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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문학 - 페치카에서 끓여낸 커피, 그리고 제물포구락부

리디언스
2021-03-12
조회수 89

페치카에서 끓여낸  커피, 그리고 제물포구락부



도스토예프스키 (1821 ~ 1881) 사진출처 : 위키백과




카프카와 카뮈, 그리고 헤세와 헤밍웨이 등 무수히 많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문학적 바탕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자리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문호 톨스토이 조차 자신의 임종 직전까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곁에 두었을 정도로 도스토예프스키를 흠모했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대문호로서의 명성을 나눠 가졌으나 둘의 작품 세계와 삶은 사뭇 달랐습니다. 백작 가문 출신으로 평생 탄탄하고 안정된 삶의 행로를 유지한 톨스토이에 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도박과 그로 인한 빈곤, 간질과 유배라는 질곡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특히 봉건적 사회 경제 구조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며 나아가는 인간의 투쟁을 주로 그렸습니다. 

작품의 규모 역시 단번에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장편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제적 상황과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원고료는 글자 수에 의거하여 책정 되었기에 순전히 더 많은 원고료를 받기 위해 작품의 규모를 늘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할 만큼 작품들 곳곳에 돈 이야기가 나오니 전혀 터무니없는 낭설은 아닐 겁니다. 오죽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조차 3천 루블을 위한 소설이라 일컬어질까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3 (도스토예프스키, 민음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탐욕스런 난봉꾼 아버지 표도르와 그의 첫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장남 드미트리, 그의 배다른 형제인 둘째 이반과 예비 수도사인 셋째 알료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들이자 하인으로 일하는 사생아 스메르쟈코프가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장대한 작품 규모에 비해 작품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루셴카라는 여인을 두고 표도르와 드미트리가 갈등하던 중 어느날 표도르가 살해된 채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범인은 ‘신이 만든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다’라는 무신론자 이반의 말에 세뇌당한 스메르쟈코프입니다. 그러나 스메르쟈코프는 간질 발작으로 혐의를 벗어나게 됩니다. 대신에 장남 드미트리가 체포되어 20년 형을 언도 받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건은 돈 때문에 궁지에 몰린 드미트리의 부탁으로 동생 알료샤가 아버지에게 3천 루블을 얻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우리와 어울리자, 앉아서 커피를 마시렴, 커피라면 기름기 없는 재계용 음식이 아니냐, 더욱이 뜨겁고 맛있기까지 한 커피란다! 코냑은 권하지 않으마, 너는 도를 ㅈ닦은 몸이 아니냐, 그래도 좀 마셔 보겠니, 마셔 볼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 민음사)


알로샤가 아버지의 집에 들어서자 표도르가 알로샤를 환대하며 코냑 대신 커피를 권하는 장면입니다. 곧이어 알로샤가 술 대신 커피를 마시겠다고 하자 표도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요 예쁜 것! 장하다! 얘가 커피를 마시겠다는구나. 좀 데워야 되지 않을까? 안 그래도 되겠구나, 지금도 끓고 있으니 말이다. 훌륭한 커피란다. 스메르쟈코프가 만들었거든. 커피와 만두라면 우리 스메르쟈코프가 예술가 수준이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 민음사)


표도르는 나중에 자신의 목숨을 빼앗게 될 스메르쟈코프가 만든 커피에 대해 최상의 평가를 합니다. 평생 술만 진탕 마셨으리라 짐작했던 표도르가 커피의 맛에 대해 언급한 건 매우 의외이긴 합니다. 하지만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세기 중반이니 러시아에서도 커피가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했을법 합니다. 비록 몰락의 징후가 보이긴 하나 아직 지주 노릇을 하고 있던 표도르 역시 커피를 자주 접했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깁니다. 커피를 내 온 스메르쟈코프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었을까요? 당시에는 미처 핸드드립과 같은 푸어오버 방식이 보편화되기 전이었고 더구나 에스프레소 머신은 개발되기 전이었으므로 뜨거운 물을 이용해 커피를 우려내는 단순한 방식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물을 끓이기 위해 ‘페치카(pechka)’를 사용하지는 않았을까요? 

페치카는 실내의 벽면에 돌이나 벽돌 또는 진흙으로 만들어 설치하는 난방, 취사를 겸하는 러시아 전통의 난로입니다. 장작이나 석탄 등을 연료로 생긴 열로 취사를 하거나 데운 공기를 굴뚝으로 통과시켜 난방이 되게 하는 구조입니다. 15세기 즈음에 이미 등장했으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시대인 19세기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장치였습니다. 



제물포구락부 1층에 남아 있는 페치카의 흔적




제물포구락부 1층 전경



사진 속 제물포구락부 1층 석벽 공간 한 쪽에 설치되어 있는 흰색 구조물은 바로 120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페치카의 흔적입니다. 제물포구락부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비슷한 시기의 러시아 출신 건축가 세레진 사바찐(Afanasy Ivanovich Seredin-Sabatin 1860~1921)에 의해 건립된 벽돌조 2층 건물입니다. 주로 서양인이었던 외국인들의 사교 클럽 전용 건물로 건축되었던만큼 난방과 취사에 필요한  페치카 역시 당연히 필요했을 겁니다. 2020년 11월 리모델링 작업 당시엔 페치카의 열기가 벽면을 타고 순환되었을 연통 구조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01년 제물포구락부가 건축될 당시 한국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서양인과 서구 문물이 들어왔던 곳은 바로 인천이었습니다. 제물포구락부가 바로 그 중심에 있던 역사적 공간이었음을 감안하면 커피도 어렵지 않게 마실 수 있었을 겁니다. 

스메르쟈코프가 만든 커피를 표도르와 알로샤가 마시는 장면이 흥미로운만큼 페치카의 온기와 막 끓여낸 커피가 있었던 제물포구락부의 풍경 역시 상상만 해도 멋집니다. 제물포구락부와 러시아 문학 그리고 페치카와 커피가 연결되어 하나의 멋진 서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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