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82

개항장의 숨은보석 제물포구락부


독창적 작품세계를 일군 작가이자 해방 후 인천 문화예술계를 이끌었던 고여(古如) 우문국(禹文國) 선생은 다양한 기록을 남긴 기록인(記錄人)으로도 유명하다. 
선생의 개인사뿐 아니라 인천지역 예술단체와 인천문화원, 인천시립박물관에 관련된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자칫 먼 과거의 일로 묻히거나 한낱 명확치 않은 풍문으로 떠돌았을 사실들이 선생의 기록으로 역사적 진실로 온전히 각인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고여 우문국 선생이 남긴 다양한 기록들은 공공의 가치를 지닌 인천문화예술 역사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행히 고여 선생이 남긴 기록들은 가족(부인 최분순, 장남 우경복, 장녀 우선덕, 차녀 우미령, 차남 우경원)들에 의해 비교적 다양한 형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본래 개인의 기록은 당사자의 기억 재생 이상의 의미를 넘기 힘든 면이 있다. 또 아무리 귀중한 기록일지라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기록은 단지 무용한 흔적이거나 한 가계의 잊혀진 가족사가 될 뿐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사적 경계를 넘어 공적 역사로서 미래를 위한 디딤판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제물포구락부 기획전 <비망록 備忘錄 : 고여 우문국의 기록으로 기억하다> 는 그렇게 보관된 방대한 사진, 친필 메모, 일지, 도록과 여러 매체에 실린 기고문 등을 추리고 분석하고 조합하여 세상에 선보이는 자리다. 

더우기 이번 전시는 고여 선생이 제3대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열정을 쏟았던 제물포구락부에서 열리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전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했다. 
첫째, 인천문화예술계의 초석을 다지며 문화예술 행정가로서 이룩한 고여 선생의 역할과 업적이다. 
둘째, 결혼수첩 - 방명록을 통해 동시대에 활동했던 문화예술인들간의 교류와 당시 문화예술계의 풍경이다. 
세째, 서양화, 한국화, 패분화(貝粉畵)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독창적 작품세계를 이룬 화가 우문국 선생의 예술세계에 대해 조망한다. 

이번 <비망록 備忘錄 : 고여 우문국의 기록으로 기억하다>는 고여의 인간적 면모뿐 아니라 문화예술 행정가로서의 자질과 화가로서의 예술적 성과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기에 고여 선생이 활동했던 시대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는 있는 것도 작은 성과라고 하겠다. 이 모든 것은 전시를 위해 육필 원고와 사진등을 흔쾌히 내 준 선생의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여 우문국 선생과 그의 시대를 조명하는 일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아직 미발굴되었거나 혹은 미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산재해 있을 자료, 기록의 체계적인 수집과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역사의 기록에 대한 책임은 기록하는 자뿐 아니라 그 기록을 보존하고 연구하여 가치를 인식하고 부여하는 자들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제믈포구락부의 서재
<연필> (헨리 페트로스키, 서해문집)

책상 위에라면 반드시 한 두개씩 굴러 다니는 사소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연필입니다. 연필은 값싸고 흔하며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다지 중요한 쓰임새도 아닙니다. 아마도 일상에서 주목받지 못한 대표적인 물건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서도 연필을 주변에서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코에 연필을 가까이 대면 흑연과 나무 냄새가 섞인 익숙한 향이 어린 시절의 회상 속으로 빠지게 만듭니다. 
유년 시절의 아버지가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 주시던 모습, 볼펜 껍데기에 끼워 쓰던 몽당연필, 가끔은 혀가 새까맣게 되는 줄도 모르고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썼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마도 질 낮은 흑연을 사용한 싸구려 연필이었을 겁니다.

가느다란 나무자루속에 어떻게 연필심을 끼울까? 외국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왜 노란색 연필만을 사용할까? 
연필끝에 달려 있는 지우개는 왜 그렇게 질이 안좋을까? 연필을 한창 사용하던 어린 시기에 품었던 의문들입니다.

연필에 관련된 이야기 중에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얽힌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로가 숲속 오두막으로 들어가기 전 연필 제작업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소로는 대학졸업후 얻은 교사직을 단 2주만에 그만두고 가업이던 연필제조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단순히 연필생산뿐 아니라 연필심 재료인 흑연의 분쇄와 배합 과정을 연구한 연구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책 <월든>에는 연필 제조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드럽게 써지면서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연필 생산 기술은 소로가 연필을 생산하고 연구하던 18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하이테크 공법이었습니다. 
각 제조사는 자기만의 비법으로 나무를 재단하고 흑연과 점토를 배합하여 심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연필의 품질은 제조사마다 제각각이었고 소로 역시 더 나은 품질의 연필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뒤지며 연구했던 겁니다.

세계적인 공학자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책 <연필> (서해문집)은 16세기 중반에 처음 등장한 이후 수많은 형태와 제조 방법을 거쳐 현재와 같은 형태로 자리잡은 연필에 관한 책입니다. 
소로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연필의 기원, 제조 공법의 변천 과정, 연필 산업, 학문과 예술에 미친 영향 등 연필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할 만한 책입니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욕심을 과하게 낸 탓인지 내용이 너무나도 방대하고 산만합니다. 대단한 의욕과 끈기 없이는 600여 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공학과 인문학 양면을 넘나드는 것도 어떤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의 경우 워낙 널뛰기가 심하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책을 덮어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어렵다거나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단락 정리와 메모를 하며 읽어야만 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책을 읽고 나면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연필에 관한 의문은 거의 해소될 듯 합니다. 그 이유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있습니다.

재즈브루잉

1984년 미국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서는 굉장한 사건이 일어난다. 
신시사이저 키보드를 맨 허비 행콕과 턴테이블의 스크래치를 조작하는 디제이, 브레이크 댄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은 하반신만으로 천장에 매달린 것들을 포함한 로봇 댄서들의 등장이었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허비 행콕의 앨범 <Future Shock>의 리드 싱글 ‘Rockit’이었다. 이어진 수상식에서 허비 행콕은 그래미 최우수 R&B 퍼포먼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Rockit’의 오리지널 뮤직 비디오는 제 1회 MTV VMA에서도 ‘최우수 비디오 컨셉상’을 받았다. 
이 비디오 속 영상 역시 충격적이다. 마찬가지로 하반신만 있는 로봇들이 춤을 추고 심지어 거실에 있는 모든 것이 로봇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새 조차도 로봇이며 단지 TV 모니터 속 허비 행콕만이 생명을 가진 인간이다. 
로봇들이 추는 춤은 전통적인 사위와는 다르다. 시종 신디사이저의 키보드 음과 디제이의 스크래치 소리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브레이크 동작일 뿐이다. 일종의 일렉트릭 펑크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앨범 Future Shock는 제목이 일러주는대로 한마디로 쇼크다. 
앨범 제목은 엘빈 토플러의 저서 <미래의 충격>(Future Shock, 1970)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뮤지션 커티스 메이필드가 베트남 전쟁의 비극과 충격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곡에 앨빈 토플러의 책 제목 Future Shock를 차용했고 나중에 허비 행콕이 이 곡을 커버하며 앨범에 수록하면서 자연스럽게 앨범 타이틀로 정한 것이다. 
앨빈 토플러가 주장하는 의미와 커티스 메이필드가 주장하는 Future Shock에 대한 의미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나 허비 행콕은 커티스보다는 앨빈 토플러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허비 행콕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11세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모차르트를 연주했다. 
하지만 허비 행콕은 즉흥연주에 매료된 나머지 재즈로 전향했고 1960년 트럼펫 연주자인 도널드 버드와 함께 그룹을 결성한다. 하지만 23세의 나이가 되던 1964년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발탁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재즈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곧바로 마일즈 데이비스의 제2기 퀸텟’의 주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1969년 앨범 <In A Silent Way>를 끝으로 결별한다. 
이후에도 마일즈의 영향 탓인지 퓨전재즈 앨범을 연달아 발표하지만 마일즈 데이비스가 재즈에 록을 주로 도입한 반면 허비 행콕은 음악적 동기를 펑키에서 가져온다. 
대표적 앨범이 바로 73년 컬럼비아에서 발매된 <Head Hunters>다. 특히 수록곡 Chameleon은 나중에 수많은 재즈 힙합 뮤지션들이 샘플링하는 전설적인 곡이 되었다.

허비 행콕의 최대 문제작이라면 바로 이 두 앨범 <Future Shock>와 <Head Hunters>를 꼽을 수 있는데 둘 다 재즈 보다는 펑크나 힙합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 재즈에 대해 허비 행콕이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1968년 도널드 버드와 함께 앨범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Takin' Off>등 다수의 앨범을 히트시키기도 한다. 

이 앨범에도 역시 많은 뮤지션들이 샘플링하는 곡 'Watermelon Man'이 수록되어 있다. 또 랩그룹 Us 3가 샘플링하여 빅히트한 ‘Cantaloupe Island’ 역시 허비 행콕이 1964년 프레디 허바드와 함께 발표한 명곡이다. 이 모두가 허비 행콕의 재즈에 대한 확장된 스펙트럼을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허비 행콕의 이후 앨범들은 이전의 파격적인 행보와는 달리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앨범 Future Shock는 허비 행콕의 새로운 음악적 돌파구였던 셈이다. 어쨌든 Future Shock는 허비 행콕의 목적한 바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빌보드 핫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에서 1개월 동안 수위에 올랐고 앨범은 100만장이 넘게 팔려 플래티넘을 기록하였다. 앨범 제목처럼 허비 행콕 개인과 재즈, 나아가 음반업계 등 모든 부분에 쇼크를 던져준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들어도 범상치 않게 들렸으니 1984년 당시 얼마나 쇼킹했는지 가히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 팬더믹과 지금 이 순간 전세계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있는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쇼크에 비하면 앨범 Future Shock는 한낱 작은 에피소드로 보일지도 모른다. 쇼크가 일상이 된 2021년을 미래의 세계인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조망할까? 사뭇 궁금하다.

인문학 아카데미
인천은 개항기 조선에서 가장 먼저 해관(세관)이 설치된 곳입니다. 지난 9월24일 제물포구락부 인문학 아카데미에서는 독학으로 세관 뿌리 찾기에 나서고 있는 인천세관 김성수 과장님을 모시고 그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개항기에 해관의 역할과 해관 사료의 발굴 과정들을 들어보았습니다.

본 영상은 유튜브 라이브로 2시간 가량 송출되었으며 뉴스레터 독자들을 위해 클립단위로 별도 편집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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