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13

모비딕
20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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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한 근대문화유산



모든 것이 환히 드러나 숨길 수 없음에도 두 눈 다 뜨고 죄를 짓고 사는 공간을 어느 시인은 도시라 했다. 
그런 이유로 제 아이를 품고 살아야 하는 어른 된 자들은 힘껏 사랑의 장막을 치고 아이의 발이 그땅에 닿지 않게 어깨 너머의 세상을 먼저 보여주려 애쓴다. 

그래서 아이들은 도시의 일부만 보고 자랄 수 있다. 
굳이 체감할 이유가 없는 또는 있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그렇듯 아빠의 어깨가 바로 도시다.
[글|그림.조관제.화백]


17세기의 유럽은 술에 취해 있는 세계 그 자체였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성인이 하루에 마시는 맥주의 양이 3리터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커피야말로 술의 강력한 대체품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시기 유럽에서도 지금의 카페와 같은 의미로서의 커피하우스가 폭발적으로 생기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시작된 유럽의 커피 소비가 이윽고 커피를 전용으로 끓여 파는 곳, 즉 커피 하우스의 등장을 불러일으켰으며 1650년경에는 영국 런던에도 등장한다. 기록에 의하면 1700년 초 런던의 커피 하우스는 기록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략 약 2,000 ~3000 개에 달했다고 한다.
제물포구락부와 함께보는 오늘의 역사


중명전은 1901년 지어진 황실도서관으로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면서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 황태자(순종)와 윤비(尹妃)와의 가례(嘉禮)가 여기에서 거행되었으며,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었던 비운(悲運)의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궁중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이자,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시련의 근대사를 간직한 현장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덕수궁을 축소시키면서 1915년에 외국인에게 임대되어 1960년대까지 경성구락부(Seoul Union)로 사용되었다. 1925년에는 화재로 인해 내부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최근까지 건물의 용도와 소유주가 수시로 변경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오늘 <제물포구락부의 서재>에서 소개드릴 책은 인천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 권의 책입니다. 
<그대 추억,인천 기억>은 개교한 지 60년 이상된 17개 고교의 50년대 초 ~ 80년대 초까지의 졸업앨범 속 사진으로 인천을 이야기하는 사진집입니다. 궁핍했던 그 시절을 온전히 추억으로 되돌아볼 수 있다는 건 시간이 주는 그 자체의 힘 때문이겠지요. 
<까치발로 본 인천>은 어린 시절 더 크고 넓은 곳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듯이 옥상과 아파트 고층, 드론으로 인천의 구석구석을 담았습니다. 미처 발견치 못했던 인천, 그리고 까치발로 바라본 인천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오래된 그래서 새로운>은 개항기부터 현재까지의 인천을 천천히 둘러보며 미래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세 권의 책 모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인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천이 이토록 다양한 매력을 가진 도시인 줄 미처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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