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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리디언스
2020-09-05
조회수 159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1902년 6월 11일 전북 옥구군 어청도 해상에서는 두 척의 선박이 서로 충돌하여 총 26명이 익사한 사고가 발생한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인천에서 출발한 여객선에 타고 있던 외국인 선교사가 두 명의 한국인을 구하려 탈출을 미루다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실종되었다. 그는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사립학교인 배재학당을 세운 미국 선교사 출신 교육자인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다. 배재학당은 현 배제중학교, 배제고등학교, 배제대학교의 전신이다. 설립 당시 고종 황제가 직접 현판을 써서 하사할 만큼 중요한 교육기관으로 출발하였다. 그의 시신은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여 양화진에 있는 묘는 가묘로 알려져 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라는 문구는 신약성경(마태복음)에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가 세운 배재학당의 학훈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행한 그의 이타적 행동은 종교적 이념을 뛰어 넘는다. 구한말 한국과 관련한 외국인들 중에서도 그가 특히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펜젤러는 1858년 미국 펜실베니아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남다른 신앙심으로 애초에는 인도에서 선교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1882년 한국과 미국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이 가능하게 되어 이후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아펜젤러가 절친인 호러스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항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한 날은 1885년  4월 2일 부산을 통해서였으며 인천에는 4월 5일 도착했다. 하지만 한국에 주재하고 있던 미국 대사가 아펜젤러와 동반한 부인 엘라의 입국을 불허하는 바람에 일본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의 정세가 매우 불안하여 젊은 여성의 입국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아펜젤러가 본격적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한 시기는 재입국 날짜인 그해 7월 29일 이후로 알려진다.


“우리는 이 협회가 기울이고 있는 한국의 복지와 독립을 고양하고자 하는 장한 조력이 대성공을 거둘 것을 바라며, 그들의 조력이 마침내는 면류관으로 장식될 것을 믿습니다.


연사로 초청된 1897년 독립협회 창립 1주년 기념식에서 아펜젤러가 행한 연설문의 일부다. 아펜젤러 자신이 직접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일으킨 교육 사업을 통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된 사실만 보더라도 한국 독립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학생인권단체이자 독립운동단체라고 볼 수 있는 ‘협성회’를 조직하였고 삼일만세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가 그가 세운 정동제일교회의 파이프오르간 뒤에 숨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정동제일교회의 파이프오르간 역시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여성독립운동가 ‘김란사’ 선생이 직접 모금하여 기증한  것이다. 나중에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이 치루어진 장소도 바로 정동제일교회이다. 이런 몇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아펜젤러의 존재감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정동제일교회 설립 이전에 이미 인천 내리교회를 설립했다고 전해진다. 내리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라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재 인천내리교회에서는 그가 한국에 재입국한 날인 1885년 7월 29일을 교회창립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자신의 생애를 바치면서까지 사랑한 그의 한국에 대한 헌신은 아들 헨리 도지 아펜젤러와 딸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에게 이어져 내려왔다. 그들 역시 미국에서 돌아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교장을 지내는 등 한국 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아펜젤러의 인상은 항상 아름다운 온화함으로 가득했고, 친구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는 친구들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의 형제애로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는 동정심이 많아 사람들을 위로했고, 항상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기쁨의 일에 함께 하였다. 그는 용기있는 사람이고, 절대 일터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옳은 일이면 어떤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1903년 아펜젤러 1주기 행사에서 친구인 존스 목사가 읽은 추도문 내용이다. 한국과 한국민들을 위한 그의 헌신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마저 생각케 하는 찬사다.

제물포구락부의 스페셜 블렌드 <아펜젤러>는 비록 짧은 생애였으나 온전히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아펜젤러에 대한 영감을 담았다. 풀바디답게 여운이 오래 남는다. 입안에 감도는 플레이버가 마치 다즐링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쌉쌀함과 더불어 과하게 달큰하지 않은 기분 좋은 단맛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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