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62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망명지에서의 생활은 모든 일상이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육아일기까지 쓴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부부가 딸을 키우며 기록한 ‘제시의 일기’가 바로 그런 기록이다. 한 아이의 성장에 관한 사적인 육아일기가 역사를 기록한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그림:조관제 화백]

첫째 딸 제시와 양우조 최선화 부부 (1938)
<제시의 일기>는 임시정부가 소재지를 바꿔가며 이동함에 따라 중국 상해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전전해야 했던 최선화 선생이 딸 ‘제시’를 키우며 기록한 육아일기이자 당시 임시정부 가족들의 생활상과 애환을 담은 기록이다. 
일기는 제시가 태어난 1938년부터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 온 1946년까지 8년간 이어진다. 
<제시의 일기>를 쓴 최선화는 1911년 6월 20일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평양으로 이주하여 평양 정의여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다. 1931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 모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나무처럼 살아간다> (리즈 마빈, 덴스토리)

대체 나무처럼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나무의 삶이란 언뜻 순응의 삶을 말하는 듯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무의 삶만큼 치열한 것이 또 있을까? 라는 물음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소개하는 책 제목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무슨 의미일까요? 무려 4억 년 전부터 이땅에 존재하기 시작했음에도 우리는 나무의 삶을 당연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나무의 변화라고 해봐야 고작 철마다 잎이 나고 열매를 맺다가 곧 퇴색하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이듬해 봄에 다시 순이 돋는 어찌보면 매우 단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몸체가 성장하고 외형이 변하는 과정이 워낙 천천히 일어나는 현상이라서 웬만한 시간이 흐른 뒤가 아니면 쉽게 알아챌 수도 없습니다. 
인위적인 이식이 아닌 다음에야 나무는 줄곧 한자리에서 성장하고 쇠퇴하고 바로 그자리에서 소멸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어떤 나무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최적으로 적응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렇다면 나무는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어떤 지혜와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그게 어떤 것이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빌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역사, 음악, 여행, 인문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낸 저자 리즈 마빈이 쓰고 주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트 애니 데이비드슨의 일러스트가 담긴 책입니다. 
약 60종의 나무가 각각의 방법으로 지탱해 온 생존의 방식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백과사전식 나무의 생존법을 나열한 책이 아닙니다. 
가령 저자는 스코틀랜드 소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스코틀랜드 소나무처럼 자신감과 극기심을 기를 수 있다(그렇다고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의 강풍에 종일 서 있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이 나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만 년 이상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기에 정말 오랜 시간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 1만 년의 세월 동안 이 나무가 겪고 극복해냈을 수많은 역경을 생각해보길. 우뚝 선 이 굳건한 나무로부터 영감을 받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스코틀랜드 소나무가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 것은 오랜 시간 자아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나무가 느끼는 시간과 인간이 느끼는 시간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이 스코틀랜드 소나무에서 영감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나무에게 느끼는 궁극적인 경외감은 아마도 스코틀랜드 소나무가 그래왔던 것처럼 묵묵히 제자리에서 온몸으로 시간을 담아 내며 적응하고 생존하고 번영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포탄을 이겨낸 강화도 초지진 소나무, 개항기 역사를 온 몸으로 담아낸 응봉산 플라타너스, 800여년 동안 우람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장수동 은행나무등 인천 지역의 나무들에게서도 비슷한 영감과 경외감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가 천천히 시간을 담아내는 것처럼 조금씩 천천히 마음 갈 때마다 펼치고 읽기에 참 좋은 책입니다. 
특히 캅틱바인딩 스타일로 제본된 책의 만듦새는 읽기도 전에 손에 들게 만듭니다.


재즈브루잉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연주 중 몇 개를 추려 담은 일종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컴필 앨범이라고 보기엔 그 무게감이 어마어마하다. 
알다시피 트럼펫의 쳇 베이커와 알토 색소폰의 폴 데스몬드는 쿨 재즈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Chet Baker (1929~1988)

Paul Desmond (1924~1977)
쳇 베이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깊은 우수 어린 창백한 얼굴. 
반항아적인 외모에 중성적인 목소리. 언뜻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제임스 딘과 많은 부분 비교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절명한 제임스 딘이 삶이 비극이었던 것처럼 쳇 베이커 역시 네덜란드의 허름한 호텔 2층 창문에서 추락,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불행한 종말을 맞이한다. 
연주 자체가 뛰어나다는 평은 듣지 못했으나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의 고독을 관조하는 듯한 연주와 보컬은 쿨 재즈의 대표적 뮤지션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비록 보편적 기준으로의 그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지만 어쩌면 실존적 삶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그를 통해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삶과 연결시키든, 삶에서 떼어내든 그의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서 영원히 회자되고 들려질 것이다.

또 한명의 주인공 알토 색소포니시트 폴 데스몬드는 우리에게 데이브 브루벡 퀄텟의 앨범 ‘Time Out’에서 가장 유명한 곡 ‘Take Five’를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상업적인 면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나 모두 성공한 이 앨범에 만약 폴 데스몬드가 없었다면 이처럼 뛰어난 결과는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폴 데스몬드의 영향은 대단하다. 
그만큼 작곡과 연주 모두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다.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은 누가 들어도 단박에 알아 챌 수 있을 만큼 달콤한 음색을 가진다. 
금관 악기임에도 마치 목관 악기인 클라리넷의 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부드럽다.

오늘의 역사


응봉산 플라타너스
인천시 중구청에서 남부교육청을 지나 인천제일교회로 향하는 자유공원 남로 25길은 양방향 교행이 가능한 생활도로이다. 
송학동 2가를 휘감아 돌아가는 이 길에는 제물포구락부,옛 시장관사,이음1977 그리고 자유공원 방향의 고풍스런 계단과 개항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붉은 벽돌담이 아슬하게 서 있기도 한데, 이제 곧 시민 여러분들께 온전히 돌려드릴 역사산책길이 꾸며지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달 어느날. 공원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주무부서에 민원이 한통 도착했다. 도로 폭을 공중에서 가로지르고 있는 플라타너스에서 나무 잔가지가 떨어져 지나는 차량에 피해를 주고 있음으로 처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그 민원은 조치되었다. 가지들은 적당히 잘려져 나갔고 까치 둥지 한채는 가차없이 철거되었다. 
그나마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던, 나름 귀한 신분의 나무였기때문에 그 정도의 조치로 갈음한것이었다. 
1884년, 지금의 응봉산, 대한제국이 인천의 자주적 개항에 맞춰 조성한 자유공원의 플라타너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5월4일 이 나무를 위해 많은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전영우 전 국민대 교수,산림과학원 강진택 박사,인천연구원 권전오 박사, 인천시 문화재위원회 유선호 위원장님, 그리고 교육청과 중구청,시청 유형문화재 담당자분들까지. 
이제 곧. 인천 개항장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목도한 유일한 목격자요 증언자이기도 한 응봉산 플라타너스는 전국 최초의 시지정 등록문화재로 인정받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산림학자이며 현 문화재위원이신 전영우 교수는 오늘 현장 실사에서 이런 말씀을 전하셨다. 
"플라타너스 나무 자체도 너무나 훌륭하고 의미 깊지만 인천시에서 이런 논의와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 


나무에 대한 시를 쓸려면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시인 류시화) 

그날. 응봉산 플라타너스 앞에 모인 우리 모두,잠시나마 나무가 되어 봄바람에 흔들리는 경험을 함께한듯하다.

보스턴 차 사건
이슬람지역에서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커피는 곧이어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에서도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급기야 북미 대륙, 즉 미국에서도 커피의 소비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의 커피 소비는 1773년 이른바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인해 급증하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는 1765년 인지세법, 1767년 타운젠트법 등 영국 정부에 의해 식민지 미국에 적용되는 과세 정책 결정으로 주민 반발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동안 공식적인 차 수입은 영국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밀수업자들이 관세를 물지 않고 차를 수입해 판매하여 1773년 경 동인도 회사의 적자는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고 창고에 차 재고가 넘쳐나게 되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차법’을 통과시켜 미국 소비자에게 동인도 회사가 직접 판매할 수 있게 하였다. 덕분에 동인도 회사는 여타 밀수업자들보다 싼 가격에 차를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향으로 일부 밀수업자들이 파산하는 등 큰 피해를 보았다. 경제적 손해를 보게 된 밀수업자들은 결국 인디언으로 동조자들을 변장시켜 일명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보스턴 차 사건 (1773)
1773년 12월 16일 저녁 7시. 100여 명의 인디언 복장을 한 무리는 미국 보스턴 항구에 정박중이던 동인도 회사 소유의 무역선에 올라 타 화물칸에 보관중이던 차 상자들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 사건으로 보스턴 앞바다의 색깔이 한동안 갈색으로 있었다고 하니 사건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결국 이 사건은 1775년 식민지 미국과 영국 간 무력 충돌의 단초가 되어 미국 독립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 미국의 차 소비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차 소비 감소는 곧 커피 소비 증가를 의미한다.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매일 홍차를 즐기던 미국인들이 커피를 대체재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커피는 이때부터 미국인들에게 일상이 되었고 미국이 최대 커피 소비국 중 하나가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보스턴 차 사건이 처음 모의된 곳이 바로 커피 하우스 그린 드래곤(Green Dragon)이라는 점이다. 

커피가 미국 독립의 상징성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기폭제로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결국 차는 영국 식민지의 상징이 되었고 반대로 커피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현대 커피 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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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락부 1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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