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68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그림:현상규-조관제 작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20년전 오늘,1901년 6월22일 제물포구락부가 건립되었다. 한국의 독립을 도운 공로로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한 헐버트 박사는 개관식 현장을 직접 취재하고 당시의 외국인들이 널리 구독하던 소식지 "Korea Review 6월호"에 그 기록을 남겼으며, 사실상 제물포구락부에 관한 거의 유일한 사료이기도 하다. 


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68호는 건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제물포구락부가 자주적 개항의 상징적 서사자원으로, 또 개항장의 숨은보석으로 남을 수 있게해준 주요 인물 6인에 대한 이야기를 글이 아닌 카툰의 힘을 빌어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세레딘 사바틴(1860~1921)

호머 베절릴 헐버트(1863년 ~ 1949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

개항기로부터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제물포구락부는 위 인물들외에도 역사의 한획을 담당했었던 주요한 인물들이 다녀갔으며, 그들이 남긴 일기와 기행문,기고문 또는 여러 잡문에서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1950년 9월. 거의 모든것이 초토화되다시피한 지금의 자유공원이 위치한 인천시 중구 송학동 응봉산 자락에는 그 많던 서양식 건축물들 또한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써 서울 정동 외교타운을 잉태시켰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있는 제물포 각국조계에 대한 스토리도 함께 파괴되었다.

하지만 운명처럼 1953년 4월 파괴된 인천시립박물관(세창양행 사택 이용)이 그 대체지로 인천시 중구 송학동 1가 11번지에서 복관하게 되는데, 바로 그곳이 제물포구락부였다.   

그로부터 1990년초까지 약 30년간 이곳은 인천시민의 정서적 고향으로 시립박물관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니 그 토대를 쌓은 위대한 인천인 세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 석남 이경성 (石南 李慶成, 1919~2009) 
훤칠한 키에 잘생긴 28세의 청년은 1945년 8월 15일 광복하자마자 인천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청년은 부평 조병창에서 중국 철제 종을 실어 오는가 하면 매머드 상아, 자기 파편 등 인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유물들을 그러모았다. 개미처럼 수집한 유물은 송학동 세창양행 사택(현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자리)에 보관했다. 그해 10월 3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을 세우며 초대 관장으로 취임한 청년 이경성은 이듬해 4월 1일 세창양행 사택에서 정식 개관식을 갖는다. 좌우익의 갈등과 불안한 치안, 광복 직후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 박물관 개관은 석남石南 이경성의 애향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천시립박물관 2대 관장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1976) 
그의 아호 ‘검여(劍如,칼과 같다)’처럼 그의 글씨는 검을 휘두르듯 찌르고, 자르고, 세우고, 막고, 멈추는 모든 동작에 숨이 막힐 듯하며 갈필을 응용한 화려하면서도 강한 필획을 구사한다. 1946년 귀국한 뒤 인천시립박물관장·인천시립도서관장 등을 역임하고, 인천교육대학 강사로 활동하다가, 1962년 서울 관훈동에 검여서원(劍如書院)을 열어 서예연구와 후학지도에 힘썼으며, 홍익대학교 등에 출강하였다. 1968년 뇌출혈로 인한 오른쪽 반신마비를 극복하고 왼손으로 연구를 계속하여 인간승리의 극적인 일화를 남겼다. 

인천시립박물관 3대 관장 고여 우문국 (古如 禹文國, 1917~ 1998)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공부하던 중 해방이 된 이듬해 귀국, 인천에 정착하여 인천 문화예술의 초석을 쌓았고 화가로서도 독창적 작품세계를 일구었다. 1949년 인천예술인협회의 발족을 주도했고 초대 인천 문화원장과 제3대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역임했다. 박물관장 재임시 박물관을 개수(改修)한 후 '건물개수기념 특별전시회'를 열어 고려청자를 비롯한 문화재 30여 점을 국립박물관에서 대여해 전시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 도난 및 분실을 막기 위해 전시기간 내내 전시실에 의자를 모아놓고 숙직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을 만큼 박물관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다고 한다.

송학동의 진짜 이야기를 시민 여러분께 들려드리기 위한 그 두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송학동 옛 시장관사의 완전개방이며, 제물포구락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개항기 독일영사관 부지로 공개 경매를 통해 불하되었으며, 오래도록 세창양행등 독일계 소유의 부지로 활용되었다.

행사 : 인천시민愛집(옛 송학동 시장관사) 개방
1966년부터 시장관사, 시사편찬위원회 등 관(官)의 공간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것을 기념 
일시 : 7. 1.(목) 17:50~19:30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창비) 

휴머니즘을 삶 전체에 걸쳐 추구했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청춘 시절 자신이 겪었던 고뇌와 인간의 내면의 양면성을 문학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출한 작가입니다. 

젊은 시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을 읽고 성장통을 겪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러면서도 헤세가 잊지 않았던 것은 자연에의 동경입니다. 그가 즐겨 그렸던 수채화의 주제 역시 산이나 강, 풀 나무, 들꽃 등 언제나 자연이었습니다. 

작가에게는 자연이이야말로 고뇌와 광기에 찬 인간의 삶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던 것입니다. 
특히 나무를 통해서 ‘아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투영시키기를 좋아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창비)은 헤르만 헤세가 나무와 우리의 삶에 대해 쓴 시와 에세이를 묶은 책입니다.

책에 담긴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는 마치 한적한 숲속 나무 밑에서 곁에 앉은 헤세가 나즈막한 소리로 전하는 위로처럼 들립니다. ‘

우리가 슬픔 속에 삶을 더는 잘 견딜 수 없을 때 한그루 나무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조용히 해봐! 조용히 하렴! 나를 봐봐! 삶은 쉽지 않단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아. 그런 건 다 애들 생각이야. 네 안에 깃든 신(神)이 말하게 해봐. 그럼 그런 애들 같은 생각은 침묵할 거야. (중략) 
우리가 자신의 철없는 생각을 두려워하는 저녁때면 나무는 속삭인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나무들 p11) ‘아름다움은 항상 넘치도록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기쁨은 아무 노력도 없이 오고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런 모든 기쁨의 좋은 점이다. 보리수꽃의 향기처럼 그것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보리수꽃 p 79) 
헤세는 고도화되고 획일화되는 인간의 삶 내지는 사회와는 달리 셀 수 없는 형태 다양성과 나무 특유의 천천히 성장하는 ‘느림’에 주목했습니다. 

또 나무들이 주는 기쁨을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신의 선물이라 노래했습니다. 헤세가 말한 나무의 다양성과 느림 그리고 나무들이 주는 기쁨이 곧 ‘아름답게 산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글에 한수정 작가의 세밀화가 삽화로 곁들여진 아름다운 책입니다.

송학동 역사산책길 투어


120주년 기념 굿즈


나무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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