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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리디언스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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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일제강점기 시절 ‘푸른 눈의 어머니’라 불리며 우리말을 하고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남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보리밥과 된장국을 즐겨 먹었던 외국인 간호사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한국 이름 서서평(徐舒平)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그는 걸인과 고아, 문둥이라며 온갖 차별과 혐오를 받아야 했던 나병 환자들을 위해 평생 헌신하여  성자같은 삶을 살았다.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은 1880년 9월 26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쉐핑이 3세일 때 어머니 안나는 미국으로 홀로 이민을 가고,  조부모에게 맡겨졌으나 9세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 극적으로 어머니를 만난 쉐핑은 뉴욕의 기독교 계열 고등학교와 성마가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여 간호사가 되었다. 이때 카톨릭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했으나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와의 불화로 또다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한다. 이후 유대인 요양소, 이탈리아 이민자 수용소 등에서 봉사활동과 브루클린주 이시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동료 선교사로부터 조선에서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길에 버려지고 있어 훈련된 전문간호사가 절실하다는 소리를 듣고 1912년,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 모집에 지원하여 간호선교사로 파송을 받게된다.

20여 일간의 긴 항해 끝에 드디어 한국에 도착한 쉐핑은 전남 광주선교부 제중원에서 간호사 양성과 기독교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그로부터 1934년 54세의 일기로 소천하기까지 광주 지역과 제주도, 추자도 등에서 간호사겸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걸인, 고아등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하여 ‘푸른 눈의 어머니’라는 별칭과 함께 ‘나환자의 어머니’라고도 불리었다. 1919년 서울 세브란스에서도 근무했던 당시에는 나병환자들과 함께 행진을 벌여 일제총독부가 소록도의 나병환자 시설을 허락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국유지인 전남 소록도가 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 3.1운동 와중에는 부상당한 한국인들의 치료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쉐핑은 서울 활동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쉐핑이 근무한 1920년의 광주 제중원.



1918년 세브란스 간호사 양성소 졸업 사진. 뒷줄 중간의 오른쪽이 쉐핑.



평생 독신으로 살며, 온전한 한국인으로 살고자 했던 쉐핑은 임금으로 받은 돈의 대부분을 그가 평생 돌보았던 빈민과 병자, 여성을 위해 사용했다. 월급으로 3원을 받았으나 그가 자신의 실제 사용한 금액은 단돈 10전으로 간신히 허기만을 면할 정도였다고 한다. 거기에 고아 14명을 입양하여 친자식으로 키우는가 하면 가난한 과부등을 집에 들여 가족처럼 함께 생활한 사람들만 모두 38명이었다고 한다.





광주 양림동에서는 여성의 자립을 위해 양잠업을 지도했으며, 뽕나무 식수와 얌잘 시설 건립을 위해 미국에 기금을 요청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여성의 자립을 위해 고사리 채취를 하기도 했다. 방문간호과 공중위생, 인신매매나 공창폐지운동에도 참가했다. 머리가 지저분한 여성을 보면 손수 빗질을 해 주고, 속옷이 보이거나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성이 있다면 옷매무새를 고쳐 주었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도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학교)와 ‘조선간호부회’(현 대한간호협회)도 세우는 등의 활동을 병행했다. 


1934년 엘리자베스 쉐핑이 운명할 때 소지했던 유품은 동전 7개(7전)와 강냉이 가루 두 홉, 거인을 위해 반을 잘라주었던 반장짜리 담요, 그리고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좌우명이 적힌 침대 머리맡의 쪽지 한장이었다. 폐병으로 알려진 질환과 과로가 직접적인 사인이나 영양실조 증세도 있었다고 하니 엘리자베스 쉐핑을 성자라 부르는 이유로 더 이상의 충분하다. 아울러 엘리자베스 쉐핑의 삶을 돌아보면 현재 열악한 상황 하에서도 코로나 19 환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간호사 여러분들의 노고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쉐핑의 장례식에는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치루어졌으며 그간 그로부터 도움을 받은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했다고 한다. 운구 역시 그가 설립한 이일학교의 학생들이 맡았고 수많은 여성들이 소복 차림으로 행렬을 따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생전의 유언에 따라 시신마저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되었다. 현재 광주광역시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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