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96

개항장의 숨은보석 제물포구락부


카투니스트 이대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을 맡아 '깐부 할아버지'란 별명을 얻은 오영수(78) 배우가 한국인으로써는최초로 골든글로브 연기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78)
연일 영하 10도를 내리 달리는 1월 한파를 멈칫하게 하는 훈훈한 뉴스였습니다. 뭐랄까요.. 저 또한 유년기와 군 복무 시절 내내 그저 폭력의 시대를 아무렇지 않게 살아낸 쓸쓸한 세대의 일원으로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블록버스터급 콘텐츠로 주목받고 전 지구를 돌아 회자된다는 사실이 좀 얼떨떨할 뿐입니다만, 팔순을 바라보는 老배우의 소식에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 있네요. 

더불어 2022년 새해 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96의 커버아트 또한 오징어 게임을 테마로 한 카툰 작품 두 컷을 소개해드립니다.

카투니스트 이영우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에피소드 4에서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새벽"에게 주인공 "기훈"이 던지는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은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기댈 데가 없어 믿는 거지." 믿을만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닌, 옆에 있는 사람을 믿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는 2022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애독자 여러분. 지난해 모두 모두 수고하셨고 '22년 임인년도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응원합니다.

카투니스트 강길수의 "어서와 수고했어"
카툰 작품 게재를 허락해주신 사단법인 한국카툰협회 소속 작가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새해에도 해학이 넘치는 작품들 많이 많이 그려주세요~.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게임‧웹 컨셉 아티스트가 들여다 본 로마라는 시공간 
<로마시티> (이상록, 책과 함께)

로마는 그리스와 함께 현재의 유럽을 있게 한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로마를 머리속으로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초기 기독교와 이를 압박하는 탐욕스런 황제들, 대화재, 중세, 르네상스를 생각하다가 어느새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에까지 이릅니다. 
다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역사속 로마의 모습은 단지 유물과 유적으로서만 접했기에 다소 칙칙한 기분으로 가늠할 뿐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어떤 색감을 가지고 있을까요? 로마를 한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서유럽의 일반적인 풍경과는 결이 조금은 다른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아는 현재의 로마는 제국이 멸망한 뒤 새건물을 올릴 때 옛 건물을 치우지 않고 흙을 덮은 다음 새 건물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시간을 품은 유적들 위에서 현대의 평범한 일상이 무심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로마의 상징성은 2500년 전 유적 위의 맥도날드에서 사람들이 태연하게 햄버거를 먹는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로마시티> (이상록, 책과 함께)는 일러스트레이터, 컨셉 아티스트이자 UI디자이너 등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2000년대 초에 처음 로마를 여행하고 고대 로마의 매력에 빠진 이후 수 차례 로마를 왕래하며 쓴 책입니다. 

사진 대신 그가 직접 그린 3천여 점의 일러스트는 현재의 로마 풍경뿐 아니라 과거 역사속 장면까지 화려한 색감으로 담아냈습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 유럽의 문화와 양식을 주도한 로마의 예술을 선명한 사진보다도 오히려 생동감 있게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전공자의 책이 아니기에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기존 역사서의 고리타분한 면을 탈피합니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건국 신화부터 1861년 통일 이탈리아까지 그 어떤 역사서보다 쉽고 설득력 있게 과거와 현재의 로마를 보여줍니다.

가령 우리는 네로 황제가 수도 로마를 새로운 도시로 만들겠다며 불을 지르고는 아비규환의 도시를 바라보며 노래까지 불렀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는 건물의 밀집도가 높아 상시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단지 네로의 치세에 일어났을 뿐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화재로 집을 잃은 시민들이 그들의 분노를 네로에게 전가했다는 겁니다. 
이밖에 로마제국 멸망의 원인이 나태와 방탕 때문이라는 것, 르네상스가 단순히 신을 부정한 인문정신의 토대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등 우리가 갖고 있는 로마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설득력 있게 바로잡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현재의 도시 ‘로마’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로마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순수한 관광객의 입장에서 유적과 유물, 예술품을 엮어 자연스럽게 로마를 소개합니다. 
579 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책임에도 천천히 읽다보면 로마 역사를 관통하는 각 시대의 특징을 알아가는 재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유럽과 현대 문명의 근원이라 부를 수 있는 로마의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현재를 가늠하고 나아가 직접 여행하고픈 욕구까지 불러 일으키는, 대단한 공력이 들어간 책입니다.

재즈브루잉

미국 재즈의 역사에서 재즈 에이지(Jazz Age)라 불렀던 1920년대 혹은 대공황이 끝나자마자 광풍처럼 미국 전역을 들끓케 한 위대한 빅밴드 재즈 시대를 재즈가 가장 화려했던 시기라 일컫습니다. 
하지만 빅 밴드, 비밥, 쿨재즈 시대를 거쳐 195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하드밥이야말로 비밥을 직접적으로 계승하면서 콜앤리스펀스 형식 즉 그들의 본향 아프리카 토속 음악 스타일인 블루스로 회귀한 진정한 재즈라 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이 시기가 바로 진정한 재즈의 전성기라 할 수 있습니다.

(Art Blakey, 1919년 10월 11일 ~ 1990년 10월 16일)
하드밥 시기에 바로 이러한 경향을 주도하던 인물 중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가 바로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입니다. '예술적인 검둥이’로 해석할 수 있는 아트 블레이키의 본명은 원래 '압둘라 부하이나'입니다. 
아트 블레이키라는 예명을 가졌다는 것은 당시 메카시즘의 검은 열풍이 가시지 않은 흉흉한 사회 정서를 고려할 때 자칫 사상이 불순한 흑인의 반항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1919년 10월 11일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아트 블레이키는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우고, 15세에 이미 자신의 빅 밴드를 이끌지만 에롤 가너에게 피아니스트 자리를 빼앗기면서 드럼으로 전향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집니다. 이후 뉴욕으로 진출하여 플레처 헨더슨 악단 등을 거쳐 44년 최초의 비밥 오케스트라 빌리 엑스타인 악단의 창립 멤버로 47년 해산 때까지 활약하였습니다. 

그가 40년 가까이 이끌었던 팀의 이름인 재즈 메신저스(The Jazz Messengers)는 무슬림이었던 그가 종교적 의미를 담아 ‘사도’라는 뜻으로 처음 지었다고 합니다. 40년대 말, 아프리카로 떠났던 여행에서 그는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혔습니다. 
그래서 아트 블레이키, 즉 ‘예술적인 검둥이’라는 이름은 결국 가장 흑인적인, 그러면서도 예술적인 재즈를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초반 여행에서 돌아온 아트 블레이키는 54년에 호레이스 실버 퀸텟의 블루 노트 세션에 참가하였던 케니 도햄, 행크 모블리 등을 영입, 55년 2월 기존의 메신저라는 이름에 ‘재즈’를 더해 ‘더 재즈 메신저스(The Jazz Messengers)를 정식으로 탄생시킵니다. 그로부터 재즈 메신저스는 수많은 명반을 만들어냈을뿐 아니라 '재즈 사관학교'로 불릴만큼 재즈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리 모건, 클리포드 브라운, 베니 골슨, 척 맨지오니, 윈튼 마살리스, 브랜포드 마살리스 등 현재 재즈씬에서 거장 소리를 듣는 수많은 뮤지션이 재즈 메신저스의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1959년에 발표한 <Moanin'>은 수많은 재즈 메신저스의 명반들 가운데서도 가장 손꼽히는 앨범입니다. 그중 타이틀곡 Moanin'은 피아니스트 바비 티몬즈(Bobby Timmons)가 작곡한 곡으로 하드밥, 즉 소울 스타일의 재즈를 대표하는 명곡입니다. 비밥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토속 음악 특유의 콜앤리스펀스(Call and Response)형식에 충실한 소울 재즈 스타일의 곡입니다. 

불행했지만 결코 잊지 않고 있던 흑인들의 소울 감성이 짙게 배어 있는 리듬은 이전의 스윙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아트 블레이키 하면 Moanin’ 이고 Moanin’은 곧 하드밥이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유명한 곡입니다. 블루스 형식의 8마디가 반복되는 피아노의 인트로 부분만 들어도 재즈 애호가들뿐 아니라 재즈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는 이 조차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익숙한 곡입니다. 

뒤에 곧바로 터질 듯 뿜어져 나오는 아트 블레이키의 드럼은 왜 아트 블레이키가 재즈 레전드인지, 왜 재즈 메신저스가 재즈 사관학교로 불리는지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로마시티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에피소드#2 로마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세계의 이야기
이런 이유로 로마는 오랫동안 많은 이방인을 끌어당겼다. 독일의 괴테 역시 그런 이방인이었다. 그는 로마를 여행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로마에서 시작하는 역사는 세계 어느 곳의 역사와도 다르게 읽힌다. 다른 데서는 바깥에서 안으로 향하는데, 여기서는 안에서 바깥으로 향한다. 모든 것은 이곳에 모여 있다가 이곳으로부터 퍼져나간다. 로마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로마라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지만 괴테와 같은 이유로, 로마의 ‘바깥’인 유럽, 더 나아가 세계에 관한 이야기로도 향하게 될 것이다. 서양 문명의 두 뿌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일컬어진다. 전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의) 고대 그리스 문명, 후자는 유대교와 그 분파들, 특히 그리스도교 문명을 말한다. 그런데 헬레니즘은 로마제국이 계승하고 완성해 널리 퍼뜨렸고, 지역 종교에 불과했던 그리스도교도 로마 교회를 거치며 세계 종교의 위상에 올랐다. 로마는 고대 로마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본산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양 문명은 로마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트레비 분수 맞은편에 있는 건물. 예사롭지 않은 기둥들이 유명 패션 브랜드숍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천년 전 중세의 것들이다. 로마에서는 평범하지 않은것들이 평범한 풍경 속에 아무렇지도 않은듯 섞여 있다. 

이런 내력을 지구 반대편 세상의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오늘날의 세계는 유럽의 문자, 철학, 문화, 정치와 제도를 기준으로 통합되고 있으니까. 국가 간의 거리는 나날이 단축되고 국경과 민족의 경계는 옅어져,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마냥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로마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날짜, 즉 역법부터 그렇다. 거의 전 세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력은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시행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레고리우스력은 기원전 46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행한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보완한 것이다. 카이사르의 시대로부터 약 1600년이 지났을 무렵엔 천문학이 더 발전해 지구의 공전 시간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1년의 길이는 365.25일에서 365.2422일로 조정됐다. 다시 말해 그레고리우스력은 율리우스력의 1년 단위에서 11분 14초를 뺀 방식이다. 

날짜에 담긴 로마의 흔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열두 달의 이름은 고대 로마 시대에서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 심지어 7월과 8월은 가장 유명한 고대 로마 인물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제 전 세계인은 고대 로마인이 쓰던 언어, 즉 라틴어의 토양에서 발을 떼고 살 수 없게 되었다. 
세계 어디에 있든 로마자라는 문자체계(가장 대표적으로 영어)를 접하지 않기는 어렵다. 또한 오늘날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은 라틴어의 방언들(이들을 로망스어라고 한다)이고, 영어 어휘의 3분의 2는 라틴어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역법을 뜻하는 캘린더 역시 로마 시대의 단어 칼렌다리움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로마를 보는 것은 우리 세계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아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자취를 좇는 일은 분명 유익할 테고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건 부수적이다. 로마라는 도시 이야기를 나누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꺼내고 싶은 대답은 “재미있으니까”다. 

지금의 로마는 변화가 느리고 낡은 장소라는 이미지를 풍기지만 사실 이 도시는 2700년 내내 멈춰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단지 생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격렬히 움직여왔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이야기 창고가 되었다. 이 책엔 ‘세계 최초’ 또는 ‘세계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이야기들을 담았다. 

로마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피와 살로 실재했던 수많은 인간의 의지와 행동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말과 글뿐만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장소, 물건, 이름 등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은 이 이야기들의 후속편 혹은 외전이기도 하다. 
누군가 로마를 한 마디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순례의 도시라고 답하고 싶다. 순례를 떠나는 사람은 위대한 뭔가의 자취를 우러러보며 정신이 고양되고 새로이 영감을 얻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수백 년 전부터 많은 순례자가 위대한 흔적을 찾아 로마로 향했다. 그 흔적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책을 보고 로마에 가보고 싶다, 또는 다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다. 로마의 낡은 벽돌 더미나 부러진 기둥들을 그냥 무심코 넘기지 않게 된다면 더 좋겠다. 로마에서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사연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으니까.
1901년 건립된 서양인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제물포구락부가 늘 관심을 기울여 탐구하고 있는 서양국가체제의 근원과 철학을, 이상록 작가와 함께 로마에서 한번 들여다보고자 2022년 기나긴 장정을 시작합니다. 
책의 전문이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지름길을 찾으실수 있습니다. 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의 애독자 여러분들. 새해에도 매주 화요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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