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59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원래 카페(cafe)라는 말의 어원은 터키어 카흐베하네(kahvehane)에서 연유한다. 카르베하네는 커피를 뜻하는 카흐베(kahve)와 술집을 의미하는 하네(hane)의 합성어이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는 1654년 마르세유에서 생겼으나 파리의 경우 런던의 커피 하우스 등장보다 늦은 1686년에 문을 연 카페 르 프로코프(Cafe’ le Procope)다. 
프로코프 카페는 가게가 위치한 장소 때문에 많은 배우와 소설가 극작가와 음악가들의 모임 장소로 애용되었다. 카페 바로 건너편에 프랑스 국립 극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 중 특히 볼테르는 이곳에 상주하다시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밖에 루소, 보마르셰, 디드로 등 당시의 계몽사상가들의 단골 모임 장소였고 나폴레옹 또한 청년 장교 시절에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림:조관제 화백]

카페 르 플로르에서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사진 : tripadvisor)
당시의 계몽사상가들의 생각은 이성의 굳건한 확립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고 이성의 확립은 곧 사상과 사유의 자유로운 교환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술집에서 취한 상태로 이를 완성시킬 순 없었고 뇌를 활성화시키는 커피를 마시며 맘껏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필요한 타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커피 하우스야말로 이들의 생각에 부합하는 최적의 장소가 된 것이다. 
커피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각성 작용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골손님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프로코프 카페가 실질적으로 더욱 명성을 누리게 된 시기는 프랑스 혁명기를 통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의 첫 커피 하우스 프로코프 카페가 문을 연지 꼭 100여 년이 지난 1789년 7월 역사적인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며 혁명의 첫발자국을 내디딘 장소 역시 파리의 ‘프와(Foy)’ 카페였다.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상대방을 직접 대면하여 응시하는 것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누벨바그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는 당사자와 직접 대면하는 것으로는 결코 서로를 파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프레임에 '나'와 '상대방'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를 함께 집어넣어야만 양자를 리얼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이야기지만 저는 이것을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방식의 다양성으로 이해합니다. 두 가지 모두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기 위한 방식들이니까요. 그런 의미라면 뒷모습을 보는 방식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사물의 경우는 어떨까요? 사물에서 사람의 내면에 해당되는 건 그의 쓰임새입니다. 

애초부터 물건은 인간의 도구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창작될 시점부터 가장 효율적인 사용법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성부터 소멸까지 철저히 단 한 가지 용도로만 이용되는 사물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의 내면을 파악할 때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듯 다양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생각하지 못한 가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어떤 두꺼운 책은 때때로 냄비 받침이 되기도 하니까요.

 이번주 <제물포구락부의 서재>에서 소개하는 <사물의 뒷모습> (안규철, 현대문학)은 작가 안규철이 단순히 사물의 뒷모습을 묘사한 책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자신의 뒷모습과, 원래 가지고 있는 사물의 이면에 주목하여 사유를 펼치는 책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사물의 뒷모습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밝힙니다. 
“무심히 지나쳐왔던 풀과 벌레와 나무들을 만나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물의 뒷모습”.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물의 뒷모습’을 보는 시선이야말로 그 대상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저자는 사물의 뒷모습을 통해서 또다른 세상을 만나고 있는 겁니다. 일부러 큰맘 먹고 읽는 책이라기 보다는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가 무릎을 탁 하고 치게 만들어 주는 책입니다. 사물의 뒷모습에서 낯선 사유를 만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건 단지 이 책의 저자만 누리는 행복만은 아닐겁니다. 


가끔 제물포구락부 뒷편의 둘레길에 올라 건물의 뒷모습을 봅니다. 120년의 시간을 품은 제물포구락부의 가치가 오히려 뒷모습에 더 많이 담겨 있는 듯 합니다. 굳이 애쓰며 보려고 하지 않았던 뒷모습에서 새로운 사유를 경험합니다.


재즈브루잉

사람들이 시비한 행로들을 파괴하며 그들의 도시를 짓밟는구나. 이젠 우리네 삶에서, 진실한 사랑 앞에 알몸을 드러낸 소녀 같은 순결함을 찾아보긴 어렵겠지.” 지방 소도시의 라디오 방송 디제이가 오프닝에 시를 낭송한다. 

이어 오프닝 송으로 재즈 한 곡이 흐르고 턴테이블 옆 전화기의 수신 사인이 깜박인다. 디제이가 천천히 수화기를 든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다. 
라디오 디제이, 시, 재즈, 턴테이블... 여기까지만 본다면 대충 영화의 분위기를 감 잡을 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오싹할 만큼 스릴 넘치는 사이코 영화라는 게 반전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재즈광이자 배우이며 감독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영화에 재즈를 즐겨 사용한다. 
그의 감독 데뷔 영화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원제 play misty for me, 1971)’에도 예외 없이 스탠더드 재즈 곡 ‘‘Misty’가 영화 전편에 흐른다.

재즈를 연주하는 클린터 이스트우드
영화의 주인공인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집요하게 Misty를 틀어달라는 편집증 환자 에블린과 그녀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라디오 디제이 데이브. 
우연히 만난(에블린에 의해 우연으로 조작된) 두 사람은 그렇고 그런 작업 멘트를 주고받은 다음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이후 디제이 데이브는 에블린에게 스토킹과 협박을 당하게 되고 급기야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스토리다.

Misty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롤 가너가 1954년 작곡한 곡이다. 원래는 피아노 연주곡이었고 제목 또한 ‘Play Misty for Me’이었던 것을 이 영화에 삽입되면서부터 Misty로 바뀌었다고 알려졌다. 
특히 1959년 자니 마티스가 불러 히트한 이후 재즈 스탠더드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곡을 특히 좋아한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에놀 가너에게 직접 부탁하였고 에놀 가너는 최소한의 사례금만을 받고 흔쾌히 영화 삽입용 버전을 녹음했다.

오늘의 역사


홍예문과 4.19
1883년 개항 당시 일본인들은 주로 인천항과 인접한 중앙동과 관동 등지에 거주하였다. 이후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에 연이어 승전하게 되고 조선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패권의 주도권을 거머쥐게 되면서 인천에 거류하던 일본인들은 이제 해안에서 내륙으로의 주거지 확장을 시도하게 된다. 
지금의 동인천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응봉산에 터널을 뚫었고 그렇게 홍예문이 생기게 된 것이다. 내동과 용동 마루턱을 거쳐 화평동을 우회하던 그들은 홍예문 개통 후 이제 전동과 만석동으로 거류지를 확대하게 되었다. 
응봉산 남쪽 마루턱을 깎아 만든 홍예문은 폭 4.5m, 높이 13m, 통과 길이 13m로 일본 공병대가 1905년에 착공하여 1908년에 완공하였다. 
물론 기술외적인 노동은 주로 조선인들의 몫이었고 대략 50여 명이 공사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세력을 넓히기 위해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은 누군가에게는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열리고 기억된다.

위 사진은 1960년 4.19 혁명의 어느 날 홍예문에서 미국 라이프 잡지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존 도미노스가 촬영한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음악과 행진 장면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가 바로 홍예문에 그대로 각인되어있다. 

바로 여기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 인천이다.

인문학 아카데미
대한제국 말기 우리 전통한옥은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벽돌,시멘트,유리창호등 새로운 건축자재의 보급으로 이른바 근대한옥이라는 건축양식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인천의 송림동,창영동,울목동,내동등은 한때 근대한옥들이 밀집하며 부유한 동네로 소문이 자자했다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서울 북촌처럼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었겠지요. 2021년 7월 시민 여러분들을 위해 한창 리모델링 및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송학동 옛 시장관사 또한 대표적인 근대한옥입니다. 일본,중국,각국의 외래건축양식 일색인 이곳에서 여기가 원래 오롯이 우리땅임을 증명하듯이 1966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송도의 경원재, 더 거슬러 올라 원인재가 대표할 수 없는 인천 근대한옥의 상징 송학동 옛 시장관사. 오는 4월29일 오전10시에는 서울 북촌의 백인제 가옥,윤보선 가옥등 경성에 들어서기 시작한 새로운 주택지를 깊이있게 연구하고 계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경아 교수님과 함께 옛 시장관사의 건축학적 가치를 함께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송학동은 낙락장송이 울창하고 학이 날개를 펼치던 지금으로써는 상상조차 어려운 풍광을 자랑하는 마을이었다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인천의 근대한옥을 기대해주세요. 

이경아 교수님과 함께하는 제물포구락부 인문학 아카데미는 코로나19로 인하여 4인 미만의 현장 수강생과 유튜브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경아 교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서울시 한옥문화과 한옥정책연구팀장을 거쳐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문화주택 개념의 수용과 전개』로 박사학위를 받고,한국의 근대건축 및 도시 변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대 한옥건축 연구에 있어 학계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2017년에는 정세권의 가회동 한옥단지 개발에 관한 논문으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수여하는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청강을 원하시면 아래 예약 시스템을 활용하세요. 2021년 4월29일(목) 오전10시-12시. 제물포구락부 1층 이경성 극장.

문구 브랜드 '아날로그 키퍼' 문경연 작가의 문구 세계 여행기! 아쉽게도 현장 참여 좌석이 모두 예약 완료되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 주소를 곧 공개 예정이오니 함께 시청해주세요.

커피 인문학과 핸드드립 실습을 병행하는 일일 스팟 프로그램입니다. 
제물포구락부 2층 김란사 바에서 진행 되는 <읽는 커피>는 커피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를 들려드리고 직접 드립한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현장 체험형 프로그램입니다. 
참여하시는 모든분께 제물포구락부 읽는커피 드립백 세트도 증정합니다.


공유 스튜디오 무상대여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 가능한 공유 스튜디오 제물포구락부 이경성 극장을 소개합니다. 제물포구락부 1층에 재현된 이경성 극장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1953년 4월. 인천 시립박물관을 제물포구락부에서 재개관한 초대관장 석남 이경성 선생은 오랜 전쟁으로 상처 받고 피폐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인천 시민들을 위하여 그동안 창고 용도로 버려두었었던 반지하 공간에서 흑백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영사기와 영화 필름은 미군정에서 빌려왔고 변변찮은 스피커 하나 없었지만 여기 모인 남녀노소 모두에겐 행복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이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으나, 제물포구락부 이경성 극장은 다시한번 시민 여러분들께 좀 더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그동안 인문학 아카데미 채널 운영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나름대로 첨단수준의 방송 시스템을 무상으로 제공해드립니다. 
인천 시민이시면 누구나, 개항장의 청년 및 소상공이시면 좀 더 특별히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아래 내용을 참조하시고 언제든지 예약 신청해주세요.

jemulpocl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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