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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락부의 서재<프롤레타리아의 밤> (자크 랑시에르, 문학동네)

리디언스
2021-05-23


<프롤레타리아의 밤> (자크 랑시에르, 문학동네)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한겨울 추위에 떨던 소녀가 몇 개의 성냥을 그어 환타지를 만들어 버티다 결국 숨지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소녀는 추운 겨울밤에 성냥을 팔아야 했을까요? 동화를 처음 접하던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드는 의문입니다.

동화속 소녀는 성냥을 팔아야만 했던 가난한 소녀였을 겁니다. 더 나아가 어쩌면 성냥공장의 직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동화가 발표된 1834년 당시의 성냥공장은 어린 아이들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작업의 특성상 성인보다는 어린아이를 주로 고용했습니다. 12시간 이상의 노동과 터무니 없는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건 물론 쉽게 해고 당했습니다. 또 임금을 대신해 성냥을 지급받기도 했습니다. 해고 당한 가난한 아이들은 임금 대신 받은 성냥을 내다 팔아야만 했습니다.

단지 슬픈 동화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 이면에 이런 비애가 숨겨져 있던 겁니다. 누구나 아는 동화지만 실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며 도시 빈민이 쏟아지던 당시의 비참한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잔혹동화입니다.

소개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밤>(자크 랑시에르, 문학동네)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시기,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한없이 고통스러웠을 19세기 초반 노동자들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자크 랑시에르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 노동계급들에 대한 자료 보관서를 뒤지다가 1830~50년대 노동자들이 남긴 다량의 문서들을 발견합니다. 

랑시에르가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고된 노동을 마친 밤 휴식을 뒤로 하고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유하고 철학하는 행위, 즉 여태까지 지식인들만이 공유하는 형식이라는 것에 저항한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유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만연된 무력감과 보편적인 노동자의 정체성에 반기를 든 셈이죠. 

노동자가 그저 노동을 제공하고 그만큼의 임금으로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유일한 휴식인 밤을 소환하면서까지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고 자각했던 겁니다. 노동자만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눈물겨운 작업이었죠. 틀림없이 고통스러운 주체 인식 과정이었을 겁니다.

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발굴은 격동의 프랑스 68혁명 당시 혁명과 저항의 전선에서 전위(지식인)와 대중(노동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 랑시에르가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결별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랑시에르에 의해 역사의 수면위로 부상한 노동자의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알튀세르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대중)는 노동에 전념하고 지식인(전위)은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기본 질서를 포기하지 않은 알튀세르를 랑시에르 역시 추종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전위와 대중의 ‘역할 분담'이라는 대전제가 뒤엎어지게 된 것입니다.

제가 랑시에르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지배 구조를 담론으로 접근했던 것에 비해 랑시에르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포함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격, 그리고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또 그것을 노동자와 대중이 자각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지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 발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식’의 묵은 사고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노동자 자신들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랑시에르가 ‘정치란 평등의 실천’이라고 정의한 부분과 같은 맥락입니다. 

공부하고 사유하는 일은 결코 특정한 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체를 자각한 19세기 초 노동자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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