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력을 지구 반대편 세상의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오늘날의 세계는 유럽의 문자, 철학, 문화, 정치와 제도를 기준으로 통합되고 있으니까. 국가 간의 거리는 나날이 단축되고 국경과 민족의 경계는 옅어져,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마냥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로마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날짜, 즉 역법부터 그렇다. 거의 전 세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력은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시행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레고리우스력은 기원전 46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행한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보완한 것이다. 카이사르의 시대로부터 약 1600년이 지났을 무렵엔 천문학이 더 발전해 지구의 공전 시간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1년의 길이는 365.25일에서 365.2422일로 조정됐다. 다시 말해 그레고리우스력은 율리우스력의 1년 단위에서 11분 14초를 뺀 방식이다.
날짜에 담긴 로마의 흔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열두 달의 이름은 고대 로마 시대에서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 심지어 7월과 8월은 가장 유명한 고대 로마 인물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제 전 세계인은 고대 로마인이 쓰던 언어, 즉 라틴어의 토양에서 발을 떼고 살 수 없게 되었다.
세계 어디에 있든 로마자라는 문자체계(가장 대표적으로 영어)를 접하지 않기는 어렵다. 또한 오늘날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은 라틴어의 방언들(이들을 로망스어라고 한다)이고, 영어 어휘의 3분의 2는 라틴어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역법을 뜻하는 캘린더 역시 로마 시대의 단어 칼렌다리움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로마를 보는 것은 우리 세계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아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자취를 좇는 일은 분명 유익할 테고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건 부수적이다. 로마라는 도시 이야기를 나누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꺼내고 싶은 대답은 “재미있으니까”다.
지금의 로마는 변화가 느리고 낡은 장소라는 이미지를 풍기지만 사실 이 도시는 2700년 내내 멈춰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단지 생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격렬히 움직여왔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이야기 창고가 되었다. 이 책엔 ‘세계 최초’ 또는 ‘세계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이야기들을 담았다.
로마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피와 살로 실재했던 수많은 인간의 의지와 행동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말과 글뿐만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장소, 물건, 이름 등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은 이 이야기들의 후속편 혹은 외전이기도 하다.
누군가 로마를 한 마디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순례의 도시라고 답하고 싶다. 순례를 떠나는 사람은 위대한 뭔가의 자취를 우러러보며 정신이 고양되고 새로이 영감을 얻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수백 년 전부터 많은 순례자가 위대한 흔적을 찾아 로마로 향했다. 그 흔적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책을 보고 로마에 가보고 싶다, 또는 다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다. 로마의 낡은 벽돌 더미나 부러진 기둥들을 그냥 무심코 넘기지 않게 된다면 더 좋겠다. 로마에서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사연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으니까.
책의 전문이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지름길을 찾으실수 있습니다. 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의 애독자 여러분들. 새해에도 매주 화요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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