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63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우리나라에 여성과 어린이 분야만을 별도로 전담하던 ‘여자경찰서’가 존재했던 시기가 있었다. 1947년에 창설되어 1957년 일반경찰서와 관할이 중복된다는 이유등으로 폐지되었으나 해방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여성과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여자경찰서가 있었다는 점은 의미가 매우 크다. 성차별과 여성해방, 여성권익 신장 개념이 제대로 서지 않았던 시기라 가정하면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다.

[그림:조관제 화백]

1948년 12월 인천경찰서 소속 여경들의 기념 사진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전창신 경감, 사진 : 인천지방경찰청)
그중 80여 명의 여성 경찰들로만 구성된 인천여자경찰서는 1947년 5월 중구 선화동에서 창립되었다. 이후 1950년 중앙동으로 이전했다. 관할 구역은 인천지역 전역이었다. 당시는 해방 직후였던 터라 피난민과 실업자들이 넘쳐났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가 범죄에 노출되기 쉬웠던 시기였다. 따라서 가정폭력과 성폭력등 대여성 범죄예방과 수사가 주임무였다고 한다. 인천여자경찰은 치마 정복을 입고 순찰을 통해 여성과 어린이 계몽에도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길거리에서 갓난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유부녀나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을 제지하는 한편 식당, 여관, 미장원 등 위생접객업소 단속 역할도 했다. 또 공창 제도가 1948년 폐지된 후 불법으로 운영되던 업소와 미군 상대 성매매 업소 단속도 중요한 임무였다. 특히 인천여자경찰서는 그 역할과 중요도에 힘입어 1957년 폐지 당시 시기상조라는 반대 여론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노견 만세> (짐 웨인가튼 & 마이클 윌리암슨, 책공장 더불어) 

그리스인들은 인간성을 정의하면서 죽음이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 존재를 일컬어 ‘필멸의 존재’라고 했습니다. 인간만이 개체성(individuality)을 지닌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따르면 개인은 다른 인간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개인이 죽는다는 것 자체가 존재의 영속성이 소멸하는 걸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인간 이외의 존재 즉, 다른 동물의 존재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는 유일성이 아예 없으므로 종 전체로 보면 결코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조금은 복잡한 철학적 사유와 대화가 필요합니다만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여태까지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직접 길렀거나 주변에서 보아왔던 모든 개 이름을 기억합니다. 
쫑, 메리, 피스, 마크, 미미, 그리고 몇 해전 떠나보낸 애나와 라운이. 지금 내 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강아지 초코. 나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이들 각각의 성격, 식성, 습관, 짖는 소리, 걷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모습을 기억합니다.

어렸을 적 내 최초의 개 ‘쫑’을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졌을 때 아버지가 ‘메리’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쫑을 잃어버린 내 상실감이 완벽히 지워지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쫑은 쫑이고 메리는 메리니까요. 
지금도 가끔 마당의 텅 빈 개집 앞에서 울던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쫑은 쫑으로서, 메리는 메리로서, 또 피스, 마크, 미미는 각각 그들대로 결코 다른 개체와 대체할 수 없었고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생애가 있었습니다. 
이들한테 개체성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노견 만세> (짐 웨인가튼 &마이클 윌리암슨, 책공장 더불어)는 60여 마리 노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에세이입니다.


생각해보면 내 곁에 있었던 모든 강아지들은 어느 순간 예외 없이 나보다 먼저 늙어버리고는 훌쩍 떠났습니다. 
그들의 생애 마지막 순간들은 대부분 병원을 오가며 힘들어했던 삶이었습니다. 종종 그들의 이름을 불러볼 때가 있지만 그건 참 슬픈 일입니다. 녀석들의 활기찼던 모습뿐만 아니라 마지막 즈음의 힘겨워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생애 최고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노견들에게 보내는 찬사'라는 이 책의 부제는 아쉽지만 내 입장에선 그냥 클리셰일 뿐입니다. 


그러나 눈곱이 끼고 침을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제대로 걷지를 못해 비척거리는 모습이었을지라도 유대감, 사랑, 헌신 같은 감정은 노견 시절에 더욱 높았던 것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예외없이 나를 비롯한 가족들에 의지했고 상호 교감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 책 <노견만세>에 등장하는 개들은 사진을 찍을 당시(2018년 발간) 모두 10살이 넘었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모두 살아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이 흔히 말하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영원할 것입니다.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개체성’을 지닌 존재로서 말입니다. 
나 역시 내 곁에 있었던 쫑 메리, 피스, 마크, 미미, 사랑스런 애나 라운이, 초코를 유일한 ‘존재’로서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재즈브루잉

앨범 Lost Heroes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이로 란탈라(Iiro Rantala)를 그저 트리오 토이킷 시절의 유머러스한 피아니스트로만 생각했다. 
클래식과 재즈 양 장르의 정규 교육을 모두 이수한 독특한 경력의 이로 란탈라는 재즈의 변방이었던 핀란드에서 1988년 말 그대로 혜성처럼 자신의 트리오를 이끌고 나타나 번뜩이는 창의성과 특유의 유머로 화제를 일으켰다. 

Iiro Rantala 
그러나 트리오 토이킷은 아쉽게도 2007년에 해산하게 된다. 이후 란탈라는 솔로 활동에 매진하면서 음악적 변화를 꾀한다. 그러던 중 드디어 2011년 현재 유럽 재즈의 대표적 레이블로 우뚝 선 레이블 ACT에 입성하게 된다.

Lost Heroes’ (Iiro Rantala, ACT 2011)
2011년 발표된 앨범 Lost Heroes는 트리오 토이킷의 리더이자 핀란드 대표 피아니스트 이로 란탈라(Iiro Rantala)의 첫 솔로 앨범이자 레이블 ACT 데뷔 앨범이다. 
친구였던 Pekka Pohjola를 비롯해 란탈라 자신의 음악적 삶에 영향을 준 빌 에반스, 자코 파스토리우스, 에스뵈욘 스벤슨, 에롤 가너, 아트 테이텀, 미셸 페트루치아니, 오스카 피터슨과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대한 헌정 앨범 격이다. 

사실 트리오 토이킷 시절 대표작 Kudos 또한 같은 성격의 작품이니 Lost Heroes는 그 뒤를 잇는 후속 작품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Kudos가 트리오 구성이었다면 Lost Heroes는 란탈라의 솔로 피아노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전작에 비해 좀 더 진지한 피아니즘으로 성숙한 자기 성찰의 모습을 구현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제물포에서 소개된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
사람들의 마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싶은 욕구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 대한 참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생각만 하는 호모사피엔스의 시대는 가고 말로 몸짓으로 노래로 끊임없이 요란한 호모나랜스의 전성시대로 세상은 내달리고 있다. 
7월1일 인천독립 40주년 축제와 함께 제물포구락부는 그동안 축적한 스토리텔링 기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송학동1가 역사산책길을 함께 이끌어주실 시민서포터즈들께 전수해드릴 예정이다. 호모나랜스가 될 수 있는 제물포구락부와의 동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물포구락부가 취하고 있는 스토리텔링 방법론의 핵심 테크닉은 "보여주며 말하기" 인데, 나름의 각개전술이 그때 그때 동원되기도 한다.

보여주기 위해 선행하는 작업이 있고, 우리 스텝들은 이 행위를 "Reveal" 이라고 하는데 직역하자면 드러내다,보여주다,밝히다,알리다 등의 뜻이 있다. 

오늘 한국최초, 인천최고 100선에 이어 101선에 꼽을만한 스토리를 바로 이 기법을 통해 발견했다. 인천 중구 관동1가 24에 있는 청일조계지계단의 정상부에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우리는 이제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가 사용된 곳이라는 것을 시민여러분들께 알리고자 한다. 흔히 태극기는 임오군란의 외교적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 1882년8월 일본으로 수신사 자격으로 파견된 박영효가 급히 만들었다고 흔히들 알려져있다. 
그런데 2019년 이 역사적 기록을 수정할 수 밖에 없는 슈펠트 제독의 문서가 이태진(77)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해 발견되었고 여러차례의 학계 검증과 토론을 통해 이제는 반박할 수 없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기억하자.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는 역관 이응준李應俊(1832~?)이 1882년 5월 14일과 22일 사이에 미국 함정 스와타라(Swatara)호 안에서 만들었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우리 제물포에서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소개되었다. 

체결지 터, 수준이 아닌 스토리로 생각을 확장하고보니 오늘따라 청일조계지 경계계단에 서 계신 공자님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은...과민한것일까??

송학동
제물포구락부 주변은 미세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만발했던 봄꽃 대신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신록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부터 내리는 초여름 비 때문일까요? 제물포구락부도, 맞은편 옛 인천시장관사도 분주한 공사 일정을 잠시 멈춘 조용한 모습입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새소리만 있을 뿐, 터줏대감인 냥이도 오늘은 처마밑에서 꼼짝을 않는군요. 덕분에 시간마저 정지된 듯 고즈넉합니다.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마저 정겨운 비오는 일요일입니다.


인문학 아카데미


제물포구락부 120주년
제물포구락부는 2021년 6월 건립 120주년을 맞이합니다. 시민여러분들의 기대와 응원에 힘입어 미래세대를 위한 가치 재생의 공간, 개항장의 상징적 서사자원으로써 우뚝 서겠습니다.

해쉬태그 #제물포구락부 또는 #제물포구락부에서온편지  로 응원해주시는 100여분께 오는 6월에 발행되는 월간제물포구락부 vol2를 보내 드립니다. 지금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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