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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백초(白樵) 유완무(柳完茂)

리디언스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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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를 도운 인천의 또다른 의인 

백초(白樵) 유완무(柳完茂)


1896년 백범 김구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인천 감리서에 투옥된다. 당시 김구를 도운 인천 출신 인사 중 대표적 인물이 김주경과 유완무다. 

강화도 의인이라 불리는 김주경은 김구 석방을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바치면서까지 조력하였으나 유학자 백초(白樵) 유완무(柳完茂)는 김주경이 시도한 법률적 해결책으로는 김구 출옥이 힘들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유생 13명을 모아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인천항 곳곳에 불을 질러 혼란한 상황을 틈 타 김구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비록 실행 전에 김구가 탈옥하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었으나 후일 김구가 기록한 백범일지에는 당시의 상황과 유완무가 김구의 이름을 김창수(金昌洙)에서 김구(金龜)라 고쳐줬고, 연하(蓮下)라는 호와 자는 연상(蓮上)으로 바꿔준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유완무의 간찰 (사진 : 인천신문)




유완무는 1861년 현재의 인천시 서구 시천동에서 태어났다. 시천동은 과거 내가 시작되는 곳이라 하여 ‘시시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천이 배출한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이 바로 이 지역 출신이며 유완무와 같은 집안 출신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유완무 선생은 두 아들과 한명의 딸을 두었고 기골이 장대하고 정의감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립운동에 관한 간헐적 행적 이외의 자세한 생애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독립협회등과 같은 이름이 알려진 단체와는 달리 유완무가 조직한 비밀결사대에 대한 실체는 현재까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방화를 하고 감옥을 폭파하는 등의 방법으로 김구를 탈옥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유생 단체와는 성격이 달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여요선’ 서문 필사본 (사진 : I-View)


유완무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국내활동에 어려움을 겪자 가족들과 함께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한다. 이전에 이미 애국계몽단체인 서북학회 등에 가입하여 간도 이주민의 실태와 간도를 둘러싼 청과의 영토 분쟁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또한 간도 일대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고 거주 동포 보호와 정부의 통치권 확대를 위해 발간된 1904년 간도감계(間島勘界) 관계 지리서인 『북여요선(北輿要選)』의 간행사업을 주도하여 서문을 쓰기도 했다. 이후에도 북간도에서 유완무의 민족운동은 다방면에서 전개됐다.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항일신문 간행사업에 참여하여 장지연(張志淵)을 영입하였고 교육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같은해 12월 상항지방회 특별회원(特別會員), 1909년 2월 국민회(國民會) 해삼위지방회(海參威地方會) 회원으로 활동하던 유완무는 1907년 경 러시아 연해주로 옮겨와 무장독립운동을 하던 이범윤(李範允)에 의해 피살당한다. 이범윤은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민족운동단체 내부에서 강경한 무력투쟁을 주장한 급진파의 수장으로서 상대적으로 투쟁 노선을 달리 했던 계몽파의 분파 갈등의 와중에 계몽파의 주요 인물 유완무를 제거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범윤이 직접 살해했는지, 아니면 자객을 동원해 암살을 지시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완무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유완무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관여했다면 왕권 복원을 주장하며 강력한 무장투쟁을 주장한 이범윤과 이데올로기 논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당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극렬한 이념투쟁이 있었던 터라 꽤 설득력이 높은 주장이다.

또 안창호 선생이 미주지역에서 발행했던 신한민보(新韓民報)에 따르면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 지방회 설립에 블라디보스토크 신입회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완무의 공립협회 가입을 보도한 신한민보 (사진 : 경인일보)




하지만 유완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1세기가 훌쩍 넘은 2007년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그의 민족운동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신청이 접수되었고, 2009년 드디어 국가보훈처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은 아직도 국가보훈처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서 활동한 부분에 대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떠나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 유완무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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