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9

모비딕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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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한 근대문화유산



매일 함께 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때마다 비슷한 변변치 않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잡는데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한번에 먹자니 입 속이 먼저 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나머지 한 장을 떼어내어 주려고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글.유병록.시인/ 그림.조관제.화백)


<감자 먹는 사람들>은 1885년 고향 누에넨으로 돌아온 고흐가 농촌 풍경과 농부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려고 마음먹었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어느 날 이웃 농부의 집을 방문한 고흐는 고된 노동을 끝내고 감자를 먹는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후 각각의 가족 얼굴을 수십 번씩 스케치를 하며 준비했을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다. 비록 작품 발표 당시의 평단 반응은 형편없었지만 고흐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너무나도 만족한 나머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을 정도다.

“작은 등불 아래서 접시에 담긴 감자를 손으로 먹는 이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그들이 마치 땅을 파는 사람들처럼 보이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애썼단다. 이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건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정직하게 번 것임을 말하고 싶었지”

제물포구락부와 함께보는 오늘의 역사


을미사변을 목격하면서 정치적으로 한동안 곤욕을 치른 사바틴은 1896년 서재필의 독립협회가 발주한 ‘독립문’ 설계를 시작으로 다시 본연의 건축가로 돌아간다. 독립문 완공 후 바로 이어서 영국 무역상사 홈링거양행 인천지사 사옥(1898)을 건설했다. 홈링거 양행은 러시아의 동청해상기선회사의 인천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건축 건을 계기로 그 회사의 인천지점장으로 취직했다. 건축일은 한시적이므로 생활고 해결을 위해 아예 직장에 취직한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다시 거주지를 옮겼다.
인천에 다시 정착한 후 사바틴은 그의 마지막 작품을 인천에서 완성한다. 그 작품이 바로 1901년에 건축한 제물포구락부이다.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중에 별다른 수식 없이 언더우드(Underwood)라는 이름을 일컫는다면 대개는 구한말 당시 새문안 교회와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최초의 장로회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를 떠올릴 것이다하지만 언더우드의 가계(家系)를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진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이후 무려 4대에 걸쳐 한국을 사랑하고 헌신한 가문이기에 적지 않은 언더우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그 중 1대 언더우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Lilias Horton Underwood)는 조선에 직접 살면서 기록한 그녀의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철쭉꽃 핀 제물포구락부, 4월25일
녹음이 우거진 제물포구락부,5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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