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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문학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리디언스
2020-11-16
조회수 9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서 독자들 사이에는 변하지 않는 법칙 하나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 법칙이란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를 읽은 사람의 절반만이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구입하고 이들 중에 또 절반만이 3편 ‘게르망트 쪽’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3편을 모두 읽은 독자들은 나머지 4, 5, 6, 7편을 구입하여 읽어낸다는 이른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법칙'이다. 그만큼 프루스트는 넘기 어려운 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겨우 1편의 ‘스완네 집 쪽으로’의 초반 화자가 따뜻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 본 후 과거를 회상하는 그 유명한 대목만을 이야기 한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화자는 어느 날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간 순간 놀라운 경험을 한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민음사 86~87p)


프루스트를 생각만 해도 홍차와 마들렌이 떠오른다는 이가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대목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왠지 커피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별로 없거나 설사 있다 해도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커피에 관한 대목이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00년대 말 ~ 1900년대 초 프랑스에서는 커피가 이미 상당히 대중화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더운물이나 블랙커피를 부탁할 때면, 정말로 펄펄 끓는 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아주머니 집 하녀들 가운데 프랑수아즈뿐이었다. (민음사 103p)




화자의 엄마는 하녀에게 특별히 ‘블랙커피’를 부탁했다. 아마도 추측컨대 별다른 주문 없이 그냥 ‘커피’라고 말했다면 하녀는 ‘블랙커피’가 아닌 보통 ‘커피’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 보통 커피는 과연 어떤 커피였을까?

당시 프랑스에서 소비되었던 커피는 주로 그들의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산(産)이었다. 서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의 커피 산지는 일반적으로 커피의 풍미가 좋은 ‘아라비카’ 품종보다는 상대적으로 풍미가 적고 쓴맛이 강한 ‘로부스타’ 종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 프랑스에서는 커피의 쓴 맛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우유나 설탕을 섞어 마셨다. 그래서 화자의 엄마는 그냥 커피 즉, 우유를 섞은 커피가 아니라 아무것도 섞지 않은 ‘블랙커피’를 특별히 부탁한 것이다.





한편 프랑스 저널리스트 아녜스 푸아리에(Agnes Poirier)가 쓴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노시내 역, 마티)에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리처드 라이트는 파리에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벌써 문화 충격 때문에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다. 그는 실제적 차이점과 별로 실제적이지 않은 차이점을 매일 노트에 정리했다. 


손잡이가 문의 중앙에 달려 있다! 샌드위치는 길쭉한 빵 두 쪽 사이에 거칠고 두툼한 고기 조각을 끼운다. 커피에는 크림 대신 뜨거운 우유가 들어간다.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마티 183p)


1946년 5월 파리를 동경했던 미국의 흑인 작가 ‘리처드 라이트’가 나치로부터 갓 해방된 프랑스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에서 시몬 보부아르를 만나는 날을 묘사한 부분이다. 책에서 묘사된 뜨거운 우유가 들어간 이 커피는 바로 ‘카페오레(Café au Lait)’라는 메뉴다. 에스프레소에 고운 거품 우유를 넣는 ‘카페라떼(Cafe Latte)’와는 명칭이 유사하나 실제 레시피는 완전히 다른 메뉴다. 카페오레는 보통 에스프레소가 아닌 프렌치프레스나 핸드드립으로 진하게 내린 커피에 거품을 낸 우유가 아닌 단지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부어 만든다.




아무튼, 리처드 라이트에게는 문의 손잡이 위치나 샌드위치 만듦새의 차이만큼이나 커피에 뜨거운 우유를 섞은 것 역시 ‘실제적 차이점’이었다. 말하자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 엄마에게는 블랙커피가 특별한 커피인 것처럼 리처드 라이트한테는 뜨거운 우유를 부어 마시는 파리의 카페오레가 매우 생소한 커피였고, 문화 충격으로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다. 

커피에 관한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늘 에스프레소를 처음 맛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1992년 첫 유럽 출장길이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이름 모를 카페였다. 그때까지는 마셔왔던 인스턴트 커피나 일명 ‘커피 메이커’로 불리던 가정용 기구로 추출한 커피와는 차원이 달랐던 맛이었다. 첫 해외 출장임에도 무덤덤했던 일정을 보내다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지구 반대편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걸 자각했던,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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