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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제임스 S. 게일(James Scarth Gale)

리디언스
2020-11-29
조회수 635


제임스 S. 게일(James Scarth Gale)



70여 년의 생애 중에 대학을 갓 졸업한 이후 약 4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던 외국인이라면 과연 그는 외국인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한국인이라 불러야 할까? 더우기 그는 최초의 한영사전에 언더우드와 헐버트와 함께 공저자로 이름이 올라있다. 이쯤되면 애초의 국적이 캐나다이고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서양인의 외양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진정 한국인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제임스 S. 게일(James Scarth Gale)은 1863년 2월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출생하여 스무살이 되던 1888년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한 이듬해 1889년 조선 파견 선교사가 되어 입국하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해외에 소개한 업적을 고려하면 단순히 선교사라 부르기엔 아까운 인물이다.

흔히 최초의 한영사전의 저자라고 하면 언더우드나 헐버트 박사만을 언급하는 경향이 있으나 1890년 한영사전에는 제임스 게일 역시 공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에 입국한지 7년만인 1895년에는 영국 작가 John Bunyan의 종교 소설 <The pilgrim's Progress>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텬로력뎡> (천로역정)이란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이 책의 삽화는 당시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이다.  재미있는 건 등장 인물 모두 조선 사람으로 묘사해 갓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예수님까지 갓을 쓰고 있다.

해외에 우리 문학을 알린 이도 게일이다. 청파 이륙의 <청파극담>과 수촌 임방의 <천예록>의 이야기를 1913년 영국과 미국에서 <Korean Folk Tales>라는 책으로 출간하였고,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을 <The Cloud Dream of Nine>이라는 제목으로 영국에서 출간하였다. 또한 <심청전>과 <춘향전>도 번역하였다. 심지어 당시 한국의 풍경과 인물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했던 엘리자베스 키스 역시 그의 작품집 <올드 코리아>에서 ‘한국인에 대하여 게일만큼 아는 이도 없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관련된 논문을 수백편 남기기도 했으며 <동국통감>을 번역하여 우리의 역사를 서양에 알리기도 했다. 또한 <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로 한국의 역사에 관하여 무려 4년간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책비) p.254



게일은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당일 고종을 알현하여 사건 직후 고종이 울분을 토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고종의 고문으로서 활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종의 아들 의화군과 친구였으며 대원군의 측근과도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이밖에 박영효와 이상재를 비롯한 개화기 인물과도 교분을 나누었다. 평양에서 직접 목격한 일본군과 청국군, 청일전쟁과 아관파천의 뒷이야기와 갑신정변, 을미사변을 논하며 일본을 비판했던 한마디로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통달한 한국학 학자였다.





특히 대한제국 국호 선포 직전인 1888년부터 1897년까지 조선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10년의 기록을 <Korea Sketches> (한국어판은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라는 책으로 펴냈다. <Korea Sketches>는 서양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최초로 소개한 책이라 볼 수 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접한 장례 방식부터 온돌 난방,비효율적이로 보이던 복식, 계란 한 알 없이 부실한 식단 등 독자로 하여금 당시 조선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을 마치 지금 이 순간 곁에서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일반 백성을 일컫는 듯한 ‘상놈’에 관하여 묘사한 대목은 대단히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책비) p.69



상놈들은 마치 콜레라나 다른 외래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쭈그려 앉아 서양 사람들 인구라도 줄이려는 양 온 대기를 들이마셔 대고 있었다. 가끔은 참외를 껍질째  씹으며 말이다. 상놈을 감싸고 있는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평온함이었다. 무기력하다고 하면 어떤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한 상태를 떠올리게 되는 반면, 평온함은 완벽한 일치 상태를 가리킨다. 그 고통스러운 자세로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들은 작열하는 동방의 태양 아래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입을 활짝 벌린 채 잠들었다가는, 마치 푹신한 침대에 서 밤새 편히 잔 다음 아침에 일어나 목욕까지 끝낸 것처럼상쾌하게 다시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p. 68)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책비) p.21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책비) p.39




게일은 그 어떤 외국인보다 조선에 대해 다양한 경험했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부산으로 입국하여 제물포를 거쳐 서울에 입성한 후 해주, 장연, 개성, 평안, 의주와 만주까지 두루 여행했다. 거기에 더해 그간 서양인은 들어가 보지 못한 압록강 동편 지역까지 여행했으니 그렇게 스스로 말할 만하다.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 수많은 조선인들과 대화하며 생활하며 겪은 생생한 기록들이라 그 가치는 엄청나다. 이 책의 원본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조선을 싫어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다. 나에게 조선이란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나라인데, 좋은 날씨에, 점잖고 신의 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하며, 그네들의 말과 오랜 풍습은 아주 흥미로운 데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지천에 널려 있다. (p. 177~178)


왜 게일이 왜 그토록 조선을 사랑했는지 잘 나타난 대목이다. 비록 외모와 뿌리는 파란 눈을 한 외국인이었으나 40여 년을 이땅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진정한 조선인이라 부를만 하다. 1928년 은퇴한 후 부인 루이스의 고향 영국에서 여생을 보내다 1937년 부인과 막내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로 생을 마쳤다. 


제물포구락부의 스페셜 블렌드 <제임스 S. 게일>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해외에 소개한 게일의 한국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 그리 무겁지 않은 바디감에 말린 과일의 달콤함과 허브의 플레이버가 특징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산미에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라 편안한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기 좋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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