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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백범 김구(白凡 金九)

리디언스
2021-12-20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다

백범 김구(白凡 金九)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년 8월 29일  ~ 1949년 6월 26일)



청년 백범 김구(白凡 金九)가 황해도 일대에서 의병활동 중 좀 더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계획하고 있었던 김구는 ‘치아포’라 부르는 황해도 지역 대동강가 포구의 한 여관에서 만난 일본인을 을미사변의 범인들 중 하나라 확신하여 살해한다. 그리고는 "국모를 살해한 원수를 갚는 국모보수(國母報讐) 목적으로 이 왜인을 죽이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金昌洙)"라고 쓴 포고문을 길거리 벽에 붙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김창수란 이름은 백범 김구로 개명하기 전 이름) 그러나 3개월 뒤 김구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해주옥(獄)을 거쳐 인천감리서로 이감된다. 원래 사건이 일어난 지역인 해주부에서 수감 생활을 해야 했으나 일본영사관 측의 강력한 요구로 인천감리서로 옮기게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수감되었던 인천 감리서 모습과 김구 (사진 제공 : 시사저널)



1896년 8월 31일 인천항재판소에서 첫 심문이 열릴 당시 조선인 관리와 일본인을 향한 당당함과 의연함이 전국에 알려질 정도로 화제였다. 이에 감명하여 강화도 출신 재력가 김주경(金周卿)을 비롯한 수많은 인천 사람들이 김구를 도와주고자 하였다. 

김구는 미결수 신분으로 독서에 열중하고 동료 수감자들을 가르치거나 소송을 위한 소장을 써주면서 독서에 열중했다. 독립신문은 이에 대해 1898년 2월 15일자 기사를 통해 에 인천항 감옥 죄수 중 20세 김창수가 죄인들을 공부시키니 "옥이 아니요 인천 감리서 학교라고들 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김구의 구명을 위해 전재산을 탕진한 김주경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망이 없자 탈옥을 결심하게 된다. 이를 위해 간수를 매수하고 아버지에게 무기의 일종인 '삼릉창'(三稜槍)을 건네 받아 땅굴을 파 조덕근, 양봉근, 김백석 등 장기수 4명과 함께 탈옥에 성공한다. 탈옥 당시 "누구든지 내 갈 길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결단을 내버릴 마음으로 쇠창을 손에 들고 정문인 삼문(三門)으로 바로 나갔다"고 백범 일지에 적을 정도로 김구의 기개는 대단했다.

인천 감리서를 탈출한 김구는 곧바로 용동 마루터기, 화개동(신흥동)마루터기, 문학동, 만수동, 부평을 거쳐 서울 양화진 나루터에 도착하였다. 이후 도피 생활을 하던 김구는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간 이후 임시정부 활동을 시작했다. 마침내 1945년 해방이 되었고 백범 김구는 그 해 12월 귀국하였다.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다."


귀국후 정세 안정에 주력한 김구는 이듬해 1946년 4월 14일 제일 먼저 인천을 방문하여 전국 지방순회를 시작한다. 이틀간에 걸쳐 자신이 투옥되었던 인천감리서와 노역 장소인 인천항 축항 건설 현장, 내리교회, 조일양조주식회사의 도원동공장과 송월동공장(소주를 만드는 공장)을 시찰한 후 송현동 인천조선차량주식회사와 학익동 조선기계 등을 방문한 후 귀경하였다. 그해 11월에는 두번째로 인천을 방문, 인천항에서 경비선을 타고 무의도 주민들을 만난 후 강화도를 방문하여 자신의 구명을 위해 헌신했던 강화사람들을 만났다.



1946년 11월 강화의 김주경 선생 집을 방문한 백범 김구 (사진 제공 : 인천일보) 



1946년 11월 강화도를 방문하여 지역 인사들과 함께 한 백범 김구 (사진 제공 : 경인일보)




김구 선생이 한해에 두번이나 인천을 방문했던 이유는 백범일지에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탈옥 과정에서 받았던 김주경의 도움과 자신을 탈출시키기 위해 무장투쟁을 계획하고 본명 김창수에서 김구로 이름을 개명해 준 백초(白樵) 유완무(柳完茂) 선생 등 인천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상 정립이 바로 인천에서 이루어졌다는 자각 또한 중요한 이유였다. 

그렇기에 인천에 도착한 첫날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다."라고 당당히 선언한 의미는 남다르다. 백범 김구에게는 인천과 인천 사람들이야말로 인천에서 감옥살이를 하면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 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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