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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고여 우문국 (古如 禹文國, 1917~1998)

리디언스
202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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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단의 중심이자 문화예술의 초석

고여 우문국 (古如 禹文國, 1917~1998)



“내가 우 선생과 서로 알게 된 것은 벌써 17년 전 다 같이 역려(逆旅)에 시달린 이국의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때 분명히 목을 축이기 위하여 과일즙을 구하러 나온 길에서 해후했다. 우 선생은 23세의 약관으로 큰 눈이 바위 밑의 등불처럼 광채가 번뜩이는 재기 예발(銳發)해 보이는 미남이었고, 그때에도 틈만 있으면 사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꽃을 많이 사생하였다. (중략) 술은 매양 호음(豪飮)하는 편이어서 음중선(飮中仙)에 가깝다. 취하기 전에도 별로 말이 없거니와 취한 뒤에도 역시 말이 적다. 그러나 호방한 기개는 어디서나 좌중을 휩쓸곤 한다. 이취(泥醉)할 지경에 이르면 어디선지 평소에 찾아볼 수 없는 황소고집이 나온다. 또 용맹도 나온다. 이럴 때에는 서로 붙들고 밤새도록 거리를 헤맨 적도 있다. 애음(愛飮)하는 탓으로 지교들 사이에 그저 막걸리처럼 텁텁하기만 할 것으로 아는 이가 있을지 모르나 칭찬과 예의에 대한 깊은 교양을 갖고 있다.”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선생이 고여(古如) 우문국(禹文國, 1917~ 1998) 선생의 인품에 대하여 쓴 평이다. 문장 몇 개로 어찌 한 사람을 다 알 수 있을까만은 유희강 선생의 글로 만나는 우문국 선생은 그야말로 기품과 호방을 모두 갖춘 예인(藝人)이라는 확신이 든다.




고여 우문국 (古如 禹文國, 1917~1998)




인천시립박물관 제3대 관장을 역임했던 우문국 선생은 1917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21세가 되던 1937년 미술가로서의 꿈을 안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그림 유학을 하던 중 평생 친구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검여 유희강 선생을 만난다. 고여(古如)라는 호 역시 유희강 선생의 호 검여(劍如)와 짝을 이루어 지은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은 서로의 삶과 예술에 서로의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해방이 된 이듬해 1946년 두사람은 함께 귀국했지만 이북이 고향인 우문국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인천의 유희강 자택에 한동안 머물게 된다. 

1949년 인천예술인협회의 발족을 주도했고 유희강 선생이 제2대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1955년에는 초대 인천 문화원장으로 취임하여 1959년까지 인천문화원을 이끌었다. 1966년에는 유희강 선생의 후임으로 제3대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취임한다. 당시 우문국 관장이 박물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직접 쓴 다음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건물수리 때에 나온 낡은 판자와 각재를 모아 (박물관의) 입간판을 세우기로 했다. 나는 이 일을 하는데 몇 몇 안되는 직원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며칠이 걸려 세 개의 입간판을 완성했다. 직원들은 나의 이 행위가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만 있었다. 요소(要所)에다 세운 이 입간판들은 제법 선전효과를 나타내 예년에 비해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였다.” (나의 공무원 생활, 1969)


박물관장 재임시 박물관을 개수(改修)한 후  '건물개수기념 특별전시회'를 열어 고려청자를 비롯한 문화재 30여 점을 국립박물관에서 대여해 전시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 도난 및 분실을 막기 위해 전시기간 내내 전시실에 의자를 모아놓고 숙직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을 만큼  박물관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다고 한다.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사용할 당시 제물포구락부 전경 (사진 : 국립민속박물관)




3년간의 박물관장 임기를 마친 후에는 인천여고 등 인천의 몇몇 학교와 국민대학교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미술협회 이사를 맡아 인천 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밖에도 총 8회에 걸친 개인전을 열며 서양화와 한국화뿐 아니라 '패분화(貝粉畵)라는 우문국 선생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펼치기도 했다. 패분화란 조개껍질을 곱게 가루를 내 매체로 사용하는 그림이다.




비천도 (패분화) 사진 : 스페이스 빔, 경인일보




1998년 6월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후배 화가들이 마련한 우문국 선생의 작품 회고전이 열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5년째 뇌졸중으로 병석에 있던 우문국 선생 본인은 전시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시회가 끝나고 한 달여가 지난 후 실향의 예술가는 82세를 일기로 작고하고 만다.




해경 (우문국) 사진 : 경인일보




“고여의 작품세계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서양화적 공간구성과 입체감의 표현 그리고 기법에 구애받지 않는 그의 수묵(담채)화는 80년대 초에 절정기를 맞는다. 특히 1981년 제작한 횡폭의 산수화는 말끔한 선과 절제된 준법, 현대적 채색과 공간구성 등 소상팔경 중 '원포기법'을 연상케 하는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특히 만년의 작품들은 대담한 축약과 절제된 표현으로 일종의 선기(禪氣)마저 풍기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경모가 신문 기고를 통해 선생의 작품세계에 대해 남긴 글이다. 인천 화단의 중심이자 인천 문화예술의 초석을 쌓으면서도 독창적 작품세계를 일군 선생에 대한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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