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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문학 – <1984> (조지 오웰, 민음사)

리디언스
2020-07-12
조회수 250

<1984> (조지 오웰, 민음사)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는 ‘진짜 커피’일까?

 

<1984>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1984>의 세계는 세 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고 이들은 서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중 소설의 주 배경 국가인 ‘오세아니아’는 전쟁을 핑계로 자국민을 통제, 감시하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한 극단의 전체주의 국가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충격적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거주하는 ‘승리 맨션’ 주변 곳곳에는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빅 브라더’의 초상이 곳곳에 붙어 있다. ‘승리 맨션’ 내부에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 거주인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 ‘텔레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윈스턴이 ‘승리주(酒)’를 마시고 ‘승리연(煙)’을 피며 바라보는 건 300미터 높이의 건물에 붙어 있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민음사 13p)


이 세 가지 당의 구호를 읽는 순간 마치 파놉티콘을 연상케 하는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평화를 위한 수단은 역설적으로 전쟁이다. 빅 브라더는 전쟁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국민의 사고와 행동을 획일화하는 목적에 이용한다. 자유가 예속이라는 구호 역시 마찬가지다. 순수한 의미의 자유를 국민이 인식해서는 절대 독재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무지는 더욱 그 의도가 명확하다. 비민주적 독재 사회일수록 소위 ‘깨어있는 시민’이 위정자들에겐 가장 두려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빅 브라더가 지도자인 오세아니아는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오직 그의 지배 체제를 위하여 작동하는 사회다. 사상의 강제 주입뿐만 아니라 인간 본능을 인위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사실마저도 완벽하게 조작한다. 과거를 조작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통털어 역사 자체를 조작한다는 뜻이다.


하급 당원인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우연히 얻게 된 일기장을 기록하면서부터 빅 브라더 체제에 의심을 갖게 되고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체제의 불합리를 자각한 윈스턴이 인간 정신을 지키고자 처절하게 분투하지만 소설은 결국 비참한 결말로 끝나고 만다.

<1984>를 읽고 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끔찍한 나머지 현실에서는 소설 속 체제의 세계란 도저히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오세아니아’와 같은 세계가 조지 오웰이 마치 공상하듯 쓴 것처럼 반드시 그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세계는 아니다. 가령 범죄 예방이라는 목적 내지는 순기능에도 불구, 감시 카메라 설치 확대는 지나친 사생활 노출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스마트 폰의 전원을 켜고 있는 이상 누구나 각종 개인 정보와 위치, 대화, 행동, 다녀간 흔적 따위를 감시자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당할 수 있다.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 촬영의 폐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1984의 오세아니아 사회가 도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도 (1791년)





1984의 세계는 마치 제레미 벤담이 구상하고 미셀 푸코의 책  ‘감시와 처벌’에 의해 그 의미가 확장되었던 원형감옥 ‘파놉티콘’을 연상케 한다. 파놉티콘이란 중앙에 감시 탑을 두고 그 주위를 둘러싸며 죄수들이 수용되어 있는 감옥들을 배치한 구조다. 감시탑은 죄수들이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유리창 을 어둡게 처리했다. 그러므로 감시탑에서는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감옥 전체를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지 하지 않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감시자가 없어도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벤담의 파놉티콘이 단지 사설 감옥의 합리적 기능성을 위한 것이라면 푸코의 파놉티콘은 권력을 가진 한 명 또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감시와 규율을 효율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1984의 세계는 온통 전체주의의 기호로 가득 찬 세계다. 윈스턴이 사는 곳, 마시는 술과 담배, 심지어 커피조차 ‘승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승리’라는 단어에는 다분히 전쟁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수시로 전선의 전황을 보도함으로써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강조한다. 이는 집단적 호전성을 기르는 목적보다 개인의 자유가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대중 의식 속에 주입하려는 의도가 더욱 크다.


‘길 아래쪽 어디에선가 커피 – 승리 커피가 아니라 진짜 커피 - 끓이는 냄새가 풍겨왔다. 윈스턴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반쯤 잊어버린 유년시절로 돌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쾅 닫히면서 커피 끓이는 냄새가 무슨 소리이기나 한 것처럼 뚝 끊겨버렸다’ (민음사 115p)


어느날 윈스턴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공회당 저녁 모임에 빠졌고 방황하던 길에 커피 향을 맡는다. ‘승리 커피’가 아니라 ‘진짜 커피’ 향이다. 그 순간 그는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마치 따뜻한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으며 잊고 있었던 과거를 떠올리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연상된다. ‘진짜 커피’의 시대는 아마도 빅 브라더 체제 이전의 세계였을 것이다. 커피가 시대를 구분하는 지표가 된 것이다. 우연히 접한 커피 향이 빅 브라더에 대한 회의가 윈스턴의 의식 세계에 서서히 틈을 내고 있을 때 그 균열을 점점 더 크게 만들게 되리라는 걸 예고한다. 그렇다면 2020년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는 ‘승리 커피’일까? ‘진짜 커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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