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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이야기미국 공사관

아나스타샤
2020-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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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사관(美國 公使館)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미국공사관이 설치되는 1883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처음에는 전통한옥으로 지어졌다가 1900년 경에 부분적으로 고쳐 지어졌고 내부도 개조되었다. 그 후 행랑 부분이 만들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883년 당시의 모습이 상당 부분 남아 있고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공사관 건물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근대 개항기 이후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와 통상조약을 체결한 나라는 일본(1876년), 미국(1882년), 영국(1883년), 독일(1883년), 이탈리아(1884년), 러시아(1884년), 프랑스(1886년), 오스트리아(1892년), 청국(1899년), 벨기에(1901년), 덴마크(1902년) 등 11개국에 이른다. 이 가운데 공사관 또는 영사관을 개설한 나라는 모두 아홉 나라이며, 별도로 공관을 개설하지 않았던 나라는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등 두 나라였다.

여기에서 보듯이 서양 각국을 통틀어그 선두에 선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정동이라는 공간과 관련하여 '미국'이라는 존재는 두 가지 측면에서 특히 주목된다. 우선 그 하나는 근대시기 이후 정동을 '공사관구역(Legation Quarter)' 또는 '유럽인 정착지(European Settlement)'로 변모하게 만든 출발점이 바로 미국 공사관의 개설과 맞물려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120년을 훌쩍 넘긴 오늘에 있어서도 미국 공사관은 매우 드물게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와 미국 사이에 통상조약의 체결이 이뤄진 것은 1882년 5월 22일의 일이며, 그 장소는 제물포(濟物浦)의 임시막사였다.

미국 공사관이 정동에 터를 잡게 되자, 곧이어 영국영사관(1884년 4월 개설)과 러시아공사관(1885년 10월 개설)이 그 뒤를 이었고, 그들의 첫 외교공관을 다른 지역에 잡았던 프랑스 공사관(1889년 10월 이전)과 독일 영사관(1890년 8월 이전)도 뒤늦게나마 이곳으로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느지막히 외교관계를 수립한 벨기에 영사관(1901년 10월 개설)도 그들의 첫 공관을 정동에다 두었으며, 이탈리아 영사관(1902년경 이전)의 경우에도 정동에서 가까운 서소문길에다 자국의 공관을 설치하였으므로, 정동 일대는 자연스레 각국외교의 중심가로 자리매김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정동길을 일컬어 '공사관 거리(Legation Street)'로 명명하였던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었다.  

가장 오랜 재임기간을 가졌으며 또한 우리 나라와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단연 호레이스 알렌이다. 그는 1884년 9월 22일 미국 공사관에 소속된 의사이자 선교사의 신분으로 우리 나라에 건너와서는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濟衆院)을 설립하는 한편, 1890년 7월부터는 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재직하다가 1897년 7월에는 마침내 주한미국변리공사 겸 총영사로 승진하였고, 다시 1901년 6월 이후 특명전권공사로 지위가 격상되는 등 근대 개화기에 걸쳐 우리 나라를 둘러싸고 진행된 서구열강의 각축장에서 나름으로 주역이 되어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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