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구락부 스토리 아카이브

재즈,어번스케치,3D모델링,여행가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재즈브루잉재즈 브루잉 - Si Dolce È Il Tormento (Paolo Fresu & Uri Caine))

리디언스
2020-09-05
조회수 306

'Si Dolce È Il Tormento (Things,  Paolo Fresu & Uri Caine, Blue Note)


아메리카노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마시는 커피다. 아마도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 메뉴일 것이다. 아메리카노의 정확한 명칭은 ‘카페 아메리카노’(Caffe Americano)다. 즉, 굳이 번역하자면 ‘미국인이 마시는 커피’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왜 하필 아메리카노(Americano)일까?

여기에는 커피에 관한 작은 역사가 하나 숨어 있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차 값의 상승으로 대체제인 커피 소비가 급증했고 이전처럼 유럽스타일로 마시던 진한 커피 대신 홍차와 비슷한 농도의 연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부터는 에스프레소 한잔에 적당량의 물을 섞어 마시는 지금의 아메리카노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볼 때 다분히 미국인을 비하(?)하는 의미로도 비춰질 수 있다.




아메리카노의 베이스로 사용되는 커피는 에스프레소다. 이탈리아어 ‘Espresso’는 영어의 Express와 어원을 같이 한다. 즉 빨리 추출한다는 의미이다. 에스프레소의 정식 메뉴 명칭인 카페 에스프레소(Caffe espresso)는 말 그대로 빠르게 추출한 진한 커피를 의미한다.

한국에 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정식으로 판매된 기원은 1999년 스타벅스가 들어온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정평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노 뿐만 아니라 에스프레소, 라떼, 카푸치노, 마끼아또 등과 같은 생소한 이탈리아어 메뉴 이름에 당황했던 걸로 안다. 주저하다가 결국 맨 위에 적혀있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쓰고 진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때 획득된 학습효과 때문일까? 카페의 자상한 바리스타들은 지금도 종종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나이 지긋한 고객에게 쓰고 진한 커피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에스프레소를 처음 접한 건 원조 이탈리아에서가 아니라 90년대 초 회사 업무 출장으로 처음 밟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카페에서다. 당시 얼떨결에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고 생애 첫 한 모금을 입에 댄 순간 당황한 나머지 진땀까지 흘렸던 기억이 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후 뜨거운 물 한잔을 부탁했고 거기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마시고 나서야 안도의 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주변 풍경이 찬찬히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우연하게 즉석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 마시게 된 아메리카노는 어찌 그리 특별한 맛이던지, 이후로 지금까지 그런 느낌의 아메리카노는 마셔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대할 때면 가끔 그날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차가운 아침 공기, 바리스타들의 절제된 움직임, 카페 문을 나섰을 때 발바닥으로 전해지던 보도블록의 거친 감각, 독일어의 딱딱한 발음만큼이나 차가웠던 그들의 표정 같은 것들이다. 이들 모두가 이방인으로 낯선 세계에 혼자 들어와 있다는 불안과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혼재된 감정이다.




 


커피 분야에서 이탈리아와 미국이 만나 카페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낸 것처럼 재즈에서도 비슷한 조합이 있다. 미국의 피아니스트 유리 케인(Uri Caine)과 이탈리아의 트럼페터 파올로 프레수(Paolo Fresu)가 함께한 앨범 'Things'(Paolo Fresu & Uri Caine, Blue Note)다. ‘Things’가 타이틀인 만큼 앨범 자켓의 표지 역시 잡다한 일상의 사물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사진이다.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가 없지만 특히 7번 트랙 'Si Dolce È Il Tormento'는 이 앨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말로는 '달콤한 고통'이라고나 할까? 나를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고통조차 달콤하다고 하니 나같은 범인은 그 연민의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심연의 아픔 같은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올라와 늘 먹먹하다.

원래 초기 바로크 작곡가이자 사제였던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가 사랑을 잃은 남자를 모티브로 작곡한 연가이니 당연히 그러고도 남는다. 몬테베르디 자신 역시 일찍 상처했다고 알려져 있으니 자연스레 음악을 만든 배경이 짐작된다.

파올로 프레수의 뮤트 트럼펫과 푸르겔혼,  유리 케인의 펜더 로즈가 들려주는 인터플레이는 그저 가만히 듣는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처연하게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의 타이틀이 일상을 의미하는 ‘Things’인데 반해 ‘특별한 감정’을 노래하는 이 트랙은 매우 역설적인 존재다. (영상속 유리 케인이 연주하는 건 펜더로즈가 아닌 피아노다)


그간 큰 더위가 없었던 대신에 줄창 마스크를 쓰고 다닌 여름이었다. 그렇더라도 서둘러 보내기엔 어쩐지 아쉬운 여름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바람의 서늘함마저 느낀다. 벌써 9월 첫주가 지났다. 이제 곧 가을이 올 것이고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올해 내내 코로나로 시달려서 그런지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들, 공간을 데워주고 있는 따뜻한 공기와 수많은 대화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주는 다정함과 익숙함 같은 감정까지.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제 좀 알 것도 같다.







1 0

연락처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

전화번호:032-765-0261

이메일:jemulpoclub@gmail.com

찾아오시는길


#제물포구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