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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락부의 서재<몰락하는 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박인원 역, 문학동네)

리디언스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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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예술 앞에서 좌절했던 자의 몰락

<몰락하는 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박인원 역, 문학동네)







자신의 조국을 지독히도 증오했던 작가. 하지만 잉게보르크 바흐만, 페터 한트케와 더불어 조국 오스트리아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 어떤 면으로는 카프카와 비견되는 위대한 작가. 모두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 1931~ 1989)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1957년, 첫 시집을 출간한 이후 자전적 소설 ‘추위’등을 비롯한 작품을 통해 평단의 호평을 받는 작가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대한 그의 깊은 반감은 1968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수상소감 연설에서 오스트리아는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조직’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는 ‘빈사 상태에 빠진 인간들’이라 독설로 논란을 일으키며 ‘둥지를 더럽히는 자’, ‘조국에 침을 뱉는 자’로 불리게 됩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나치 독일 합방 50주년과 빈 부르크테아테의 100주년 기념 공연작 '영웅광장'을 통해 나치와 병합한 오스트리아를 역사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의 작품과 공연에 대해 검열과 금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고 당시 여당 당수는 수도 빈에서 베른하르트를 몰아내고 그의 작품들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대한 그의 증오는 1989년 그의 사망 이틀 전 직접 공증을 마친 유언장에서 정점이자 마지막 구두점을 찍습니다. 베른하르트는 이 유언장에서 저작권법에 따라 오스트리아 국경 내에서 자신의 작품이 출판·공연되는 것을 일절 금지시켰던 겁니다. 이에 대해 베른하르트의 전기를 쓴 ‘한스 횔러’는 나치 시대 많은 작가들이 망명을 택했던 것과 달리 ‘사후(死後) 문학적 망명’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만큼 나치에 협력했던 조국에 정면으로 맞섰던 작가입니다.

이토록 지독한 오스트리아에 대한 증오의 기저에는 사생아로 출생하여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유아기의 상처, 새로운 가정을 꾸린 어머니로부터 보내진 나치 운영 학교에서 당한 체벌과 감금, 나치 소년단 동급생들에게 시달린 폭력등도 작용했다고 베른하르트 자신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몰락하는자>는 베른하르트가 전 생애와 작품으로 천착한  죽음과 절망 자살 고통과 같은 주제가 드러난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입니다. 1인칭 화자인 ‘나’와 소설 작품 발표 당시 실존 인물이었던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글렌 굴드의 이상적인 예술 앞에서 절망했던 친구이자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베르트하이머가 그들입니다.

작가 베른하르트처럼 오스트리아를 증오하여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작품 속 화자인 ‘나’는 글렌 굴드와 함께 피아노를 공부했던 친구 베르트하이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돌아 옵니다. 친구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나’는 그가 죽기 전 머물렀던 별장과 근처 여관을 찾습니다. 

처음에는 감사와 구속으로 평생 함께 하려고 했던 여동생이 떠난 것에 대한 절망으로 자살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르트하이머의 자살은 그가 가장 이상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글렌 굴드의 죽음으로 인한 절망과 좌절 때문이라고 결론짓게 됩니다. 

베르트하이머는 이미 대학시절 처음으로 글렌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듣고는 결코 자신이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그때부터 차츰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불행한 일이야, 살아 있는 동안 불행은 지속되고 죽음만이 그걸 그치게 할 수 있어. (p 65)


결국 베른하르트가 하고 싶은 말은 ‘산다는 건 어쩌면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고 그런 의미에서 몰락하는 자는 우리 자신이다.’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속에서 자살한 베르트하이머는 글렌 굴드와 화자인 ‘내’가 언젠가는 자살하리라 말합니다. 그러나 자살한 것은 베르트하이머 자신이었으며 글렌 굴드는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죽었고 ‘나’는 정작 살아 있습니다. 똑같이 ‘이상적 예술’앞에서 좌절했지만 그 좌절은 베르트하이머 자신을 갉아먹게 했고 ‘나’에게는 삶의 ‘성찰’을 주었습니다. 성찰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는 이유일 겁니다. 

베른하르트의 문체는 1인칭 화자의 독백과 함께 작품의 주요 모티브인 바흐의 골트베르크가 아리아를 중심으로 서른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고 단락 구분도 없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소 베른하르트는 상투적인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문체를 파괴해야 하고 해체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광설(長廣舌)로 서술된 베른하르트의 문체는 독자에 따라서 약간 곤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수히 등장하는 문장 ‘난 생각했다.’가 마치 쉼표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작품속엔 따분한 소설로 로베르트 무질의 작품이 언급됩니다.







물 한 잔을 앞에 놓고 나는 20년 만에 무질의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을 다시 읽어보려 했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묘사 따위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파스칼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때울 수도 없었다. (p 60) 


이 부분은 베른하르트의 독설일까요? 유머일까요? 무질의 작품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에 대해서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읽을 때 살짝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요? 따분함으로 따진다면야 파스칼은 그렇다치고 로베르트 무질이나 토마스 베른하르트 자신의 작품이나 매한가지일테니 말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작품을 등한시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문학 내지는 독일문학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빼놓고 넘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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