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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프란츠 에케르트 (Franz von Eckert 1852~1916)

리디언스
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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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국가 작곡자이자 서양 음악 전파자 

프란츠 에케르트 (Franz von Eckert 1852~1916)


한국에 서양음악이 처음 전래된 시기는 언제일까? 막연하게마나 구한말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으나 구체적인 시기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에 서양음악이 최초로 전래된 시기는 공식적으로 1900년 대한제국 군악대가 설치된 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조롭게 군악대가 설치된 것은 아니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일본군을 견제할 러시아군의 파병 요청 특사였던 ‘민영환’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거행된 니콜라이 2세의 황제 대관식에서 러시아 군악대의 연주를 본 후 고종에게 군악대 창설을 제안했고, 우여곡절 끝에 1900년 12월19일 대한제국 군악대가 설치됐다. 공식적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프란츠 에케르트(Franz von Eckert)와 대한제국 애국가 표지 (사진 : 문화유산신문)




군악대를 지휘할 군악대장으로는 당시 일본에서 활동중이었던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Franz von Eckert)’에게 맡기기로 하고 서울 주재 독일 영사 ‘하인리히 바이페르트(Heinrich Weipert)’에게 요청했다. 에케르트는 이전(1883)에 이미 독일 함대 헤르타(Hertha)의 독일 해군 음악단 대표로 한차례 방한했었고 당시 일본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에케르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1899년 독일로 돌아가 프로이센 왕립 악단의 단장으로 잠시 근무하였다. 건강이 양호해지자 1901년 2월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고 그해 4월5일 군악대 교사로 3년간 근무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입국 당시 에케르트는 서양 음악을 교육하거나 50인조 군악대를 구성할 수 있는 분량의 악기를 함께 들여왔다. 이로써 비록 군악대이긴 하나 진정한 서양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이 탄생한 것은 물론,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서양음악이 전수되기 시작하였다.

프란츠 에케르트는 1852년 프로이센 슐레지엔 주 발덴부르크(Waldenburg)의 노이로데(Neurode, Nowa Ruda)에서 법원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특히 음악에 재능이 뛰어나 지금의 폴란드 브로츠와프인 브레슬라우와 드레스덴의 예술학교를 다녔다. 그 후 군악대에 들어가 빌헬름스하펜 해군 군악지휘자로 근무하다 일본 파견 음악가의 자격으로 1879년 일본에 오게 되었다. 당시 일본 역시 서양 음악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으므로 에케르트는 서양 악기 보급은 물론  서양 음악 체계를 일본 음악가들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일본 황궁의 고전음악부에서 일했으며 도야마의 군악대에서 독일 군악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운영하며 일본 황실 가족들을 위한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도 했다. 한편 1880년 에케르트는 일본의 해군으로부터 일본의 국가(國歌)를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는 만들기도 했다. 




대한제국 양악대 1906년 모습 (사진 : 더프리뷰)



대한제국 애국가 표지 (사진 : 연합뉴스)




에케르트는 한국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24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총 70명의 연주인을 훈련시켰다. 이들을 데리고 매주 목요일마다 파고다 공원에서도 연주를 하였다. 이후 대한제국의 정부로 부터 정식 국가를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1902년 7월 완료한 후 12월 고종으로부터 태극 3등급 훈장을 받게 된다. 이 대한제국의 국가는 1910년의 한일 합방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연주되었다. 그가 작곡한 대한제국의 애국가는 1910년 한일합방으로 금지곡이 되었으나 상해임시정부에서는 이곡을 계속해서 애국가로 불렀다. 또 그가 조직한 군악대는 창설된 후 황실의 각종 행사에 동원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국과의 조약 체결이나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연주를 했다.

당시 군악대의 연주에 대한 평가는 <런던타임스>에서 "한국의 군악대는 설립한 지 불과 몇 해 되지 않았으나 그 기술은 영국의 빅토리아 악대나 미국의 수사악대보다 못하지 않다"고 호평할 만큼 수준 이상의 연주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러일전쟁 직전 일본대리공사 하야시로부터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을 비교했을 때 누가 음악의 천재 기질이 있느냐"고 질문을 받은 러시아의 바울 공사는 "조선 사람은 동양의 제일 이라 일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1907년 8월 일제에 의한 군대 해산과 함께 군악대 역시도 해산하게 된다. 그렇게  해산된 군악대는 그해 9월 101명의 황실음악대로 재조직돼 1910년 한일합방 이후까지 존속하다가 고종이 사망한 1919년 9월 완전 해산되었다. 이후 ‘경성양악대(京城洋樂隊)’라는 이름의 민간단체로 재탄생, 1920년 6월부터 시민을 위한 연주회로  매주 1회 탑골공원에서 정기 연주회를 가졌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Seoul Philharmonic Orchestra)’의 모체가 바로 한국 최초의 민간오케스트라라 할 수 있는 경성양악대다. 한국 서양 음악의 뿌리가 바로 프란츠 에케르트가 조직한 군악대인 것이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의 프란츠 에카르트 묘소 (사진 : 해외문화홍보원)




1916년 제1차대전의 영향과 자신의 건강문제로 군악대 책임자 자리를 내놓자마자 에케르트는 그해 8월 서울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의 장례식에는 그가 직접 만든 연주단이 장례음악을 연주하였고 위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한편 에케르트는 중병을 앓으면서도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음악지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인이었던 사위는 서울을 떠나 프랑스군으로, 아들은 독일군으로 참전하였다고 한다. 외손녀인 임마꿀라따(Sr. Immaculata Martel)는 1987년 7월까지 대구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수녀로 여생을 보내다가 81세의 일기로 1988년 12월 선종하였다. 프란츠 에카르트 일가는 3대에 걸쳐 한국에 살면서 역사와 전쟁의 비애를 고스란이 겪은 셈이다. 한국에 근대 서양 음악을 처음으로 보급하고 한국 최초의 국가를 만든 음악가의  생애치고는 왠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일 양국의 최초의 국가를 프란츠 에카르트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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