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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읽는커피 - 욕망에 매어진 세가지 밧줄

퓌시스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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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매어진 세가지 밧줄 (오뒷세이아와 모비딕)


전철로 이동할 때의 무료함은 주로 독서로 해소하는 편이다. 이런 경우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읽다가 잠시 덮어도 되는 책이 좋은데 요즘 읽고 있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바로 그런 책이다.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가 10년간의 지난한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귀환하는 여정을, 모비딕은 흰고래와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장대한 이야기다. 





첫 번째 책 오뒷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뒷세우스는 수많은 역경을 당하며 떠돌게 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바람에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귀향하는 바닷길에는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바위섬이 있다. 요정 ‘세이렌(Seiren)’이 살고 있는 섬이다.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반신은 새의 형상을 가진 세이렌은 바위섬 근처를 항해하는 선원들을 마력의 노래로 유혹한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정신과 육체를 모두 빼앗는다. 뮤즈 멜포메네와 강의 신 아켈로스의 딸이기도 하고 혹은 아켈로스와 또 다른 뮤즈 테르프시코레가 낳은 딸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은 선원은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마침내 그녀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오디세우스 역시 이곳을 지나며 세이렌의 위험에 맞닥뜨리게 되지만 다행히도 마녀 키르케의 조언을 듣게 된다.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단단히 봉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이렌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오뒷세우스는 배의 돛대에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게 한 후 지나가고자 한다. 물론 오뒷세우스는 세이렌의 유혹에 못 이겨 밧줄을 풀어달라며 절규하지만 귀를 막은 선원들은 밧줄을 더욱 단단히 조여 세이렌의 위험에서 용케 벗어나게 된다.

한편 소설 모비딕은 흰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포경선 피쿼드 호의 에이해브 선장과 그의 선원들이 벌이는 처절한 사투를 그렸다. 모비딕을 향한 에이해브의 광기는 다른 선원들조차 위험에 빠지게 만들지만 일등항해서 스타벅(Starbuck)만큼은 냉정을 잃지 않는다. 에이해브가 인간의 광기를 상징한다면 스타벅은 이성을 가진 인간을 대변한다. 결국 마지막 3일간의 대결에서 피쿼드 호는 침몰하고 에이해브 선장은 모비딕에 꽂혀있던 작살 밧줄에 감겨 바다속으로 끌려들어가 죽게 된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 이슈메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선원들이 죽는다. 물론 일등항해사 스타벅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뒷세우스에게 세이렌의 목소리가 유혹이었다면 에이해브에게는 흰 고래 모비딕 자체가 유혹이다. 오뒷세우스가 유혹의 달콤함을 경험하기 위해 스스로 밧줄에 묶였다면 선장 에이해브는 유혹 자체를 부수고자 정면으로 대한다. 반면 스타벅은 유혹으로부터 한 발 비켜나 관망한다. 세 사람의 유혹을 대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구분된다. 

흥미로운 건 두 작품 모두 글로벌 커피 기업 스타벅스(Starbucks)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스타벅스의 로고는 요정 세이렌에게서, 이름은 일등항해사 스타벅에서 가져왔다. 근데 하필이면 왜 세이렌이고 스타벅일까? 






여기엔 스타벅스가 지향하는 기업의 이상이 절묘하게 담겨있다. 세이렌의 전설과 스타벅이라는 인물의 상징성을 이해한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세이렌이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람들을 유혹했듯이 스타벅스는 한 잔의 커피로 고객들을 유혹한다. 이른바 ‘사이렌 오더’를 생각하면 더욱 노골적이다. 대체 이런 마케팅 앞에서 유혹당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스타벅스 커피는 유독 쓰다며 불평하면서도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다. 커피는 원래 쓴 맛이라는 걸 이토록 꿋꿋히 지켜내고 있는 브랜드가 또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시스템과 규모를 가진 브랜드가 커피의 산미를 강조하는 일종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커피 본연의 쓴맛을 고수하고 있다는 건 역설적이면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한편 스타벅은 냉정을 잃지 않는 차가운 이성을 가진 인간을 대변한다. 커피가 봉건 유럽을 깨움으로서 근대 이성의 확립에 일조했다는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한다면 이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두 작품의 결말은 상반적이다. 유혹과 욕망을 맛보고자 했던 오뒷세우스는 귀향에 성공했지만 과잉의 광기를 부린 선장 에이해브는 죽었으며 이를 관망하기만 했던 스타벅 또한 바다에 수장되었다. 귀향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커피가 부르는 유혹은 세이렌과 모비딕처럼 우리를 파멸시키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움이고 일상이다.

중요한 것은 세이렌이 단 한 번의 유혹으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반면 스타벅스의 유혹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이렌의 목소리에 홀려 바다에 빠진 사람들의 운명은 단발성이다. 그러므로 세이렌은 끊임없이 새로운 유혹의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유혹은 오히려 그 반대다. 대상이 거의 무한정이다. 게다가 스스로 반복해서 빠져들게 하는 마법이다. 여기에 걸려든 고객이라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아니, 이 정도면 커피에 대한 중독이 아니라 스타벅스에 대한 중독이다. 

그렇다면 세 명의 인물들에게 각각 주어진 밧줄 중에 그들을 구원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세이렌의 유혹에 자신의 욕망을 체감하려 스스로 몸에 메었던 오뒷세우스의 밧줄일까? 아니면 모비딕을 향한 욕망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에이해브 선장에 묶여진 밧줄일까? 그것도 아니면 밧줄을 다루던 일등항해사였지만 그것을 외면하다 수장된 스타벅의 밧줄일까? 더불어 우리에게 각각 쥐어진 운명의 밧줄은 어떤 것일까? 가끔 자문하는 질문들이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삶에 대한 나의 성찰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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