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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이야기경성부청 - 일제강점기 건축 경향의 분수령

모비딕
2020-10-12
조회수 89

1926년은 일본의 한국 지배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식민지배를 위한 인프라가 완비되면서 지배가 더욱 강고해졌기 때문이다. 경성부청의 건설이 전환점의 중심에 있고, 종합 문화시설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은 3·1 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전환된 식민지배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시민회관으로 지어진 부민관은 옛 건물 그대로 서울시의회가 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경성부청은 오랫동안 서울시  청사로 사용됐지만, 현 시청사가 2012년에 새로 지어지면서 지금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청이 완공될 당시에는 서울이 경성부였기에 이 건물은 경성부청(京城府廳)으로 불렸다. 일국의 수도였던 서울이 한일합방과 함께 경기도의 일개 도시인 ‘부(府)’로 격하되었던 것이다. 식민지배가 본격화되면서, 일본은 통감부 시절에 건축된 노후된 목조 관공서 건물들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이때, 경성역(현 서울역), 조선총독부(해방 후 중앙청과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었으며 1995년 철거됨)와 함께 경성부청도 건축되었다. 경성부청이 완공됨으로써, 서울에는‘조선총독부-경성부청-서울역-용산’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도시축의 거점이 완성되었다. 

특히, 경운궁의 경계를 서쪽으로 밀어내며 조성된 경성부청 앞 광장은 태평로와 을지로, 소공로가 만나는 요지로 지리적 중심은 물론 행정 중심의 거점이 되었다. 경성부청은 일제강점기 새로운 간선도로가 된 태평로 옆 광장에서 정면성을 갖도록 설계되었는데, 건물 중앙에 탑을 설치하고 좌우 대칭으로 처리하여, 대지조건에 따라 비대칭으로 구성된 평면 형태를 숨기고 있다. 

거친 화강석의 기단부 위로 창호가 질서 정연하게 배열된 입면에서 석조전이나 한국은행(구 조선은행)에서 보이는 장식들이 거의 사라져, 근대주의 건축으로 보이지만, 기단부 구성과 탑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좌우 대칭의 정면은 서울시청이 역사주의 건축양식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 구성은 역사주의 양식의 특징을 갖지만 장식이 제거된 근대주의 건축의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건물은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일제강점기 건축 경향의 분수령이 되는 건물로 평가된다.

경성부청은 중앙에 탑을 세우고 좌우 대칭으로 건축된, 전형적인 고전주의 건축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전통적인 고전주의 건축과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일반적인 고전주의 건축에 비해 장식이 현저하게 적고, 주출입구의 처리가 단순하게 돼 있다.

이 건물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게 되었는데, 본관 뒤쪽의 태평홀을 철거하려다가 문화재 훼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논란 끝에 결국 ‘원형보존’과 ‘복원공사’를 병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철거 문제로 화제가 됐던 태평홀은 자리를 옮겨 원형을 그대로 만드는 ‘이전 복원’을 실시하고, 본관동은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고, 안전에 이상이 없는 곳은 현 상태로 보존하여, 2011년 건립된 신청사와 함께 정보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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