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구락부 스토리 아카이브

재즈,어번스케치,3D모델링,여행가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근대건축이야기독일 영사관

아나스타샤
2020-08-23
조회수 212

 

대한문 옆에서 시작되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교회 앞 분수광장 쪽으로 죽 걸어올라가다보면 끄트머리의 휘어진 길 언저리에서 약간 색다른 담장구조가 눈에 띈다. 여느 사고석 담장과는 다르게 7단 높이의 석축으로만 궁장(宮墻)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예전에 덕수궁 안쪽과 길 건너편 언덕 위쪽을 서로 이어주던 육교(구름다리,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던 흔적이다. 이 다리가 놓여진 때는 1903년 가을 무렵이다.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서 있지만, 원래 이곳은 육영공원 시절을 거쳐 독일영사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정동 시절의 독일 공관은 흔히 '독일공사관'으로 오인되고 있지만, 엄밀하게는 '독일영사관'이었던 것이 맞다. 

우리 나라와 조약을 맺은 서구 열강들은 거의 예외 없이 처음부터 '공사관' 수준의 공관을 개설하였거나 이내 영사관을 대체하여 공사관으로 승격조치를 내렸던 것과는 달리 독일 측은 어찌된 영문인지 대부분의 기간을 겨우 영사관 수준의 공관만을 유지했을 뿐이라는 점은특이하다. 

더구나 다른 나라들은 화려한 외관의 독자적인 공사관 건물을 건축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독일의 경우는 이때까지도 여전히 '기와집'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1901년 6월에 우리 나라를 찾은 독일인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 1870~1904)는 '초라한' 몰골의 독일영사관과 '격이 다 른'  자기 나라 외교관 신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유럽각국의 수도에 있는 미합중국의 대사관과 공사관은 언제나 다른 외교관들의 조롱거리이자, 막강하고 부유한 정부에게는 영원한 비난대상이 되었다. 부유한 열강인 미 정부가 대사들에게 터무니없이 부족한 임금을 주는데다, 대개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공관에서 지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의 작은 관저에서 자신들이 돋보일 수 있는 이웃 유럽관저들과 가까이 있다면, 미국공사들은 위로가 될 것이다. 독일제국의 외교관 역시 소박한 관저에서 고요하고 겸손하게 은닉하고 있다. 마치 백합과 장미가 하늘을 향해 자랑스럽게 머리를 쳐들고 있는데, 옆으로 남몰래 꽃을 피우고 검허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비꽃처럼 말이다. 독일 정부가 굳이 조선의 독일 외교관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놓고 자부심 강한 위대한 조국의 위신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영사까지 종종 아주 곤혹스럽게 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른 모든 열강들이 보낸 공사나 변리공사들은 대한제국 황제의 궁전에서 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독일만은 영사 관저를 따로 두고 최전방에서 모든 공식적 업무를 보고 있어서 조선인들은 독일제국이 몬테네그로나 룩셈부르크 정도의 작은 나라라고 믿을 것이다. 작은 국가 벨기에조차 조선에 공사관을 두고 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변리공사와 총영사관이 었던 외교사절단을 실질적인 대사로 승격시켰다. 최근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는 외교관들의 지위를 승진시켜주면서 미국의 뒤를 따르고 있다. 독일만 부영사나 통역관조차 없는 초라한 서열의 영사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궁내부 소속의 시의(侍醫)를 지낸 독일인리하르트 분쉬(Richard Wunsch, 富彦士; 1869~1911)가 작성한 1902년 8월 16일자 서한(書翰)에도 이러한 현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 독일영사관에서는 영사관에서 고용한 많은 한국인, 일본인들에게 접종시키려고 1년에 100엔을 내고 접종약을 청약해두었는데, 영사관 예산이 아니라 영사의 쌈짓돈이었답니다. 제가 바라는 바는 영사관이 공사관으로 승격해서 독일정부에서 고용하는 공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겐테와 분쉬의 바람이 통했는지 독일은 1903년 3월 1일에 이르러 서울에 파견한 독일대표의 지위를 공사급으로 승격한다는 발표를 비공식적으로 내보냈다. 곧이어 그해 5월 6일에는 변리공사 잘데른(Conrad von Saldern, 謝爾典; 1847~1909)이 새로 부임하여 기존의  바이페르트(Heinrich Weipert, 瓦以璧; 1855~1905) 영사를 대체함으로써 마침내 독일영사관은 정식으로 독일공사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는 이미 독일영사관이 정동을 벗어나 회동(會洞) 즉 지금의 남창동(南倉洞) 9번지로 옮긴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정동 시절까지는 '독일영사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뒤늦은 공사관 승격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이른바 '을사조약'이 강요됨에 따라 서울에 주재한 각국의 공사관은 일괄 영사관으로 격하되었으므로, 결국 독일의 경우 서울에 공사관을 둔 기간은 전부 합쳐도 2년여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0 0

연락처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

전화번호:032-765-0261

이메일:jemulpoclub@gmail.com

찾아오시는길


#제물포구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