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구락부 스토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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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인문路드운양(雲養) 김윤식과 엘리자베스 키스

모비딕
2021-01-11
조회수 302

김윤식은 전통 유학에 조예가 깊었으나 동시에 신문물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엄청난 지식과 뛰어난 문장력은 중국·일본 학계에서도 인정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모아 1915년 문집 운양집(雲養集)을 발간했는데, 문집이 나오자 한·중·일 학계에서는 '동방의 한유(韓兪)이자 구양수(歐陽修)' '조선의 셰익스피어' '이조 500년 최고 문집' 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운양집은 2014년 연세대 동아시아고전연구소에서 8권짜리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운양 김윤식에 대한 현 시대의 평가는 "구한말 개화사상가"로써 그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듯하다. 그의 사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민족진영 내부의 분열을 일으킬만큼 운양의 일생은 개화와 척화,친일과 애국의 경계에 서 있었다.


그가 을사늑약을 논하는 어진회의에서 남긴 불가불가(不可不可)라는 기록과,1919년 3.1 만세운동 직후 일제 총독한테 보낸 편지의 제목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에 대한 기록은 해석을 달리하는 두 진영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로 입에 오르내린다 한다.

자주적 개항의 상징적 서사자원 제물포구락부에서는 2021년 2월28일까지 100년전 조선에서 활동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회를 이끌어준 재미학자 송영달 교수와 전시회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에 담긴 운양 김윤식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옮겨본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한국에 도착했던 1919년 봄 한국은 3·1운동으로 만세바다,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의 미적 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수채화로 그린 그림을 일본에서 목판화로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키스였지만, 한국 사람들이 일본인의 무자비한 식민정책에 학대당하고 신음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분개해 통탄을 금치 못하며, 일본의 비인도적인 식민지 정책을 비난했다.


그때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의 주선으로 초상화를 그리게 된 것이 바로 조선 말기 온건개화파의 상징인 운양 김윤식(金允植,1835 ~1922)이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김윤식을 만난 것은, 일부에서 친일파라고 비난을 받던 그가 이용직과 더불어 '독립청원서'를 일본 총독을 비롯한 각처에 제출해 한국의 독립을 촉구한 죄로 2년형을 살고 출옥한 직후이자, 김윤식이 죽기 한 달 전이다.


격변하는 조선 말기에 태어난 김윤식은 마흔 살에 대과에 합격해 여든다섯을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여러 높은 관직을 두루 거쳤다.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즉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을 지키면서도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하면서 개화를 하되 급격한 것은 피하자는 온건파였던 그는 수구파와 개화파 양쪽 모두에서 배척을 받았다. 좋게 말하면 외로운 지도자,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자였다.

- 재미학자 송영달 교수의 글


일본군은 물어보지도 않고 막 때리며 잡아가기 시작했고 특히 남녀 학생을 잔인하게 몰아붙였다. 여학생들은 긴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면서도 만세를 불렀다.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은 맞을 때마다 만세를 불렀으며, 경찰에게

“내 속에 만세가 꽉 차 있어서 나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체포된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었고, 금세 감옥은 만원이 되어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체포할 때도 잔인했지만 나중에 심문할 때는 더욱 잔인했다.


만세운동에서 제일 주목할 사실은 늙은 양반들의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합병 이후에 많은 양반 계급에게 후작, 자작, 공작 등의 작위를 하사했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그런 작위를 반환하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는데 김윤식과 이용직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작이라는 명예직을 반납했을 뿐 아니라,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1850~1924, 2대 조선총독)에게 독립청원서를 보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청원서가 틀림없이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 김윤식은 그 문서를 케이크 상자에 넣어 손자가 직접 총독에게 선물이라고 하면서 전달하도록시켰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코리아> 중


엘리자베스 키스는 운양 김윤식의 초상화 작업을 통해 노회한 학자, 망국의 관료, 폐가의 큰어른이 짊어진 슬픔을 가감없이 담아내었다.


"하도 울적하여서 새파란 하늘 높이 올라갔다네 / 굽어보니 공자님 가르침의 이 나라에 조석연기 나는 굴뚝 몇몇이런가 / 돌아가려도 한땐들 마음 편히 쉴 곳 없어 / 아아, 고래고래 울부짖으며 풀어헤친 머리로 훌쩍 내려왔다네

(欲乘飛艇上靑天/ 俯視齊州幾點烟/ 回棹終無休泊處/ 狂吟披髮下翩然)"

-운양 김윤식의 한시.


마치 운양이 남긴 한시 한편이 그대로 그림으로 바뀐듯하다. 말과 텍스트로 남겨진 선비에 대한 엇갈린 평가조차도 한폭의 수채화앞에선 잠시 접어두는 것이 예의일듯 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남긴 수많은 인물들은 또 어떤 나름의 사연들이 있었을까? 사뭇 더 궁금해진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은 인천시 문화재 활용정책 제1호 공간인 제물포구락부에서 지금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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