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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이야기돈덕전

아나스타샤
2020-05-17
조회수 206


덕수궁 내에 건립된 구성헌(九成軒), 수옥헌(漱玉軒, 중명전), 정관헌(靜觀軒), 돈덕전(惇德殿), 석조전(石造殿) 등 서양식 건축물을 통틀어 그 으뜸은 단연 석조전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1910년 이후에 준공된 탓에 대한제국 말기의 긴박했던 국운과는 한걸음 물러나 있는 공간이다. 

이에 비하여 돈덕전은 그 규모에 비추어보더라도 석조전에 거의 버금가는 정도이고, 더구나 각국사절과의 외교의례는 물론이고 1907년에 순종황제의 즉위식이 벌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주목되는 공간이다. 그야말로 돈덕전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근대사의 핵심적인 현장이었다.

그런데 덕수궁 내의 여느 서양식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돈덕전의 경우에도 그 내력이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관한 가장 흔한 조사자료는 역시 오다 세이고(小田省吾, 1871~1954)가 저술한 <덕수궁사(德壽宮史)> (1938)이다. 여기에는 돈덕전에 관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52~53쪽) 회극문(會極門)밖 즉 현재 영국영사관의 서방에 해당하며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돈덕전의 구획이 있었다. 회극문과 더불어 집하문(緝門)은 곧 이 작은 길을 나서 동전(同殿)으로 통하는 문이었으나, 나중에 석조전(石造殿)의 건축에 즈음하여 이 작은 길은 돈덕전 부지와 더불어 본궁역내에 들어가, 현재 보는 바와 같은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것을 하나의 구역으로 삼는다.

돈덕전은 이층구조의 순서양식 건물로 알현소(謁見所) 또는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되었으며, 황제는 누차 외국사신을 본전에서 접견했다. 명치 40년(1907년) 순종(고 이왕)이 고종의 선위를 받아 황제에 즉위하게 되자, 8월 27일 즉위례식을 본전에서 행하였다. 이어서 우리 황태자 요시히토친왕전하(嘉仁親王殿下, 대정천황)가 명치천황의 성지를 받들어 한국황실 어방문을 위해 동년 10월 아리스가와미야 타케히토친왕(有栖川宮威仁親王), 육국대장 카츠라 타로(桂太郞), 해군대장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등을 거느리고 경성에 행계하였는데, 그때에 한국황제, 황후와 더불어 태황제와 회견하고 또 황제와 오찬을 함께 했던 곳이 본전(本殿)이었다.

본전의 건축연차(建築年次)에 관해 명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실견자(實見者)의 말에 따르면 확실히 명치 34년(광무 5년, 1901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건축물은 어느 때엔가 해체되어져 현재 그 부지만을 남기고 있으며, 지금은 사진에 의해 가까스로 그 편린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은 참으로 애석하다."



1907년에 발행된 '한국황제폐하즉위기념' 엽서의 모습으로, 도안의 바탕에 덕수궁 돈덕전의 전경이 채택되어 있다. 1907년 8월 27일에 순종은 이곳 돈덕전에서 황제즉위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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