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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이야기정동 제일교회

아나스타샤
2020-07-12
조회수 95

정동 34-3번지에 위치한 정동제일교회(貞洞第一敎會, The First Methosist Episcopal Church)는 비록 그 규모는 압도적이지 않으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정동의 한복판에 해당하는 장소성으로 인하여 이 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로 인하여 일찍이 1977년 11월 22일에는 이러한 역사성과 건축적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56호 '정동교회' (정동 32-2번지 대지 438.4평중 36평, 정동 34-3번지 사사지 565.6평중 284평, 도로 26평, 합계 3필지 346평 지정대상)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동제일교회의 역사는 1887년 10월 9일에 개설한 벧엘예배당(Bethel Chapel)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성경사업을 사들인 공간으로, 이날 4명의 조선인 신자가 모여 아펜젤러의 인도로 첫 예배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몇 주 후에는 처음 집의 옆으로 그 크기가 배가 넘는 공간을 구입하여 방 가운데에 휘장을 늘이고 예배를 올렸다. 방 한가운데에 휘장을 늘인 것은 남녀가 한 방에 모이는 것이 공연한 시비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아직도 남녀가 엄격히 구분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풍경인 듯하다.

 


이 당시 정동예배당의 위용에 대해 <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7년 12월 29일자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회당의 장은 70척(즉 21.2미터)이요 광은 40척(즉 13.2미터)이요, 높기는 25척(7.6미터)인데 종을 다는 칸은 고가 50척(15.2미터)이며 회당 안에 좌우로 협방이 하나씩 있는데 장이 28척(8.5미터)이요 광이 14척(4.2미터)이며, 지붕은 함석으로 꾸미고 사면에 유리로 창을 하여 심히 명랑한지라."

이렇게 보면 대략 십자가의 형태를 닮은 교회의 평면적은 100평 규모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아올러 종탑의 경우 뾰족탑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평탑모양을 따른 것도 특징적이었다.

이렇게 완공된 정동제일교회는 단순히 신앙을 위한 공간이었다기보다는 때로 주요한역사의 현장으로 자리매김이 되고, 또한 ㅡ신앙인이건 아니건 간을 막론하고 ㅡ 이웃하는 배재학당이나 이화학당과 어우러져 서양의 근대문물이 널리 전파되는 주요한 통로가 되기도 했다는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었다.

정동제일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것은 1918년. 우리나라 첫 파이프오르간이었다. 이것을 설치한 사람은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1872∼1919)였다.

 파이프오르간 송풍실은 아래쪽 지하에 있다. 일제강점기 이 송풍실에선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등사했다. 지하 송풍실은 입구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제일교회 청년을 비롯해 교회 옆 이화학당 배재학당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3·1운동 독립선언서, 지하 독립신문 등을 몰래 제작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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