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구락부 스토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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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김기림(金起林)

리디언스
2020-12-21
조회수 810

김기림(金起林, 1907년 4월 5일 ~?)


1876년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7년뒤 1883년, 드디어 인천이 개항을 하게 된다. 개항 이래 인천은 서구 국가들을 향해 열린 실질적인 개항의 중심지답게 타 개항지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할 서구풍의 문물과 정취가 넘쳐흘렀다. 경인선이 개통되고 월미도 유원지와 만국공원이 조성되면서 수도였던 경성에서조차 유람을 오게 되는 이국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개항이 50여년이 지난 1930년대는 일제강점기이긴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근대문학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항구와 외국풍의 건물, 유원지와 공원, 기차, 인천항을 중심으로 세워진 많은 공장,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일상과 사연들이 많은 문학가들의 단골 소재지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김기림 (1907년 4월 5일 ~?)



특히 김소월과 정지용 박팔양 김기림 등 많은 시인들이 당시 인천을 소재로 인상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 중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걸로 알려진 김기림은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일본 유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인텔리답게 지적이면서 감성적인 시어를 세련되게 구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인천은 '길에서 - 제물포 풍경(1939)'이라는 시에서 엿볼 수 있다. '길에서 - 제물포 풍경’은 모두 여덟 개의 시가 연작으로 구성된 아주 독특한 형태다. 김기림 시의 출발이 바로 안티 프로레타리아 문학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그가 속해 있던 구인회 자체가 내용보다 형태를 세우며 주지주의와 서정시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던 성향의 작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 제물포 풍경(1939) (김기림)


<기차>

모닥불 붉음은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갑니다


<인천역>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성냥개비나

사공의 '포케트'에 있는 까닭에

바다의 비린내를 다물었습니다.

 

<조수>

오후 두 시...

머언 바다의 잔디밭에서

바람은 갑자기 잠을 깨어서는

휘파람을 불며불며

검은 조수의 떼를 모아가지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고독>

푸른 모래밭에 가빠져서

나는 물개와 같이 완전히 외롭다.

이마를 어루만지는 찬 달빛의 은혜조차

오히려 화가 난다.

 

<이방인>

낯익은 강아지처럼

발등을 핥는 바닷바람의 혓바닥이

말할 수 없이 사롭건만

나는 이 항구에 한 벗도 한 친척도 불룩한 지갑도 호적도 없는

거북이와 같이 징글한 한 이방인이다.

 

<밤 항구>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

어둠 속에 숨어서야

루비 사파이어 에머랄드...

그의 보석 바구니를 살그머니 뒤집니다.

 

<파선>

달이 있고 항구에 불빛이 멀고

축대 허리에 물결 소리 점잖건만

나는 도무지 시인의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빠이론'과 같이 짖을 수도 없고

갈매기와 같이 슬퍼질 수는 더욱 없어

상한 바위틈에서 파선과 같이 참담하다.

차라리 노점에서 임금(林檎)을 사서

와락와락 껍질을 벗긴다.

 

<대합실>

인천역 대합실의 조려운 '벤치'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저마다

해오라비와 같이 깨끗하오.

거리에 돌아가서 또다시 인간의 때가 묻을 때까지

너는 물고기처럼 순결하게 이 밤을 자거라


- 시집 태양의 풍속(소와다리) 중에서 전문 



시집 <태양의 풍속> (학예사, 1939)




연작 시 ‘길에서 - 제물포 풍경(1939)’에서 화자는 마치 대표적인 도시 산책자(散策者) 벤야민을 연상케하는 도시의 짧은 여행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류의 방황처럼 보이는 맹목적인 산책은 어쩌면 구인회 일원이었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처럼 당시 지식인들의 방황같은 유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주목받는 것은 빠이런, 사파이어, 메이드 인 아메리카, 포케트와 같은 영어구사와 고독, 이방인, 대합실 등과 같은 도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어에 있다. 물론 당시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지적 허영과 유치함이라는 평을 받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여하튼 당시 문인들, 특히 시인들에게 비쳐진 인천은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더니즘을 대표로 한 한국 근대문학에 도회적인 낭만과 이국풍의 정서, 서양에 대한 동경을 전해준 사실 자체가 근대 인천이 가진 자산이 아닐까.


김기림의 연작시 제물포풍경은 서울시가 인문투어 코스의 콘텐츠로 정성을 쏟고있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버금가는 수작이다. 개항장 근대문학관에만 박제되어 있는 구인회 멤버들의 흔적을 이제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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