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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이야기영국 공사관

아나스타샤
2020-05-25
조회수 434



근개화기에 우리 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서구열강을 통틀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롯이 한 장소에만 자국의 외교공관을 유지했던 나라는 오직 영국뿐이다. 미국의 경우도 첫 공사관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나, 지금은 그저 이곳을 대사관저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유형에 완전히 부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때로 영길리(英吉利), 대불렬전(大不列顚, 그레이트 브리튼)으로도 표기되는 영국(英國)과 우리 나라 사이에 외교관계가 정식으로 수립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이때 우연찮게도 영국과 독일은 한날 한시, 즉 1883년 11월 26일에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서울 정동에 들어설 영국 영사관의 설계는 1889년 1월 18일에 상해건설국(上海建設局)의 책임건축가인 마샬(F. J. Marshall)이 예비 설계도를 작성하여 영국 외무성으로 보내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벽돌과 석재를 포함한 건축자재를 모으는 일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으며, 그 사이에 1890년 5월에는 공사준비가 완료되어 예전의 '한옥' 영사관 건물은 5월 15일에 철거되었다. 

그리고 이내 부지정리작업을 수행하여 콘크리트 기초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는데, 마침내 기초공사의 마무리와 더불어 정초석(定礎石)을놓은 것은 1890년 7월 19일이었다. 이 정초석은 지금도 원래의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여기에는 힐리어 총영사의 부인에 의해 놓여졌다는 사실과 날짜 등이 또렷이 기록되어 있다.


그 시절로서는 매우 드물게도 기초 부분과 지붕구조에 콘크리트 재료가 사용되었다는 부분 역시 건축사적으로 보더라도 매우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더구나 이 당시에 지어진 대부분의 각국 공사관 건축물들이 파괴되었거나 사라져버린 것과는 달리 제1호관과 제2호관 모두 그 외관과 구조가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는 더욱 크다.


작업을 시작한 지 1년여만에 벽돌로 지은 제1호관의 완공을 보았는데, 이곳은 총영사를 위한 공간으로 1층(124평)에는 접견실과 영사의 사무실, 서재, 식당, 응접실이 들어섰고 2층(121평)에는 각각 목욕탕이 딸린 4개의 침실이 배치되었다. 여기에다 부엌과 하인실의 용도로 건립된 별도의 부속건물(43평)이 설치되어 있었다.  


영국총영사관으로 시작되어 영국공사관으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을사조약'의 여파로영국영사관으로 격하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다시 해방 이후에 영국대사관이 설치되는시절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외교공관은 오롯이 한 장소에만 머물렀는데, 이는 우리 나라 외교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 유례를 찾을 수가없다. 더구나 영국공사관 바로 옆에는 영국성공회의 선교기지까지 들어선 상태로 무려 1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 일대는 마치 불가침의 영역으로 확고하게 굳어진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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