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구락부 스토리 아카이브

재즈,어번스케치,3D모델링,여행가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문학 - 18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 풍경

리디언스
2021-04-10
조회수 60


18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 풍경




18세기 영국 커피하우스를 묘사한 그림 (사진 :drinkingcup.net)




유럽에서 커피 하우스가 제일 먼저 등장한 곳은 당연히 커피를 수입하고 하역하여 이를 전 유럽에 배급했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등 항구 도시였다. 그 시기는 1645년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점차 유럽 대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커피 하우스들이 생겨났다. 특히 1700년대  초반 런던에는 커피 하우스가 대략 약 2,000 ~3000 개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의 런던 인구가 대략 60만 정도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 수치는 약간의 과장이 된 듯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시기 유럽의 전 지역에서 커피는 이미 더 이상 낯선 동방의 신비한 음료를 뛰어넘어 서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또 커피 하우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이전까지의 커피 소비 형태가 주로 상류층을 중심으로 특별히 한정된 곳에서만 이루어진 것에 비해 언제 어디서나 커피를 마셔야만 한다는 필수 기호품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커피 하우스에 단순한 신변 잡담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도 활용하기도 했는데 근대적인 신문이 생기기 이전 시대였기 때문에 커피 하우스가 일종의 정보 교환처로서의 기능까지도 담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 중에서 해상 선박 운송 종사자들이 주로 출입했던 커피 하우스 ‘로이드’에서는 자연스레 각종 선박 입출항 정보를 취급하게 되면서 유서 깊은 로이드 보험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런던의 커피 하우스는 정치 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의 시발이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근대 이성 중심의 유럽 사회가 이후 세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은 현재 우리의 삶과도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관점을 가질 수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 

당시 영국은 스페인, 포르투갈은 물론 네덜란드가 장악하고 있던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고 아직은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으나 신흥 부르주아 세력이 점차 힘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영향을 받아 문예적으로도 큰 진전을 이루던 시기였다. 게다가 몇 번의 정치 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의회 민주주의 형태를 굳건히 다져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커피 하우스로 모여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특이한 건 사회적인 지위와 배경이 다른 계층들 간에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누구든 1페니만 주면 커피를 주문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신문을 읽는 등의 개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여 ‘1페니 대학(penny universities)’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커피하우스를 연구한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여태까지 의문시되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에 대하여 누구나 참여하여 대화할 수 있는, 열려있는 장소라는 갓을 근대 영국 런던의 커피 하우스의 특징으로 꼽았다. 이는 현대 참여 민주주의 내지는 여론 민주주의의 원형을 제공했다는 점과 아이작 뉴턴 등에 의한 과학적 토론의 내용들이 바로 영국 산업 혁명과 근대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0 0

연락처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

전화번호:032-765-0261

이메일:jemulpoclub@gmail.com

찾아오시는길


#제물포구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