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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셔우드 홀 (Sherwood Hall)

리디언스
2020-12-06
조회수 662

 셔우드 홀 (Sherwood Hall)

12월은 흔히, 가는 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는 해의 기대와 크리스마스 시즌이 주는 북적거림으로 늘 활기가 넘치는 달이다. 하지만 올 크리스마스는 아쉽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평소처럼 보내긴 힘들 것 같다.

지금은 예전과 같지 않지만, 한때 손글씨로 정성껏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던 시절이 있었다. 또 주로 학교에서 구입한 크리스마스 씰을 우표와 함께 카드 겉면에정성스럽게 붙이곤 했다. 그렇게 사용하던 크리스마스 씰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하는 일종의 증표였다.

크리스마스 씰은 1904년 덴마크에서 최초로 발행되었다. 코펜하겐의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뵐(Enar Holbell)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결핵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모금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덴마크 국왕인 크리스찬 9세의 적극적인 협조로 12월 10일 첫 번째 씰이 발행되었고 이 방법은 곧이어 전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도 소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은 1932년 당시 황해도 해주에서 구세결핵요양원장으로 있던 캐나다 출신 선교사이자 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에 의해 발행되었다.



셔우드 홀 (1893 ~ 1991)



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 홀



셔우드 홀의 아버지는 선교사이자 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이었으며  어머니는 1890년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온 후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진료를 시작하여 여성만을 위한 야간 진료소와 이대부속병원의 전신이었던 동대문 부인병원을 설립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다. 1893년 그들 사이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셔우드 홀은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다가 1911년 미국 오하이오 주 마운트 허먼(Mount Hermon) 학교를 거쳐, 1919년 마운트 유니언 대학을 졸업하고 1922년 매리언과 결혼했다. 이후 1923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홀츠빌 서퍼크 결핵 요양소에서 결핵을 전공했다. 

1925년 8월 미국 감리회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926년 4월 19일 부인 매리언 버텀리(Marian Bottomley)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1926년 7월 해주 구세병원(Norton Memorial Hospital) 원장으로 부임, 운산금광(동양연합광업회사) 담당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1928년 10월 27일 해주시 왕신리에 폐결핵 퇴치를 위하여 한국 최초로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셔우드 홀은 어떤 계기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셔우드 홀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핵에 의한 희생자가 많은 이유가 일단 결핵을 불치의 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치료를 포기하는 것에서 온다는 걸 알고 결핵 요양원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함께 계몽과 교육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와 함께 결핵 치료의 재원 마련을 위해 1932년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크리스마스 씰 발행은 1940년, 셔우드 홀이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기 전까지 총 9차례에 걸쳐 발행하게 된다.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1932)



하지만 당시 일제하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순조롭게 발행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셔우드 홀은 최초의 씰 도안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인에게 감흥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거북선’을 소재로 했다. 하지만 당연히 거북선 도안의 씰은 발행되지 못했고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은 ‘남대문’을 소재로 한 도안으로 발행되었다.

또한 셔우드 홀이 발행한 마지막 1940년 크리스마스 씰은 1919년 3월 한국에 들어와 20세기 초반 한국의 풍경과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남긴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도안은 한국 전통 복장을 입은 아이들이 등장하고 뒷 배경의 산이 너무 높아 보안 규정을 어겼으며 일본의 연호 대신 서기를 사용했다는 등의 이유로 압수 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서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9년동안 크리스마스실 발행되었다는 의미의 ‘Ninth Year’로 표기하고 아이들과 산 사이에 작은 대문을 그려 넣어 비로소 발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도안 - 좌로부터 아기를 업은 여인 (1934년), 연날리기하는 아이들 (1935년), 두명의 한국 아이들 (1940년)

 


이 사건으로 결국 셔우드 홀은 일본 헌병대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벌금 5,000엔과 함께 국외 추방되었다. 이로 인해 크리스마스 씰 발행도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다. 셔우드 홀은 한국에서 추방당한 후에도 1963년 은퇴할 때까지 인도에서 결핵 퇴치 운동을 벌였으며 1991년 4월 5일 9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유해는 생전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1991년 4월 대한결핵협회 장(葬)으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2대에 걸쳐 한국인에게 봉사한 공을 인정하여 한국 정부는 1984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였고 서울시에서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현재 양화진 제1묘역에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셔우드 홀의 딸 필리스와 쌍둥이로 태어난 날 죽은 프랭크, 여동생 이디스 마거릿, 셔우드 홀, 셔우드 홀이 별세한 바로 그해 91년 9월 19일 타계한 아내 매리언 버텀리 등 모두 6명이 잠들어 있다.

 제물포구락부의 스페셜 블렌드 <셔우드 홀>은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국의 결핵 퇴치에 앞장서다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던 셔우드 홀의 봉사 정신을 담았다.  쌉쌀한 다크 초콜릿의 풍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말린 무화과의 달콤함이 인상적이다. 높은 온도의 물을 이용하여 천천히 드립하면  한국의 대지를 연상케 하는 산뜻한 흙냄새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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