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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아손 그렙스트(A:son Grepst)

리디언스
2020-10-17
조회수 239



아손 그렙스트(A:son Grepst)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은 한국과 만주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이다.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여순군항을 기습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 정박중인 러시아함 두 척을 침몰시킴으로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2년간에 걸친 이 전쟁의 승패로 러시아는 동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의 상실은 물론 내부 분열을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미국과도 견줄만한 세력으로의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은 두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음에도 자국내에서 총포를 쏘며 도발하는 두 나라를 제어할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비극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 <커피로 읽는 인물>편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 러일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1904년 12월 24일 입국한 후부터 다음해 1월말 제물포항을 통해 출국하기까지 한국에서 체험한 사실들을 기록한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A:son Grepst)와 그가 쓴 책 <I Korea>, 그리고 국내 번역본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책과함께)이다.









1904년 일본에 온 신문기자 아손 그렙스트가 러일전쟁을 집중 취재하고자 했으나 일본 정부에 의해 거절당한 후 이를 만회코자 양말을 취급하는 무역상으로 신분을 위장, 1904년 12월 부산을 통하여 한국에 입국한다. <I Korea>는 짧았던 체류 기간임에도 한국에 대한 놀라우리만치 세세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우선, 아손의 책 <I Korea>의 발견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자인 ‘김상열’ 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자신이 스웬덴 유학중 스톡홀름 도서관 사서로 있던 교포와 점심 식사 중 그가  소장하고 있던 <I Korea>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대여해 준다는 말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책을 받아 들고 펼치는 순간 장정과 책의 분량, 무엇보다도 140장이나 되는 진귀한 사진을 보고는 그저 그런 책이 아님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후 번역자는 왕립 도서관, 출판사 등을 수소문 했으나 남아 있는 책은 더 이상 찾지 못했다. 대부분 일본이나 대만의 풍물지를 남긴 자취만 있을 뿐 <I Korea>는 번역자가 접한 책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저자 아손 그렙스트에 대한 정보 또한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전형적인 몽고 인상의 그들은 온화하고 무관심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피부색은 연노랑에서 검붉은 구리색까지 다양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 좋다는 인상을 주었고, 회색이나 파란 기모노 차림으로 영국식 여행 모자를 쓰고 그들 사이에 끼여 있는 일본인들보다 훨씬 더 호감을 주었다. 코리아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다. 또한 신체가 잘 발달되었고 균형이 잡혀 있었다. 태도는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었다. 똑바로 치켜올린 얼굴은 거침이 없이 당당하였다. 걸음걸이는 힘차 보였으며 의식적으로 점잔을 빼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몸놀림은 일본인의 특징인 벌벌 기는 비굴함과 과장된 예의 차리기와는 상강히 거리가 멀었다.”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p. 32)


부산항에 첫 발을 내 디딘 후 접한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이후의 기록들이 이런 류의 칭찬일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당시 한국을 묘사한 서양인들의 보편적인 시각이 그렇듯 일견 오류와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보인다. 한국의 정치 사회 풍습 등 거의 전반에 대하여 대체로 과장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코레아의 시골에서는 다리를 튼튼하게 짓지는 않는다. 좁은데다가 난간조차 없다 (중략) 그러나 보수공사라고 해야 보잘것 없이 아무렇게나 하기 때문에 비만 한차례 쏟아져도 무너지기 일쑤다.” (p. 50~51)




심지어 일본군 장교가 말하는 한국민에 대한 시각을 사실인양 묘사하기도 했다.

“장래성이 없고 중국인보다 더 엉망인 민족입니다.(중략) 더 나쁜 건 잠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자신의 다리로 일어나기를 원치 않으며 독립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p. 52)









그런가하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서는 기차를 처음 보고 놀라 혼비백산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조롱 섞인 어조로 묘사하기도 했다. 또 카메라를 낯설어 하는 군중들이 미신적인 생각에 줄행랑을 친 것 같다는 선입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많은 부분에서 민망함을 넘어 화를 삭히며 읽어야 할 만큼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이 보인다. 

아손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고종 황제부터 도시의 서민과 시골의 가난한 농민들, 노비, 상인, 무당, 기생, 승려, 관리 등 거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결혼식, 장례식은 물론 독립문에서 있었던 정치집회까지 묘사하였다. 심지어 민담과 우화, 저잣거리에 떠도는 가십까지도  기록했다. 고종의 얼굴은 개성이 없었다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태자는 아주 못생긴 얼굴이었다고까지 적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봐서 인상이 찡그린 돼지의 면상을 보는 것 같았고, 무슨 악독한 괴물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p. 218~219)


당시 러일전쟁의 와중인데다가 국내외 정세로 한창 기울어가는 대한제국 황실을 생각해 봤을 때 황제와 태자의 얼굴이 여유있게 보일리는 없었을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외모 묘사에는 아손 자신의 약자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폄훼 시각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럼에도 아손의 책이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짧은 체류 기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많은 분량의 기록과 사진을 남겼다는 것이다. 특히 기자 출신답게 주요 풍습과 인물을 담은 사진들은 구한말 조선을 연구하는데 매우 소중한 사료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아손은 1905년 1월 일본 경찰 감시망에 걸려 결국 애초의 한국 입국 목적이었던 러일전쟁 취재를 하지 못하고 제물포를 통해 강제 출국 당하고 만다. 그가 출국한 직후 곧바로 러일전쟁이 본격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해 11월 굴욕의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근대 한국의 비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한달여 한국 여행을 마치고 떠나며 그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생긴 듯 사뭇 철학적인 소회를 담은 글로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밤 11시 30분경에 시이아들러 호는 닻을 올리고 제물포항을 떠났다. 나는 선장에 뱃전에 나란히 서서 점점 스러져가는 육지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날이 어두어지면서 시커먼 산의 윤곽이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칠흙같은 어둠에 싸여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침내 작별의 순간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이 나라 사람들과 사물을 알고 사귀었지만 작별은 아쉽고 서글펐다. 인생을 살면서 나는 이와 비슷한 세상 이치에 주목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인연을 맺게 되는 사람이나 사물은 언젠가는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정반대의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짧게 인연을 맺은 사람과 사물이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줄 때도 있다.” (p. 374)





제물포구락부의 스페셜 블렌드  <아손 그렙스트>는 짧게 인연을 맺은 사람과 사물이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줄 때도 있다고 한 그의 말처럼 강렬한 애프터 테이스트가 특징이다. 풀바디의 질감에 달콤한 말린 과일의 풍미와 베리류의 산미도 풍부하다. 마시는 과정도 즐겁지만 마시고 난 후 풍미가 더욱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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