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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조지 애쉬모어 피치

리디언스
2021-04-10
조회수 407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푸른눈의 독립운동가

조지 애쉬모어 피치 (George Ashmore Fitch 1883 ~ 1979)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폭탄 투척 의거가 있었던 1932년 4월 어느 날 4명의 한국인들이 깊은 밤을 틈타 프랑스 조계지의 한 미국인의 집에 숨어들었다. 이후 한 달 동안 윗층 다락방에서 숨어 지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경찰에 노출되었고, 집주인의 부인과, 부부로 위장하여 극적으로 탈출하였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언급되었던 실제 이야기다. 사건에 등장하는 4명의 한국인은 당시 한국임시정부를 이끌고 있던 김구와 그의 비서 엄항섭,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 그리고 김철이다.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한 달 동안이나 이들을 숨겨주고 탈출시켰던 집주인은 누구였을까?




조지 애쉬모어 피치 (1883 ~ 1979) 사진 : 문화역사신문




1948년 경교장에서 김구와 함께 자리 한 조지 애쉬모어 피치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 : 독립기념관)




조지 애쉬모어 피치(George Ashmore Fitch). 그가 바로 이 사건의 주인공이자 집주인으로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이다.

1883년 1월 장쑤성 쑤저우에서 장로교 선교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조지 필드 피치'의 아들로 출생한 조지 애쉬모어 피치는 미국으로 건너가 1906년 오하이주에 위치한 우스터대학을 졸업, 뉴욕에 있는 콜럼비아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1909년 졸업과 동시에 목사가 되었다. 그해 12월 상하이에 돌아 온 그는 1945년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중국 각지에서 YMCA 총간사로 활동했다.

조지 애쉬모어 피치는 1893년 11월 상하이에서 한국인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가 만난 한국인은 바로 ‘여운형’이었다. 애쉬모어는 1918년 11월 28일 상하이에서 열린 주중 미국대사 예정자 찰스 크레인의 환영파티에 초대장도 없는 여운형을 참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애쉬모어가 당시 북경정부 외무부장인 ‘왕정팅’과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 여운형은 크레인을 직접 만나 한국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920년대 초까지 아버지 필드와 함께 주로 중국국민당 인사들과 교류하던 애쉬모어는 1923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인 6월 미국으로 가는 배편에 김마리아, 황기석, 손진실 등과 동승하면서부터 한국인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특히 1930년대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의거 직후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일본 경찰의 한국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에 대한 독립 지원 활동이 두드러진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안창호에 대한 석방 운동이다.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당시 안창호는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불법 체포, 감금된 상태였다.애쉬모어는 ‘일본 경찰의 행동에 대해 프랑스가 묵인하는 것은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포기하고, 과거의 전통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프랑스 조계의 경찰서장이었던 에티엔 피오리에게도 서한을 보냈다. 애쉬모어의 비판과 활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식민지배에 관해 한국 내 외국인 선교사들의 폭로와 더불어 전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1919년에는 미국에서 설립된 한인구제회에 미국인 선교사들에게서 구호품과 의연금을 모집하여 전달하였고 1920년부터 이사로 활동했다. 또한 상하이 한인학교인 '인성학교'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자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44년에는 한국광복군에 대한 보고서를 미국에 보내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OSS 부대의 합동작전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1947년 7월 한국 YMCA 총간사로 임명되어 한국으로 파견되어 대한민국정부수립에 앞서 대한적십자사의 정식 발족 준비와 한국 YMCA조직에 나서기도 했다. 

YMCA조직과 함께 상하이에서 해왔던 것처럼 구호에도 앞장서다가 1949년 8월 8일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애쉬모어, 제랄딘은 한국과의 관계를 지속하며 구호 및 원조활동에 종사했다.

이러한 활동은 대한 독립 운동을 지원한 공로로 인정받아 1952년 1월 8일 대한민국정부로부터 문화공로훈장을 수여받았고, 1968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은퇴 이후 미국 클레몬트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다 1979년 1월 20일 향년 96세의 일기로 자택에서 운명했다.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서 선정하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2018년 1월 인물로 선정되었다.



영상 : KBS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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