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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문학 - 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단편집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중, 민음사)

리디언스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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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읽는 문학 – 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단편집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중, 민음사)


지금은 문을 닫았으나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우측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골목 초입에 ‘카페 코’라는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재밌는 건 카페 대문 위에 떡하니 붙어 있는 커다란 ‘코’ 조형물이다. 커다란 두 개의 콧구멍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술 취한 어른의 딸기코를 연상시키듯 작은 숨구멍들까지 세밀히 표현해 놓았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카페 문 위에 코를 붙여 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카페의 바리스타들조차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으니 말이다. 같이 드나들던 지인들 대부분은 커피를 파는 카페이니(향과 관련 있으니) 코를 붙여 놓은 것 아니겠냐고 했지만 사실이라면 얼마나 뻔한 작명인가. 사실 난 카페 이름 ‘코’의 연원은 다른 곳으로부터 찾았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evich Gogol)’의 작품에서다. 







1809년에 태어나 1852년까지 살았던 고골은 작품을 통하여 주로 부패하고 부조리한 당시의 세속적인 욕망과 그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속물근성의 인간상을 주로 그려냈다. 대표작은 당연히 <외투>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 있는 건 다른 작품이다. 1836년에 발표한 <코>라는 단편이다. 짐작했듯이 냄새 맡는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신체 기관인 사람의 코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카페 주인이 고골을 좋아했다면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물론 확인된 바 없는 나 혼자만의 상상이긴 하지만.






<코>는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 하는 환상 소설이다. <변신>과 마찬가지로 황당한 줄거리다. 얼굴에 붙어 있던 코가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떨어져 나와 하나의 인격체로 변신하여  거리를 배회하다가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의 발표 시기가 1836년이니 1915년에 발표된 <변신>보다 거의 한 세기나 앞선다. 당시로는 굉장히 시대를 앞선 작품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아침 식사용 빵 속에서 큼지막한 사람의 코를 발견한다. 이발사는 난데없이 나타난 코를 다리 위에서 몰래 버리지만, 곧바로 경찰관에게 발각될 위기에 빠진다. 한편 코의 진짜 주인인 8급 관리 꼬발료프 소령은 여느 때처럼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코가 사라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상급 관리로 승진하기 위해 시골에서 수도로 올라온 코발료프에게 코가 없어졌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교계에서 코 없이 활동해야 한다는 건 곧 승진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길을 나선 코발료프는 급기야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5급 관리 행세를 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코를 발견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경찰에게  10루블을 바친 다음에야 자신의 코를 되찾는다. 하지만 코는 쉽사리 제자리에 붙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코가 원래의 자리에 붙어 있었고 그제야 비로소 평화를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줄거리다. 

고골의 다른 작품 <외투>의 초현실적인 환상성이 다분히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코>는 신체의 일부인 잘린 코가 주인공임에도 흉측하게 느껴지는 것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왜 하필 제목을 코로 정했을까? 여기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원래의 제목은 코가 아닌 ‘꿈’이었다고 한다. 꿈속에서나 일어날 만한 이야기니 적당한 제목일지도 모른다. 러시아어로 꿈이라는 단어는 ‘Son’이라 표기된다. 그런데 ‘Son”을 거꾸로 읽으면 꿈이라는 뜻의 ‘Nos’가 된다. 말 그대로 반전이다. 꿈을 뒤집어 코로 만든 것이다.

소설은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침대에서 일어나 빵 굽는 냄새를 맡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보 쁘라스꼬비야 오시꼬브나! 오늘 난 커피 안 마실래.”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말했다. “대신 따끈따끈한 빵하고 파가 먹고 싶은데.” 

사실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빵과 커피를 둘 다 먹고 싶었지만, 아내가 그런 욕심을 아주 싫어했으므로 한꺼번에 두 가지를 다 요구할 수는 없었다. 

‘제기랄, 빵을 먹든지 말든지. 커피가 한 잔 남으니까, 나한테는 그게 더 좋아.’ 

아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식탁에다 빵 한 조각을 던져 놓았다. (단편집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중 ‘코’, 민음사 10p)


행간에 나타난 내용으로 유추해 보면 당시 러시아 소시민들이 먹는 아침 식사로는 보통 빵이 아니면 커피였던 것 같다. ‘빵과 커피’를 모두 먹는 것이 아닌 ‘빵 아니면 커피 둘 중 하나’라는 뜻이다. 야꼬블레비치는 분명 빵과 커피 둘 다 먹고 싶었으나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빵을 선택한다. 당연히 남은 커피는 아내의 몫이 된다. 아내의 반응이 재미있다. 내심 남편이 커피 대신 빵을 선택했으면 하는 기대를 했다는 것이다. 빵보다 커피를 더 좋다는 아내에게 왠지 더 친근감이 간다. 물론 코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하긴 코가 빵을 먹을 순 없으니 향이나마 흠뻑 맡을 수 있는 커피가 더 낫지 않았을까? 이 대목을 읽을 때면 갓 구워내고 끓여낸 구수한 빵과 커피 향이 전해지는 듯하다. 19세기 초 러시아 서민 가정의 소박한 아침 식탁 분위기가 눈앞에 그려진다.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나였다면 빵과 커피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 대답은 역시 커피다. 빵 없는 아침은 그러려니 해도 커피 없는 아침이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현재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되어 시행되고 있다. 제한적이긴 하나 당분간 커피 전문점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커피를 파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이나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다. 아찔한 상상이 점점 더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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