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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이야기삼문출판사

아나스타샤
2020-06-14
조회수 373


삼문출판사는 감리교선교부가 배재학당 내에 설치한 인쇄소를 겸한 출판기관이었다. 이 당시에 국내에 존재했던 인쇄시설은 정부소유인 박문국(博文局)의 것과 민간인쇄소인 광인사인쇄공소(廣印社印刷公所) 정도를 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삼문출판사는 일차적으로는기독교서적을 인쇄하기 위한 시설로 마련된 것이었지만, 이에 부수적으로 배재학당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삼문출판사의 식자, 인쇄, 제본 등의 작업은 대부분 '아르바이트'가 필요한 배재학당 학생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알려진다.


설립연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논란이 있으나, '1889년'에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 The Trilingual Press)라는 것은 국문, 영문, 한문 등 세 가지의 활자를 갖추었다는 뜻이며, 다르게는 '미이미활판소(美以美活版所)' 또는 '한미화활판소'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미이미(美以美)는 '메소디스트(Methodist)'의 음역(音譯)이므로 이는 곧 감리교활판소라는 의미이다.


삼문출판사는 처음에 배재학당 당사(堂舍)의 지하에 두었다가 얼마 후 본관 뒷편(서쪽)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인쇄소로 사용하였다.

이 건물이 정확히 언제 완공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이와 관련하여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The Korean Repository)> 1892년 8월호 수록된 '제8차 감리교선교회 연차회의'에 수록된 내용에는 "삼문출판사, 건물가격 3,388-"이라는 표시가 들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해당 건물은 적어도 1892년 8월 이전에 신축된 상태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출판사의 출범은 1887년 12월에 배재학당 총리교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亞扁薛羅; 1858~1902)의 요청으로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던 선교사 올링거(Franklin Ohlinger, 武林吉; 1845~1919)가 조선으로 건너온 데서 비롯되었다. 올링거는 이를 계기로 서울에 정착하였는데, 곧이어 최신 인쇄기기와 활자의 도입에 주력하여 배재학당 내에 삼문출판사를 창립하는 한편 기독교관련 출판사업과 문서 선교에 주로 활동하였다. 그는 조선에 머무는 동안 인천내리교회의 설립에도 적극 관여하였고, 1892년에는 한국관련 종합잡지인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The Korean Repository)>를 창간하기도 했다. 이 잡지는 1년만에 중단되었으나, 그 후 헐버트에 의해 부활되어 1895년부터 1898년에 걸쳐 매월 발간된 바 있다. 


호머 베절릴 헐버트(영어: Homer Bezaleel Hulbert, 1863년 1월 26일 ~ 1949년 8월 5일)는 미국의 감리교회 선교사이자, 목사로 육영공원 교수로 근무하여 영어를 가르쳤던 교육인으로 대한제국의 항일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헐벗 또는 흘법(訖法), 허흘법(許訖法), 할보(轄甫), 허할보(許轄甫)였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이 추서됐다. 대한제국에서 감리교 선교사, 목사, 교육자, 항일운동가로 활약하기도 한 그는 고종 황제의 최측근 보필 역할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고종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으로 고종황제의 특사를 세 번 받았다. 

대한제국의 분리 독립 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였으며, 1907년 헤이그 비밀밀사에 적극 지원하여 밀사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지지했다. 그는 한국어도 매우 유창하게 하였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대한제국 시대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어니스트 배델(영국 출신)과 아울러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가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헐버트는 제물포구락부의 개소식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새롭게 단장한 제물포클럽 개회식을 6월22일(토요일) 오후 4시30분에 가졌다. … 모두 건물 내부의 멋진 방과 시설들을 둘러본 후, 영국 영사인 허버트 고페씨가 훌륭한 서비스를 언급하고 클럽 빌딩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 대단한 감격 속에서 새로운 이 사업을 위해 모두 축배를 들었다. … 클럽 건물은 좋은 전망에다 넓은 당구장과 독서실, 그리고 근처에 테니스장을 갖추고 있어 성장하는 제물포 사회의 색다른 장식을 선사했다. 클럽 건물이 오래도록 물결치듯 활동하기를!”-, 


코리아리뷰 190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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