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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안드레아스 에카르트(Ludwig Otto Andreas Eckardt 1884~1974)

리디언스
2021-03-12

가톨릭 신부이자 한국학의 선구자

안드레아스 에카르트(Ludwig Otto Andreas Eckardt 1884~1974)

1909년에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된 독일 성 베네딕도회 신부이자 한국학자인 안드레아스 에카르트(Ludwig Otto Andreas Eckardt 1884~1974)는 원래 신부로 한국에 왔으나 해외에 한국학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선구적 역할과 동시에 서구의 학문을 한국에 도입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경성제국대학에서 동양문화, 라틴어와 독일어 교수로 재임했고 뮌헨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처음 가르친 선구자였다. 또한 옥낙안(玉樂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하여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안드레아스 에카르트(Ludwig Otto Andreas Eckardt 1884~1974) 사진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안드레아스 에카르트(Ludwig Otto Andreas Eckardt)는 1884년 9월 21일 독일 뮌헨에서 화가이자 교사인 아버지 요한 니콜라스 에카르트와 어머니 바바라 사이에 태어났다. 뮌헨대학에서 철학과 종교학, 미술사, 민속학을 공부한 후 1905년에 베네딕트수도원에 입교, 1909년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1909년 12월 사제의 신분으로 제물포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에카르트는 애초의 방한 목적과는 달리  한국의 글과 문화탐구에 열중하게 되었다. 한글을 근본적으로 공부하기하기 위해 서울의 보통학교와 중학교에서 일반 학생들과 함께 2년 동안 수학하여 한글을 완전히 습득할 수 있었다. 말을 타고 다니며 수원 근처의 서당을 찾아가 천자문과 소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이외에 사서오경과 노자의 도덕경을 배웠으며 나중에 독일어로 도덕경을 번역 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 새로 설립된 베네딕트수도원에서 독일식 직업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과서를 만들어 지리, 물리 등 서양 학문을 가르쳤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자 그리스어, 라틴어, 미술사를 강의했다. 1928년에 독일로 귀국 후 1930년 Das Schulvesen in Korea(한국의 학교 제도)라는 논문으로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국제 교육연구소의 동아시아 담당 연구원겸 소장대리가 되었고 1933년 나치스에 의해 연구소가 폐쇄되자 뮌헨으로 다시 돌아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지속적으로 한국과 관계를 이어온 그는 1974년 1월 3일 독일 투칭(Tutzing)에서 사망했다. 현재 한독협회에서는 그의 이름을 빌어 한국과 독일 교류에 이바지한 독일인에게 수요하는 메달을 '에카르트메달'로 제정하여 양국 교류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고 있다.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 (1929) 사진출처 : 서울신문




에카르트는 20여 년간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학 분야 중에서도 특히 한국 미술을 주로 연구하여 총 500여 점의 한국미술 도판이 수록되어 있는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 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 (1929)를 펴냈다. 이 책은 서구의 언어로 한국 미술을 소개한 최초의 한국미술통사다.  <History of Korea Art>라는 이름의 영문판으로 발행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가 동아시아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 빈 박람회에서 접한 일본 공예품 전시를 통해서였다. 당시에는 ‘조선 미술은 존재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질 정도로 조선 미술에 입문할 수 있는 책이 적었다.


이어서 한국미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과거 조선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것들이 평균적으로 세련된 심미적 감각을 증명하고 있으며, 절제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동아시아 미술 분야에서 직접 조선미술 발달과정의 한 특징이 된다. (…) 때때로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많은 중국의 예술형식이나, 감정에 차 있거나 형식이 꽉 짜여진 일본의 미술과는 달리, 조선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가장 고전적(古典的)이라고 할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 결국 조선은 항상 아름다움에 대해 자연스러운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룰 때 그것을 고전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에카르트는 이 책에서 한국 미술의 특징을 ‘놀라운 간결성’이라고 주장하며 과장과 왜곡이 많은 중국의 예술이나 형식이 꽉 짜인 일본 미술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가장 고전적이라고 할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는 한국미술의 특징을 “과감한 추진력, 고전적인 선의 움직임, 단순하고 겸허한 형식언어, 그리스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정적과 절도”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에카르트는 고고학적 발굴에도 참여하여 경주 석굴암 복원 작업에도 일조하였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한국교향악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또한 알려진 바로는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를 수집했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의 활동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오동나무 아래서 (1951) 사진출처 : 코베이옥션




인삼뿌리 (1955) 사진출처 : 코베이옥션




조선, 지극히 아름다운 나라 (1950) 사진출처 : 코베이옥션



이밖에 문학 작품으로 ‘20년간 체류해서 모은 한국의 전설, 동화, 우화’ 라는 부제를 달은 <오동나무 아래서>(Unter dem Odongbaum,1951)와 <인삼뿌리>(Die Ginsengwurzel, 1955) 등을 펴 내는 등 한국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특히 1950년에 발간한 <조선, 지극히 아름다운 나라>(Wie ich Korea erlebte)는 에카르트가 20년간의 한국 생활을 돌아보며 쓴 회고록이자 체험기다. 총 11장으로 구성되었고 뛰어난 관찰력으로 인해 한국인의 의식주와 풍속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한국에 서구의 학문을 도입한 교육자이자 가톨릭을 선교한 사제였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한 학자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 이방인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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