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61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1904년 2월 러일전쟁 도발 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열강으로부터 자신들의 한국 침략 용인을 받아낸 일본은 1905년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통치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였다.
이후 고종은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평등 조약임임을 폭로하기 위해 1907년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주최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기로 한다.

[그림:조관제 화백]

대한제국 헤이그 파견 밀사 이준, 이상설, 이휘종(좌로부터)
....[중략]
앞서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 이전에도 국제사회에 대한제국을 압박하는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번번히 무산되었다. 이에 일본군경을 감시를 피해 블라디보스톡까지 특사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였다.
인천 강화 출신 이능권((李能權 1864~1909)이 바로 그 인물이다. 이능권은 대한제국 육군장교와 수군 군관 출신답게 육지와 항구 곳곳에서 감사를 하던 일본군경과 밀정을 따돌리고 특사들을 블라디보스톡까지 무사히 도착시켰다.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프롤레타리아의 밤> (자크 랑시에르, 문학동네)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한겨울 추위에 떨던 소녀가 몇 개의 성냥을 그어 환타지를 만들어 버티다 결국 숨지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소녀는 추운 겨울밤에 성냥을 팔아야 했을까요? 동화를 처음 접하던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드는 의문입니다. 
동화속 소녀는 성냥을 팔아야만 했던 가난한 소녀였을 겁니다. 더 나아가 어쩌면 성냥공장의 직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동화가 발표된 1834년 당시의 성냥공장은 어린 아이들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작업의 특성상 성인보다는 어린아이를 주로 고용했습니다. 12시간 이상의 노동과 터무니 없는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건 물론 쉽게 해고 당했습니다. 또 임금을 대신해 성냥을 지급받기도 했습니다. 해고 당한 가난한 아이들은 임금 대신 받은 성냥을 내다 팔아야만 했습니다. 단지 슬픈 동화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 이면에 이런 비애가 숨겨져 있던 겁니다. 
누구나 아는 동화지만 실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며 도시 빈민이 쏟아지던 당시의 비참한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잔혹동화입니다.

소개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밤>(자크 랑시에르, 문학동네)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시기,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한없이 고통스러웠을 19세기 초반 노동자들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자크 랑시에르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 노동계급들에 대한 자료 보관서를 뒤지다가 1830~50년대 노동자들이 남긴 다량의 문서들을 발견합니다. 
랑시에르가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고된 노동을 마친 밤 휴식을 뒤로 하고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유하고 철학하는 행위, 즉 여태까지 지식인들만이 공유하는 형식이라는 것에 저항한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유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만연된 무력감과 보편적인 노동자의 정체성에 반기를 든 셈이죠. 노동자가 그저 노동을 제공하고 그만큼의 임금으로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유일한 휴식인 밤을 소환하면서까지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고 자각했던 겁니다. 
노동자만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눈물겨운 작업이었죠. 틀림없이 고통스러운 주체 인식 과정이었을 겁니다. 
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발굴은 격동의 프랑스 68혁명 당시 혁명과 저항의 전선에서 전위(지식인)와 대중(노동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 랑시에르가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결별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랑시에르에 의해 역사의 수면위로 부상한 노동자의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알튀세르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대중)는 노동에 전념하고 지식인(전위)은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기본 질서를 포기하지 않은 알튀세르를 랑시에르 역시 추종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전위와 대중의 ‘역할 분담'이라는 대전제가 뒤엎어지게 된 것이죠. 제가 랑시에르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지배 구조를 담론으로 접근했던 것에 비해 랑시에르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포함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격, 그리고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또 그것을 노동자와 대중이 자각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지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 발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식’의 묵은 사고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노동자 자신들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랑시에르가 ‘정치란 평등의 실천’이라고 정의한 부분과 같은 맥락입니다.


공부하고 사유하는 일은 결코 특정한 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체를 자각한 19세기 초 노동자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재즈브루잉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말을 빌어보면 사람은 혼자 있을 때가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고독에 대항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즐기라는 말로 이해한다. 고독의 고통에 대해 단지 견뎌내야 한다는 소극적 대처가 아니라서 더욱 마음이 놓인다.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일에 매달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도 잠깐의 틈이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SNS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러나 그렇게 접속한 세계는 헛헛한 가슴을 채워주기는 커녕 오히려 또다른 공허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도무지 진정한 의미로서의 혼자만의 시간은 영영 가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Keith Jarrett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은 이런 현상은 ‘고독을 이기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성된,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비자발적 고독을 이기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원하지 않은 고독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바우만이 말하는 것은 모든 사회적, 개인적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색하는 시간, 즉 ‘자발적 고독’을 만들어 즐기라는 의미리라.

...[중략]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Keith Jarrett, ECM)은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 특히 자주 듣는 음반이다. 
키스 자렛은 언젠가 ‘만성피로증후근’이라는 질병을 얻어 연주를 잠시 중단하고 칩거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밤, 자신의 집에서 오로지 아내만을 위한 연주를 녹음했고 이 녹음은 휴식기 이후 세상에 나온 그의 첫 번째 앨범이 되었다. 
그간의 화려하면서도 즉흥적이고 때로는 지나칠 만큼 탐미적인 그의 연주 스타일에 비하면 이 앨범은 지극히 소박하다. 세간의 명성을 뒤로 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던 시기에 그는 어쩌면 고독을 즐기고 있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연주가 탄생할 수 있으랴. 오로지 사랑하는 아내만을 위해 누르는 피아노의 타건은 담백함 속에서도 결코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오늘의 역사


응봉산 플라타너스
김수용 감독의 1982년 영화 ‘만추’는 특별휴가를 얻은 여죄수와 경찰과 범죄조직에 쫓기는 절도범이 만들어 낸 짧은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배우 김혜자가 주인공이어서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영화 만추에 흐르는 기조는 단연 쓸쓸함과 비애입니다. 쓸쓸함은 남녀 주인공들이 온통 플라타너스 낙엽으로 뒤덮인 가로수길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지금도 영화 ‘만추’를 생각하면 이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 현빈과 탕웨이가 주연이었던 동명의 2011년 리메이크 영화 배경지인 시애틀의 풍경보다도 더 인상적입니다.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플라타너스 터널은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청주 IC를 나와 시내로 접어들면 곧바로 나옵니다. 
무려 1,500여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도로 양옆으로 빽빽합니다. 
영화속에서는 이토록 근사하게 나오지만 사실 플라타너스는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대기오염이 심한 도심에서도 잘 자라기에 한때는 가로수로 각광받았던 수종입니다. 
그러나 낙엽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애처로울 정도로 심하게 가지가 잘리기도 합니다. 도로에 떨어진 잎이 크기 때문에 도시 미관을 해치고 종종 교통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입니다.

같은 이유로 시인 김현승이 그의 시 ‘플라타너스’를 쓸 때 깊은 영감을 주었던 광주 양림동의 플라타너스는 수령 70여 년을 자랑했음에도 구청측으로부터 무참히 베어지기도 했습니다. 

— 플라타너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마지막 연에서 김현승 시인은 이땅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겠다고 플라타너스에게 다짐합니다. 
플라타너스가 상징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의도했든 안했든 죽을 때까지 자연을 이웃으로 삼아 살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플라타너스의 또다른 이름은 ‘버즘나무’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플라타너스가 들어올 당시 영양이 부족한 아이들 얼굴에 퍼진 버즘이 연상된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플라타너스에서는 이국적인 노스텔지어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버즘나무라는 이름에서는 개화기 시절에 우리나라가 처했던 현실이 오버랩되어 묘한 비애감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플라타너스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구체적 자료는 부족하지만 플라타너스가 최초로 심어진 때는 대한제국 시절 인천의 각국공원(현 자유공원)이 조성되던 1884년 쯤이라고 합니다. 
인천 차이타타운에서 중구청 방향의 자유공원으로 접어들면 제물포구락부에 다다르기 바로 직전 둘레가 4.7m, 나무 높이가 대략 30여 m를 자랑하는 우람한 나무가 한 그루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식재된 바로 그 플라타너스입니다. 
2015년 당시 국립산림과학원 강진택 박사에 의해 수령이 131년인 것으로 확인된 이 플라타너스는 현재 인천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나아가 최초의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시간적 공간적 역사를 함께 한 지척의 제물포구락부와 함께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으로 온전히 보존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송학동 1가
춘천 남이섬에는 인천 솔안말에서 온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 세 그루가 섬 중앙부에서 자라고 있다 합니다. 사연인즉 2018년 옛 주안초등학교가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철거되면서 옮겨심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할 처지에 내몰렸다는 사연을 접한 (주)남이섬이 일종의 입양을 해간 케이스라 합니다.

지금의 미추홀 구 주안동으로 바뀌어버린 이 지역은 마을 이름이 솔안말로 불릴 정도로 소나무로 우거진 숲이었으며 그 지역에 살았었던 많은 시민들에겐 소나무가 마치 떼어낼 수 없는 유년의 배경지 같은 곳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솔안말의 소나무 숲은 2018년 옛 주안초등학교(개교 1934년) 교정의 높이 14미터, 수령 100년 이상의 세 그루 소나무가 남이섬으로 입양 감으로써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천에는 이처럼 소나무 송(松) 자가 들어간 오래된 지명들이 더러 있습니다. 松林洞(송림동), 松峴洞(송현동), 松月洞(송월동), 松鶴洞(송학동), 그리고 그 숲을 터전 삼은 우아한 자태의 학(鶴)이 붙은 마을도 林鶴洞(임학동), 鶴翼洞(학익동), 仙鶴洞(선학동), 青鶴洞(청학동), 문학동 등이 있습니다. 

참고로 인천의 상징새가 두루미, 즉 학(鶴)이라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만, 이제 인천에서 소나무 숲은 인천대공원이나 덕적도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풍광이 된 듯합니다. 1914년 일제는 각국 조계 조약을 폐기하고 본격적인 토지수탈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지금의 해안동, 항동, 중앙동, 신포동을 넘어 송학동, 내동, 전동 지역까지 조선인들의 주거지가 잠식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수도국산 아래로 이전하게 되는데 바로 이 수도국산의 옛 이름도 송림산이었습니다. 터전을 잃어버린 우리를 품어준 곳도 바로 소나무 숲이었던 것입니다. 

2021년 7월 1일. 시민 여러분들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가게 되는 송학동 옛 시장관사가 자리 잡은 지역 또한 낙락장송과 두루미의 마을이었다 합니다. 
이제는 이름으로만 남았지만 정서적으로 각인된 인천 소나무에 대한 향수를 이곳 어딘가에 다시 한번 옮겨와 보는 것도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남이섬에 입양 보낸 솔안말의 소나무였으면 더욱더 좋겠다는 발칙한 소망을 품어봅니다.

인문학 아카데미


월간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는 이번주까지 포함하면 61주째 발행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열려있을때와 닫혀있을때의 경계가 없는 문화재 공간이 되겠다는 시민 여러분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한 제물포구락부 스탭 모두의 노력이 지켜낸 흔들림없는 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는 매월 1회. 여러분들께 직접 배달됩니다. 바로 월간 제물포구락부.  

해쉬태그 #제물포구락부 또는 #제물포구락부에서온편지  로 응원해주시는 100여분께 오는 6월에 발행되는 월간제물포구락부 vol2를 보내 드립니다. 지금 시작하세요~



jemulpoclub@gmail.com
자주적 개항의 상징적 서사자원
수신거부 Unsubscribe

All Rights Reserved  제물포구락부 & 카툰캠퍼스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   전화번호0507-1343-0261
0

뉴스레터 구독신청

제물포구락부에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함께해주세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찾아오시는길

#제물포구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