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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김란사

리디언스
2020-06-14
조회수 925

여성해방, 사회 개혁가, 독립운동가 김란사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게이오기주쿠에서 1년간 수학하였고 이후 1897년 11월 샌프란시스코 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 1900년 오하이오주 웨슬리안대 문과에 입학하여 1906년 문학사 학위를 받는다.’


구한말 혼란기 시절 일본과 미국 유학을 두루 거친 조선의 어느 엘리트에 관한 짧은 프로필이다놀라운 건 당시에 일본 유학뿐 아니라 미국 유학으로 학위까지 받은 이 인물이 이미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고 있었던 여성이었다는 점이다그녀의 이름은 김란사(金蘭史).






김란사는 1872년 9월 1일 평양에서 태어났다두 살 때 서울로 이주하여 자라다가 1893년 인천시 관리였던 하상기와 결혼한다

'김란사'라는 이름은 개신교를 접하면서 얻은 세례명 낸시(Nancy)를 음역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란사 기념사업회를 맡아 운영해 오고 있는 김란사 선생의 종손 '김용택'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는 잘못 전해진 것으로 애초부터 호적상 본명이 김란사라고 한다.


사진 : 김란사(金蘭史)로 명시된 호적 사본 (김용택씨 제공)




사진 : 김란사(金蘭史)로 명시된 게이오대학 입학명부 사본 (김용택씨 제공)




"지금 내인생과 조선의 운명이 꺼진 등불처럼 깜깜합니다. 제게 빛을 찾아주시지 않겠습니까?"


1894년 어느 날 이미 자녀까지 두게 된 김란사는 금혼이 학칙이었던 당시의 유일한 여성 근대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찾아가 미국인 선교사 출신 교장 룰루 프라이(L.E. Frey)’에게 조선을 꺼진 등불로 묘사하며 간곡히 호소한 끝에 입학을 허가 받았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1895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김란사는 게이오기주쿠 대학교(慶應義塾大學校)에 여성 최초이자 유일한 일본 유학생이라는 신분으로 1년간 수학하였다이후 귀국하여 서재필 박사의 강연을 듣고 감명 받아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결국 남편과 함께 1897년 미국에 입국드디어 1900년 오하이오주에 있는 미국 감리교 계통의 웨슬리안대에 입학하여 1906년 문학사 학위를 받는다조선 여성으로는 당연히 최초였다당시 웨슬리안대에는 고종의 5남인 의친왕 이강 역시 수학 중이었다이후 귀국하여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자로서, 또한 독립운동가로서 김란사가 일으킨 사업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모교 이화학당에서는 영어를상동교회 영어학교에서 는 기혼 여성들을 가르쳤고 진명과 숙명학교 설립에 자문 역할을 했는가 하면 이화학당에서는 육아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1916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감리회총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2년간 신학 공부를 하는 한편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독립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특히 1911년 당시 개화파의 지도자였던 윤치호와의 지상 논쟁은 대단한 화제를 불렀다윤치호가 영문선교지 ‘The Korea Mission Field'의 7월호에 신학교 학생들은 요리하는 법을 모른다바느질하는 법빨래하고 다림질하는 법도 모른다어떤 때엔 시어머니에게도 순종하지 않는다라고 기고하자 김란사는 같은 잡지 12월호를 통해 학교의 목적과 방향은 슬기로운 어머니충실한 아내깨우친 가정주부가 될 수 있는 신여성을 배출하는 것이다요리사나 간호원침모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의 그 어떤 글보다도 명쾌한 울림이 있다.

1919년 파리국제강화회담에 비밀 파송되기 위해 고종의 밀서를 품고 들른 베이징. 안타깝게도 김란사는 이곳에서 교포들과의 만찬을 가진 직후 갑자기 목숨을 잃게 된다시신이 검은색으로 변색된 증언으로 보아 자연사나 사고사가 아니라 계획적인 독살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김란사의 삶 전체를 여성 최초의 유학생이라는 수식어로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미흡하다가령 1907년부터 김란사가 조직하여 지도했던 이화학당 학생 자치단체인 이문회는 후일 유관순이 민족의식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민족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자각하고 이를 타개하려 했던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다그런 만큼 유관순의 민족저항 의식을 있게 한 김란사의 재조명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아울러 조선 여성의 현실을 꺼진 등불로 보고 본인이 스스로 등불이 되기를 자처했던 여성 교육자로서의 면모 역시 다각적인 연구와 재인식이 필요하다백여 년 전에 이러한 의식을 가진 멋진 여성이 이 땅에 존재했다는 여성계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엄청난 정신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제물포구락부의 스페셜 블렌드 <김란사>는 한국의 독립과 여성해방, 사회 개혁을 위해 헌신한 개인적 삶과는 달리 미국 유학시절에 즐겼을 것만 같은 마일드한 맛을 재현코자 했다. 무겁지 않은 바디감에 과일의 달콤함, 상큼한 산미 또한 좋다. 기본에 충실한 맛이라 쉽게 질리지 않는다. 






Tip : 김란사가 유학 시절 접했을 미국 커피의 역사 

유럽에 비해 비교적 연한 커피를 즐기는 미국 커피의 전통 역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에 기인한다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이후 미국인들이 차에서 커피로 눈을 돌렸다고는 하나 식민지 시절부터 오랫동안 마셔왔던 홍차 맛을 잊은 건 아니다그래서 진한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하여 홍차와 유사한 맛과 농도로 마셨는데 이런 스타일이 오늘날 진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연하게 만든 후 마시는 아메리카노의 효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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