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78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연평도 밤풍경
연평도(延坪島)는 경기만 북서쪽에 있는 대한민국 관할의 섬 또는 제도(諸島)로, 주 섬인 대연평도(大延坪島)를 비롯하여 소연평도(小延坪島) 등 주변의 부속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한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해주군(벽성군) 송림면(松林面)에 속했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어,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현재까지도 임경업을 기리는 사당 충민사(忠愍祠)가 존재해 있다.
연평도는 조기잡이가 시작되면서부터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외래문화의 도입은 1910년대에 천주교인 전응택(佺應澤,바오로)일가가 입도하여 교회(공소)를 설립하면서 비롯되었다.
[사진:인천 토박이 사진작가 홍승훈 제공]

홍승훈 작가의 좀 더 많은 작품을 보실려면 인천시민애집 디지털갤러리를 방문해주세요.

재즈브루잉

어느덧 9월이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것이 이젠 가을 문턱에 서 있다는 기분이 든다. 길었던 해도 눈에 띄게 짧아지기 시작했다. 황금빛 계절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하늘을 더욱 높고 푸르게 한다. 
그러고 보니 9월을 얘기하는 노래중에 슬픔이나 불행을 노래하는 곡을 찾기도 쉽지 않다. 소개하는 곡 ‘September Song' 은 그 중에서도 9월의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노래하는 재즈 스탠더드다. September Song은 쿠르트 바일 (Kurt Weill)이 작곡하고, 맥스웰 앤더슨(M. Anderson)이 작사한 곡으로 1938년에 발표되었다. 
원래는 193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니카보카 홀리데이(Knickerbocker Holiday)>에 삽입되었던 노래다. 
빙 크로스비 1943년과 1977년 두 번 이 곡을 녹음했으며 그 밖에 빌리 엑스타인, 냇 킹 콜 등이 불러 스탠더드 넘버로 자리잡았다.

쿠르트 바일 (Kurt Weill Kurt, 1900. 3. 2 ~ 1950. 4. 3 ) 사진 출처 : variety.com
1900년 독일 데사우(Dessau)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작곡자 쿠르트 바일은 6살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2살에 이미 작곡을 하기 시작했으며 1918년 베를린음악원에 입학, 이론적인 공부와 더불어 음악 현장에서의 경험도 함께 쌓았다. 
1927년에는 쿠르트 바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그의 중요한 예술적 동지라 할 수 있는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를 만나게 된다. 브레이트와의 협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이 시기 1928년에 바일이 내놓은 성과가 바로 현대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서푼짜리 오페라(The Threepenny Opera)’다.

서푼짜리 오페라 공연 포스터 (사진 출처 : www.criterion.com)
'서푼짜리 오페라'는 계급간의 갈등과 사회의 모순에 대한 풍자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바일이 이 작품에서 선 보인 악단은 현악기보다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중심으로 편성하여 클래식 오케스트라보다는 재즈밴드에 가까운 형태였다.

 따라서 아리아 역시 전통적인 성악 창법이 아닌 재즈와 같은 대중적인 창법을 적용했다. 실제로 몇몇곡은 루이 암스트롱고 프랭크 시나트라 등 재즈 보컬이 부르기도 했다. 발표된 1928년 한 해에만 무려 4,200회나 공연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유대인이었던 바일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1933년 파리를 거쳐 1935년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뮤지컬과 영화음악 등 대중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여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1950년 그의 생일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몇 일 후 별세했다. 

September Song은 앞서 말한대로 여러 가수가 노래했으나 그 중 엘라 피츠제럴드의 버전이 가장 유명하고 들을만 하다. 1960년 4월, 피아니스트 단 한 명만을 데리고 어느 영화 사운드 트랙을 위해 녹음한 13곡 중에 들어 있는 September Song이다.

Ella Fitzgerald - Let No Man Write My Epitaph (1960) 이미지 출처 : www.discogs.com
September Song 
When he was a young man courting the girls 
He played a waiting game 
If a maid refused him with tossing curls 
He'd let the old Earth take a couple of whirls 
As time came around, she came his way 
As time came around, she came 

그가 소녀들에게 구애하던 청년이었을 때 
그는 기다리는 놀이를 했었어요. 
그녀가 머리를 흔들며 그를 거절하면 
그는 옛 지구가 두 번의 소용돌이를 지게 했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는 그의 길로 되돌아왔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는 다시 돌아왔어요. 

But it's a long, long while from May to December 
And the days grow short when you reach September 
The autumn weather turns the leaves to flame 
And I haven't got time for the waiting game 

오!, 5월에서 12월까진 길고 긴 시간이지요. 
그러나 그대가 9월을 맞이했다면, 
나머지 날들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지요. 
가을의 기후가 나뭇잎을 빨간 불꽃처럼 바꿔버릴 때, 
난, 게임처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Oh, the days dwindle down to a precious few 
September, November 
And these few precious days I'll spend with you 
These precious days I'll spend with you* 

오!, 그 많던 나날들이 남은 날짜가 점점 줄어드네요. 
조금 남은 9월 그리고 곧 11월. 
그래서 이 소중한 며칠을 난 그대와 보내고 싶어요. 
이 소중한 나날을, 난 그대와 함께 보낼 거예요.

Ella Jane Fitzgerald (1917. 4. 25 ~ 1996. 6. 14) 사진 출처 : www.biography.com
엘라 피츠제럴드는 역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들 중 가장 완벽한 기교를 가진 보컬이라는 찬사를 받는 뮤지션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빌리 홀리데이만큼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가진 보컬은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자기 관리가 철저하여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한 가수였다. September Song이 녹음된 1960년이라면 그중에서도 엘라 피츠제럴드의 예술성이 최정점을 이루고 있던 시기다. 
그만큼 완벽한 완벽한 상태의 엘라 피츠제럴드의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는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9월의 아름다운 ‘소중한 며칠’을 노래하고 있다. 폴 스미스의 피아노는 전혀 튀지 않으면서도 엘라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받쳐준다. 엘라의 목소리는 굳이 말 할 필요도 없다. 
결혼 생활이 그리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로망을 엿보는 것 같다. 엘라가 노래한 것처럼 9월은 ‘그대’와 함께 애틋하고 달콤하게 보내시라. 다행히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소중한 며칠'은 아직 여유가 있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September Song · 
Ella Fitzgerald Ella Fitzgerald Sings Songs 
from "Let No Man Write My Epitaph ℗ A Verve Label Group Release; 
℗ 1960 UMG Recordings, Inc. Released on: 1960-06-01 Producer: 
Norman Granz Studio Personnel, Recording Engineer: Val Valentin Associated Performer, Piano: Paul Smith Associated Performer, 
Vocals: Ella Fitzgerald 
Composer Lyricist: Maxwell Anderson Composer Lyricist: Kurt Weill Auto-generated by YouTube.

제물포구락부 예전 이맘때

2020년 9월 11일 사진입니다. 예전 이맘때 많은분들이 애써주신 덕분에 인천시는‘스마트관광도시 시범조성 사업’ 의 최종 대상지로 선정되었습니다. 총 21개 지자체의 참여 신청을 받아, 여러 평가과정을 통해 인천광역시(중구 개항장거리 일원)가 당당히 최종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는데요..다시한번 여러분들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 드립니다. 


재물포구락부의 서재

<몰락하는 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박인원 역, 문학동네)

자신의 조국을 지독히도 증오했던 작가. 하지만 잉게보르크 바흐만, 페터 한트케와 더불어 조국 오스트리아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 어떤 면으로는 카프카와 비견되는 위대한 작가. 모두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 1931~ 1989)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1957년, 첫 시집을 출간한 이후 자전적 소설 ‘추위’등을 비롯한 작품을 통해 평단의 호평을 받는 작가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대한 그의 깊은 반감은 1968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수상소감 연설에서 오스트리아는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조직’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는 ‘빈사 상태에 빠진 인간들’이라 독설로 논란을 일으키며 ‘둥지를 더럽히는 자’, ‘조국에 침을 뱉는 자’로 불리게 됩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나치 독일 합방 50주년과 빈 부르크테아테의 100주년 기념 공연작 '영웅광장'을 통해 나치와 병합한 오스트리아를 역사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의 작품과 공연에 대해 검열과 금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고 당시 여당 당수는 수도 빈에서 베른하르트를 몰아내고 그의 작품들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대한 그의 증오는 1989년 그의 사망 이틀 전 직접 공증을 마친 유언장에서 정점이자 마지막 구두점을 찍습니다. 
베른하르트는 이 유언장에서 저작권법에 따라 오스트리아 국경 내에서 자신의 작품이 출판·공연되는 것을 일절 금지시켰던 겁니다. 
이에 대해 베른하르트의 전기를 쓴 ‘한스 횔러’는 나치 시대 많은 작가들이 망명을 택했던 것과 달리 ‘사후(死後) 문학적 망명’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만큼 나치에 협력했던 조국에 정면으로 맞섰던 작가입니다. 
이토록 지독한 오스트리아에 대한 증오의 기저에는 사생아로 출생하여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유아기의 상처, 새로운 가정을 꾸린 어머니로부터 보내진 나치 운영 학교에서 당한 체벌과 감금, 나치 소년단 동급생들에게 시달린 폭력등도 작용했다고 베른하르트 자신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몰락하는자>는 베른하르트가 전 생애와 작품으로 천착한 죽음과 절망 자살 고통과 같은 주제가 드러난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입니다. 1인칭 화자인 ‘나’와 소설 작품 발표 당시 실존 인물이었던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글렌 굴드의 이상적인 예술 앞에서 절망했던 친구이자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베르트하이머가 그들입니다. 
작가 베른하르트처럼 오스트리아를 증오하여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작품 속 화자인 ‘나’는 글렌 굴드와 함께 피아노를 공부했던 친구 베르트하이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돌아 옵니다. 친구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나’는 그가 죽기 전 머물렀던 별장과 근처 여관을 찾습니다.

처음에는 감사와 구속으로 평생 함께 하려고 했던 여동생이 떠난 것에 대한 절망으로 자살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르트하이머의 자살은 그가 가장 이상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글렌 굴드의 죽음으로 인한 절망과 좌절 때문이라고 결론짓게 됩니다. 
베르트하이머는 이미 대학시절 처음으로 글렌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듣고는 결코 자신이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그때부터 차츰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불행한 일이야, 살아 있는 동안 불행은 지속되고 죽음만이 그걸 그치게 할 수 있어. (p 65) 

결국 베른하르트가 하고 싶은 말은 ‘산다는 건 어쩌면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고 그런 의미에서 몰락하는 자는 우리 자신이다.’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속에서 자살한 베르트하이머는 글렌 굴드와 화자인 ‘내’가 언젠가는 자살하리라 말합니다. 
그러나 자살한 것은 베르트하이머 자신이었으며 글렌 굴드는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죽었고 ‘나’는 정작 살아 있습니다. 똑같이 ‘이상적 예술’앞에서 좌절했지만 그 좌절은 베르트하이머 자신을 갉아먹게 했고 ‘나’에게는 삶의 ‘성찰’을 주었습니다. 성찰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는 이유일 겁니다. 
베른하르트의 문체는 1인칭 화자의 독백과 함께 작품의 주요 모티브인 바흐의 골트베르크가 아리아를 중심으로 서른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고 단락 구분도 없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소 베른하르트는 상투적인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문체를 파괴해야 하고 해체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광설(長廣舌)로 서술된 베른하르트의 문체는 독자에 따라서 약간 곤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수히 등장하는 문장 ‘난 생각했다.’가 마치 쉼표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작품속엔 따분한 소설로 로베르트 무질의 작품이 언급됩니다. 물 한 잔을 앞에 놓고 나는 20년 만에 무질의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을 다시 읽어보려 했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묘사 따위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파스칼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때울 수도 없었다. (p 60)

이 부분은 베른하르트의 독설일까요? 유머일까요? 
무질의 작품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에 대해서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읽을 때 살짝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요? 따분함으로 따진다면야 파스칼은 그렇다치고 로베르트 무질이나 토마스 베른하르트 자신의 작품이나 매한가지일테니 말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작품을 등한시 한다는 건 불행입니다. 현대문학과 독일문학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빼놓고 넘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인문학 아카데미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천 시민 여러분들을 위한 힐링캠프. 

좀 더 많은 시민여러분들을 현장에 직접 모시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9월 한달동안 제물포구락부 인문학아카데미는 책중심 문화공간 혜화1117의 이현화 대표, 재단법인 아름다운 커피 한수정 사무총장, 근대주택 실내공간 재현전문가 국민대 예술학부 최지혜 박사, 경기도 농업기술원 이대형 박사, 인천세관 김성수 과장과 함께 합니다. 

수강신청은 아래 링크 또는 강좌 포스터 이미지를 클릭해주세요.


신규 업데이트된 강좌

제물포구락부 인문학아카데미는 매주 금요일 오전10시 제물포구락부 2층,헐버트홀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과 현장강의로 이원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의거 현장참여 수강은 4인으로 제한 운영중입니다.예정된 강좌에 직접 참여하시고 싶은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jemulpoclub@gmail.com
자주적 개항의 상징적 서사자원
수신거부 Unsubscribe

All Rights Reserved  제물포구락부 & 카툰캠퍼스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   전화번호0507-1343-0261
0

뉴스레터 구독신청

제물포구락부에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함께해주세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찾아오시는길

#제물포구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