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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사무엘 오스틴 마펫(Samuel Austin Moffett)

리디언스
2021-01-24
조회수 262

3.1운동의 숨은 공로자

사무엘 오스틴 마펫(Samuel Austin Moffett)

우리가 알고 있는 3.1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경 서울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배를 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2020년에 방영된 KBS <다큐세상> 3.1절 특집 ‘130년간의 한국사랑-마포삼열과 그의 아들들’편에 의하면 3.1 만세운동은 서울이 아닌 평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시각이 오후 2시 경이고, 본격적인 시위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종로 탑골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반면에 평양에서는 그보다 이른 오후 1시에 이미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평양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의 배후에는 한국인이 아닌 알려지지 않은 한 외국인 선교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바로 미국 장로교 소속 사무엘 오스틴 마펫(Samuel Austin Moffett, 1864년 1월 25일 ~ 1939년 10월 24일)이다.

 사무엘 오스틴 마펫 (Samuel Austin Moffett, 1864. 1. 25 ~ 1939. 10. 24)

1919년 3월 1일 평양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은 마치 들불처럼 퍼져 일제에 대한 전국적인 항거로 변모하였다. 이에 놀란 조선총독부는 3월 22일 조선호텔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선교사들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조선인들은 자체적으로 3.1 만세운동과 같은 시위를 할 능력이 없고, 선교사들의 사주가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강력히 경고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한 선교사가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사무엘 오스틴 마펫이었다.


나는 30년간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인의 친구로서 말하겠다. 내가 아는 한국인은 정의감이 강하고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더 중요시 하는 훌륭한 민족이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물질적인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당신들이 짓밟은 사람들은 한국인들 중에 가장 모범적이고 훌륭한 시민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야만적인 폭행과 감금과 고문을 하는 것이 과연 당신들이 말하는 문화대국 일본의 합법적인 통치인가? <1919.3.22.>


하지만 사무엘 오스틴 마펫은 지금까지 여타 선교사들과 별 차이 없이 평범한 선교사 정도로만 알려져 왔다. 


미국 인디애나주 매디슨 카운티에서 태어나 1890년 조선에 와서 46년간 선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가 세운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는 현재의 장로회신학대학교가 되었고 숭실대학교가 속해 있는 숭실전문학교 창설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마포삼열(馬布三悅)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질 정도로 우리나라를 사랑했다.


이상이 여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이력이다. 하지만 사무엘 마펫은 3.1만세운동 이전인 1911년 105인 사건 당시 이미 미국 장로회 본부 전도국에 사건의 전모를 보고하여 국제적인 여론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또한 그는 한국에 온지 불과 3개월 만에 한국인의 미래를 이렇게 예견했다고 한다. 


나는 이 나라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지적이고 매력적입니다. 체면을 앞세우거나 노동을 천하게 여기는 인식만 버린다면 장차 강한 민족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1907년 선교학교 졸업식 광경 (사진 : 월간중앙)



평양 장대현교회 앞의 사무엘 마펫 선교사, 길선주 목사, 그레이엄 리 선교사(왼쪽 세 번째부터) , 사진 : 국민일보




1919년 3월 1일 사무엘 마펫이 주도한 만세운동의 전모는 매우 놀랍다. 오후 1시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인 약 1천 명의 교인들은 천막 안에 태극기를 걸어 놓고 아래 만세를 외쳤고, 사무엘 마펫이 직접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놀라운 것은 33인의 민족대표 중 길선주, 이승훈, 유여대, 양전백, 김병조 등 5명이 그의 제자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사무엘 마펫이 없었더라면 과연 1919년 3.1 만세운동이 순조롭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사무엘 마펫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스코필드 등 한국의 독립에 열정을 바친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3.1 만세운동의 비폭력성과 일제의 폭력적인 진압 사실들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또한 미국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은거지로 자신의 집과 학교를 제공했다. 그 결과 3.1 만세운동을 비롯한 많은 독립 활동이 그의 집에서 논의되었고 평양판 ‘독립 신보’가 발행되기도 했다. 이밖에  ‘제 2의 3.1 만세운동’이라 불리는 ‘비밀결사 대한국민회와 대한독립청년단의 통곡 시위’ 준비도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일본의 신사 참배에 불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세운 학교를 폐교하면서까지 항거하였다. 

사무엘 오스틴 마펫은 26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에 들어와 1939년 70이 넘은 나이로 숨질 때까지 오로지 한국인과 한국의 독립을 위해 생을 바쳤다. 숭실 전문대와 평양신학교를 비롯해  300여 개의 학교를 직접 세웠거나 관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민족대표 중 5명을 비롯해 윤동주, 조만식 등 애국 청년들이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사진 : KBS 다큐세상




사무엘 마펫의 한국 사랑은 그의 아들들에게 이어졌다. 특히 그의 넷째 아들인 하워드 마펫 (한국명:마포화열)은 미군 막사에서 시작한 작은 병원을 현 대구 동산병원과 계명대학교 의과대학병원으로 성장시키기도 했다. 또 하워드 마펫의 둘째 아들 찰스 마펫은 세 명의 한국 고아를 입양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마음에 제가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입니다.’ 


안타깝게도 일제의 탄압으로 1936년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집을 구할 돈 마저도 없어 지인의 집 창고에서 3년 동안 거주하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그는 한국인의 영혼과 한국의 독립을 위해 기도했다. 3대에 걸친 한국에 대한 마펫 가족의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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