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제물포구락부에서 온 편지 Vol.49

자주적 개항의 상징적 서사자원


1895년 10월 조선 주재 일본 공사의 지휘로 일본 낭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청년 백범 김구(白凡 金九)가 이 소식을 접할 때의 나이는 20세였다. 황해도 일대에서 의병활동 중 좀 더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계획하고 있었던 김구는 ‘치아포’라 부르는 황해도 지역 대동강가 포구의 한 여관에서 을미사변의 범인들 중 하나라 확신한 일본 헌병을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국모를 살해한 원수를 갚는 국모보수(國母報讐) 목적으로 이 왜인을 죽이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金昌洙)"란 포고문을 길거리 벽에 붙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김창수란 이름은 백범 김구로 개명하기 전 이름) 그러나 3개월 뒤 김구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해주옥(獄)을 거쳐 인천감리서로 이감된다.

1946년 11월 강화를 방문한 김구와 지역 인사들
당시 인천 감옥에서의 생활과 재판에서 보여준 김구의 당당함과 의연함은 서울까지 알려질 정도로 화제였다. 재판을 구경하며 김구의 기개를 알게 된 사람 중에 강화도 출신 노름꾼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바로 바로 김구 석방을 위한 구명활동에 자신의 전재산을 바치면서까지 헌신한 김주경(金周卿)이다.
...[중략]

합일초등학교에 보관된 백범 김구의 홍익인간 휘호.
우선 김주경은 김구 구명운동을 위해 당시 법부대신 한규설(韓圭卨)을 찾아간다. 하지만 자신에게 불이익을 올까 두려웠던 한규설에게서는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선처를 호소하는 청원서와 소장(訴狀)을 연거푸 법부에 제출한다. 그러나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고 한 말의 뜻은 가상하나, 사건이 중대하여 여기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는다. 
김주경은 이러한 활동을 7,8개월 동안 지속하다 결국 김구의 석방을 위한 소송비용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이후 자금 마련을 위해 관용선 탈취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되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하게 된다.

제물포구락부의 서재
최근 민주화 10년 만에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군부 통치를 받았고 현재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 개혁이 진행중이라는 소식도 어렴풋하게나마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미얀마가 동남아의 오래된 국가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솔직히 지도를 펴놓고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들과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미얀마 뿐만 아니라 여타 인근 국가들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적, 문화적으로 훨씬 멀리 있는 유럽 각국에 대한 지식보다도 오히려 미치지 못합니다.

많은 인구, 덥고 습한 열대성 기후, 스콜, 저개발국, 이민노동자, 싸구려 관광…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미지는 대략 그렇습니다. 진면목은 도외시한 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에 의존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동서 문명의 교차로였고 중국과 회교권 문화 등 다양한 문명 틈바구니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고 지켜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책 (동남아시아사) (책과함께, 소병국)는 이 지역 전문가인 저자 소병국 한국외대 교수가 동남아 11개국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통사 개념으로 다룬 역사서입니다. 읽는 내내 독특한 문화 체험과 통찰, 그리고 그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동남아시아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없애주는 훌륭한 책입니다.

재즈 브루잉

1987년 9월 21일 미국의 한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던 남자 하나가 사망한다. 열흘 전 술에 만취된 채 클럽 관리인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폭행당한 후 의식을 잃고 실려 왔던 남자였다. 
그가 바로 이른바 퓨전 재즈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가장 뛰어난 실력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자라 칭송받는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다.

재즈의 악기 구성면으로 볼 때 베이스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악기였다. 빌 에반스 트리오 초기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가 어쿠스틱 시대의 베이스에 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70년대 이후에는 일렉트릭 베이스로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자코 파스토리우스 는 1951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다. 12살이던 1963년부터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구성해 연주할 만큼 음악적 자질이 뛰어났다. 드러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드럼 연주로 시작했으나 미식축구를 하던 중 당한 손목 골절상으로 드럼을 포기하고 기타와 키보드로 연주했다. 17세에 이르러서는 베이스로 완전히 전향한다. 워낙 천재적인 감각의 음악성을 인정받았기에 여러 밴드에서 세션으로 참여하는 한편 폴 블레이와 팻 메스니 등과 같은 당대의 걸출한 뮤지션들과도 음반 작업을 하게 된다.

오늘의 역사

제물포구락부 인문학 아카데미 
구독자 여러분 제물포구락부 인문학 아카데미는 설날 연휴 기간에 잠시 휴강합니다.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2021년 2월20일, 2월28일 예정된 강의를 미리 알려드립니다. 홈페이지의 티켓오픈 공지를 기다려주세요~.


엘리자베스 키스 특별전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은 풍경화이면서도 인물화이고, 인물화이면서도 풍경화입니다. 인물을 빼고 그린 풍경화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잘 차려입은 고관대작이나 귀품있는 상류층 인사들만 그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름없는 서민층을 모델로 다수의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보잘 것 없는,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들을 화폭 한귀퉁이에라도 그려넣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림 안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을 이름없는 사람들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마치 그 사람들에게 대한 무언의 연민을 느낀 듯 그림에 남겼습니다. 그만큼 한국 민중의 정서를 깊이 이해했고 공감했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을 감상할 땐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결코 눈에 띄지 않을 작은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요.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코리아 특별전’은 특별전이라는 타이틀을 걸 만큼 수준높은 큐레이팅과 스토리텔링이 담겨있다고 자부합니다. 

이제 2월 28일까지 채 한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망설이다가는 정말 놓칠 수도 있습니다. 서두르셔야 할겁니다.

관람객 베스트 리뷰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의 나이는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56m, 뿌리부분 둘레 2.2m이다. 가지의 굵기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컸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대부분 가지가 죽고 동쪽 가지만 살아 있다. [사진촬영: 홍승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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