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산 서남향 양지쪽에 항구를 굽어보며 쪼그리고 앉은 제물포구락부(現·仁川博物館)는 色은 연녹색이며, 까닭없이 복잡한 검정색 양철(西洋鐵)지붕이 어딘지 모르게 1920年代 승용자동차를 연상시키는 촌스럽고 어색한 모습이다.
仁川이나 前仁川博物館과 다름없는 좋은 터전이건만 값싼 건축의 탓인지 미관은 물론이거니와 쓸모조차 前者에는 적히 비길 바도 못된다. 건물은 이층이되, 비탈을 깎어 뭉기고 지은 까닭으로 아래층은 창고를 겸한 지하옥이고, 웃층은 바깥 돌 층계를 올라서 마치 단층집처럼 쓰도록 마련 되어 있는데...
-인천의 향토사학자 故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 중에서
1953년에 발행된 "개항과 양관역정"은 인천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분들에겐 필독서라고 하는데, 해방 후 이어 6.25 전쟁까지 지난한 시대를 살아온 선비의 눈에 비친 제물포구락부는 이처럼 너그럽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응봉산에 쏟아진 포탄에 의해 할퀸 상처도 있었을테고, 개항기에 희희낙락 조선 민중의 분노를 사고도 남았을 사교클럽으로써의 쓰라린 기록들도 있었으니 최성연 선생의 쓸쓸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비탈을 깍어 뭉기고 지은 까닭으로 아래층은 창고를 겸한 지하옥"이라며 최성연 선생은 한번 더 불편한 말씀을 남기시기도 했다.
그런데 인천시립박물관의 초대 관장으로 부임한 석남 이경성 선생은 바로 이 지하옥에서 해방 이후 혼란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정서적 공황상태에 있었던 인천 시민들에게 휴식과 다양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였는데, 방치된 이 공간에서 미군정에서 빌려온 영사기로 무료 영화 상영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다.
시대적 정서와 필요에 맞게 공간은 제 역할을 다 하면 되는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가치재생의 원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0년 3월 17일.
산뜻한 조명과 우드슬랩, 묵직한 사운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신박한 음향장비가 갖추어진 매력 넘치는 공간으로 변신을 마친 제물포구락부의 지하옥이 하루빨리 인천시민들께 소개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응봉산 서남향 양지쪽에 항구를 굽어보며 쪼그리고 앉은 제물포구락부(現·仁川博物館)는 色은 연녹색이며, 까닭없이 복잡한 검정색 양철(西洋鐵)지붕이 어딘지 모르게 1920年代 승용자동차를 연상시키는 촌스럽고 어색한 모습이다.
仁川이나 前仁川博物館과 다름없는 좋은 터전이건만 값싼 건축의 탓인지 미관은 물론이거니와 쓸모조차 前者에는 적히 비길 바도 못된다. 건물은 이층이되, 비탈을 깎어 뭉기고 지은 까닭으로 아래층은 창고를 겸한 지하옥이고, 웃층은 바깥 돌 층계를 올라서 마치 단층집처럼 쓰도록 마련 되어 있는데...
-인천의 향토사학자 故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 중에서
1953년에 발행된 "개항과 양관역정"은 인천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분들에겐 필독서라고 하는데, 해방 후 이어 6.25 전쟁까지 지난한 시대를 살아온 선비의 눈에 비친 제물포구락부는 이처럼 너그럽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응봉산에 쏟아진 포탄에 의해 할퀸 상처도 있었을테고, 개항기에 희희낙락 조선 민중의 분노를 사고도 남았을 사교클럽으로써의 쓰라린 기록들도 있었으니 최성연 선생의 쓸쓸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비탈을 깍어 뭉기고 지은 까닭으로 아래층은 창고를 겸한 지하옥"이라며 최성연 선생은 한번 더 불편한 말씀을 남기시기도 했다.
그런데 인천시립박물관의 초대 관장으로 부임한 석남 이경성 선생은 바로 이 지하옥에서 해방 이후 혼란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정서적 공황상태에 있었던 인천 시민들에게 휴식과 다양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였는데, 방치된 이 공간에서 미군정에서 빌려온 영사기로 무료 영화 상영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다.
시대적 정서와 필요에 맞게 공간은 제 역할을 다 하면 되는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가치재생의 원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0년 3월 17일.
산뜻한 조명과 우드슬랩, 묵직한 사운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신박한 음향장비가 갖추어진 매력 넘치는 공간으로 변신을 마친 제물포구락부의 지하옥이 하루빨리 인천시민들께 소개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