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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문학 - 아르튀르 랭보와 커피

리디언스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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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독한 한 모금의 독을 꿀꺽 삼켰다 -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1854∼1891)  사진 : 위키백과




평생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방랑했던 시인. 그래서 별명까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 불리던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1854∼1891). 우리는 그저 천재시인 혹은 방랑시인 랭보라고 부른다. 그가 시를 썼던 기간은 겨우 5년. 16세부터 시작했지만 20세에 절필했다. 그러나 그가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현대문학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기에는 5년이라는 시간이 오히려 혼란만을 줄 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문학을 떠난 실존적 삶과 방랑이 그의 독창적 시 세계를 조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 (랭보, 민음사)




연인 베를렌이 그린 랭보의 모습 (사진 : 서울신문)




18세에 그 유명한 <지옥에서의 한철>을 집필하여 프랑스 문학계에 충격을 준 랭보는 20세에 시 작업을 중단하고 만다. 몇해를 방황한 끝에 랭보는 예멘 아덴에 있는 프랑스 커피 회사의 에티오피아 현지 무역 사무소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랭보가 근무했던 곳은 에티오피아 ‘하라르’(Harar)라는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비이슬람교도의 출입을 제한해 오던 지역이었지만 랭보는 오히려 자신을 하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이로서 랭보와 커피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의 삶에 커피가 깊숙히 자리잡게 된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를 아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 (사진 : 위키백과)




당시 하라르는 번성한 무역 도시였다. 또한 커피의 기원지로 알려진 카파(Kafa) 지역 인근에 위치했다. 카파 왕국과는 대상 교역로로 이어져 있었다. 하라르는 원래 커피가 자생하지 않는 지역이었으나 이 대상로를 통해 카파의 커피가 하라르에서 재배되었고 이 커피는 이후 예멘을 거쳐 범 이슬람 지역으로 퍼지게 된다. 




커피나무 옆에 선 랭보 (1883) 사진 : 서울신문




랭보의 사업 수완은 제법 뛰어났다고 알려진다. 그뿐 아니라 랭보야말로 하라르산(産) 커피를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 수출한 거의 최초의 유럽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커피 사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커피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무기사업으로 전환을 시도한다. 그러나 무기 판매에 몇년간을 매달렸음에도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랭보는 커피 무역을 재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커피상에서 무기상으로 변신하게 된 이유에는 커피 시장 변화뿐 아니었을 것이다. 랭보가 하라르에서 지낸 기간은 무려 8년이었다. 한 곳에 머문 기간 중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가장 긴 시간이었다. 천성적으로 ‘방랑’ 기질을 가진 랭보로서는 어쩌면 이보다 견디기 어려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어머니와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편지에서 랭보는 하라르와 에티오피아의 열악하고 참담한 현실에 대해 자주 불평을 늘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1891년 오른쪽 다리에 난 종양으로 걷지 못하게 되어 치료를 위해 고국 프랑스로 돌아간다. 그가 프랑스를 떠난지 12년만이다. 결국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그는 지인들에게 하라르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하라르를 그리워 했다. 그 후 한달도 채 안되어 하라르로 가기 위해 마르세유 항구로 갔으나 병이 재발하는 바람에 다시 병원에 입원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에티오피아행 배편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에서는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에티오피아가 실은 죽어서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진정한 안식처였던 것이다. 


나는 지독한 한 모금의 독을 꿀꺽 삼켰다. 나에게 다다른 충고여 세 번 축복받으라! 나의 내장이 타는 듯하다. 독액의 격렬함이 내 사지를 뒤틀고, 나를 일그러뜨리고, 나를 넘어뜨린다. 목이 말라 죽겠다. 숨이 막힌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지옥이다, 영원한 고통이다! 불길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보라! 나는 더 말할 나위없이 타오른다. 자, 악마여! (지옥에서 보낸 한철, 랭보, 민음사)


커피에 대한 은유가 이보다 더 강렬한 시가 세상에 또 있을까? 어쩌면 당시 파리 사람들이 카페에서 랭보의 시집을 읽으며 마셨던 커피가 바로 시집의 주인공 랭보의  에티오피아 하라르 커피였는지도 모른다. 

형용모순이지만 시에서 말한 ‘지독한 한 모금의 독’은 랭보에게 지옥의 맛인 동시에 천국의 맛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옥에서의 한철’과 ‘천국에서의 한철’이 동의어다. 하라르에서 벗어나고자 뛰쳐나갔으나 결국 하라르로 귀환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랭보의 생의 의지와 사의 찬미는 마치 커피의 진한 색깔만큼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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