호황의 기대와 함께 대규모 인원과 다양한 종류의 악기로 구성된 '빅밴드(Big Band)'에 의해 '스윙(Swing) 재즈'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비로소 흑인뿐만 아니라 여타 일반 대중 모두가 재즈에 관심을 가지고 즐기게 된 것이다. 이 시기만큼 재즈가 대중음악으로서의 찬란한 지위를 누리던 때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러나 비록 대중적인 음악으로 발전하고 인기를 구가했을지는 모르나 정작 연주자들 스스로는 빅밴드 내에서의 획일적인 연주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점차 대중들만을 위해 연주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흑인으로서의,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갈구하던 소수의 의식 있는 연주자들은 공식적인 모든 일정이 끝난 늦은 시각에 따로 모여 그들만의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비밥(Bebop)'이다. 애초에 비밥 재즈는 술 취한 청중보다는 연주자 자신들을 위하여 탄생한 재즈의 형태이기에 오히려 대중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다. ‘재즈는 어렵고 복잡한 음악’이라고 인식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해도 음악만은 파동으로든, 혹은 흔적으로라도 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다. 비오는 일요일 오후엔 음악을 읽어보자.

조선과 이탈리아 사이에 외교관계가 성립되는 과정은 여느 나라와는 다르게 여러모로 순탄하지 못하였다. 조약의 체결은 일찍이 1884년에 성사되었던 것에 반해 외교공관의 설치는 정작 17년이라는 세월을 넘긴 1901년에 와서야 겨우 실행되었던 까닭이다. 일본과의 병자수호조규(강화도조약; 1876년) 이후 우리나라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서구 열강의 대열을 통틀어 이탈리아는 결코 그 순서가 뒤지지 않았다. 미국(1882년), 영국(1883년), 독일(1883년)보다는 약간 늦지만 러시아(1884년), 프랑스(1886년), 오스트리아(1892년), 청국(1899년), 벨기에(1901년), 덴마크(1902년)보다는 그 시기가 훨씬 앞섰다.

여타의 각국 공사관이 주로 정동 안쪽에 밀집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탈리아 공사관은 이보다 약간 벗어난 서소문 방면에 자리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두 곳은 각각 공사관 거리(Legation Street)와 이탈리아 공사관 거리(Italian Legation Street)로 따로 구분하여 불렀다.  이탈리아 공사관 거리는 곧 지금의 서소문로를 말한다.


제물포구락부 드립백 커피를 통해 이 땅에서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우리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사람들을 그리워했었던 벽안의 외국인들과 기꺼이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잊혀진 영웅들을 바로 지금 제물포구락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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